미나리가 땡기는 순간

(25.3월 중순) 색, 향, 미각의 세 가지 덕이라 하겠어요.

by 제II제이

여유 있는 주말쯤이 좋겠다.


좀 늦잠을 자고 일어나

주방 싱크대에서 미나리를 씻는다.

왠지는 잘 모르겠으나

손이 시려질 만큼 찬 물로

씻어야만 할 것 같다.


벌겋게 달아오른 손으로

푸른 미나리 단을 그러쥐고 툭툭 턴 후에

채반에 얹어서 나머지 물기를 뺀다.


이미 미나리 향이 주방에 퍼지기 시작한다.

그 향만을 더 즐기고 싶다면 물이나 우유에,

향에 달달함까지 추가하고 싶다면

요구르트를 같은 걸 더해 믹서기에 갈아 마신다.




아니면,


조금 무리해서 그날의 일을

마무리한 저녁의 퇴근길은 어떨까.


식당 한쪽 불판 주위로 두셋 둘러앉는다.

역시 고기는 구워야 제맛인 것 같다.

벌건 삼겹살과 하얀 양송이버섯

그리고 연두색 미나리를 탁자 위에 두고

불판이 달궈지기를 기다린다.


달궈진 불판 위에 삼겹살 놓는 소리가

서서히 작아지며 기름이 흐른다.

그 위로 미나리를 한 줌 쥐어 얹는다.

고소한 삼겹살에

한 줄기 향기로운 상큼함이 같이 묶여

느끼함을 잡는다.

한 점의 고기와 미나리에 시원한 한 잔.




빛깔은 다른 풀과 엇비슷해 보여도,

그 향만큼은 독특한 자기 색깔이 있다.


날로 먹어도 좋고,

익혀 먹어도 좋다.


그대로 씹어도 향기롭고,

썰거나 갈아내면 향이 주변까지 더한다.


주연보다는 조연으로 더 많이 등장하고

없어도 딱히 티 안 날지 몰라도

일단 등장하면 그 존재감이 대단하다.


지저분해 보이는 꽝에서 마구 자라지만

오히려 물을 정화시키기조차 한다.


차가운 곳에서 더 푸르게 자란다.




미나리의 말뜻은 ‘미- + 나리’로 분석된다.


‘미’는 ‘물’이라는 뜻의 옛말이다.

‘미역, 미더덕’과 같은 말에

그 흔적이 남아 있다.


‘나리’는 ‘풀’의 뜻으로 이해된다.

즉, 미나리는 ‘물에서 나는 풀’ 정도의 의미이다.


어원에 대한 내용의 출처는

옛책 <<향약구급방>>이다.


다음의 내용 중 ‘시호’가 미나리에 해당하며,

‘믈나리’가 시간이 흐르면서

‘미나리’가 된 것이다.

여기 쓰인 ‘믈’이 ‘물’의 옛 모습이다.


“적당량의 시호(柴胡)[향명(鄕名)은 청옥채[靑玉菜]인데, 돝의미나리[猪矣水乃立, 돝의믈나리]라고 부르기도 한다] 뿌리 한 가지만을 달여서 마음껏 마신다.”
(『鄕藥救急方』 下卷, 瘧疾. “單煮柴胡[鄕名靑玉菜, 或云猪矣水乃立]根不論多小, 隨意飮之.”)

“시호(柴胡)[민간에서는 묏미나리[山叱水乃立, 묏믈나리] 또는 초채(椒菜)라고 부른다. 맛은 쓰고 (성질은-인용자) 약간 차가우며 독이 없다. 7월·8월에 뿌리를 채취하여 햇볕에 말린다. 상한 병을 치료한다.]”
(『鄕藥救急方』, 方中鄕藥目草部, 柴胡. “柴胡[俗云山叱水乃立, 又椒菜. 味苦微寒无毒. 七·八月採根, 日乾. 療傷寒.]”)

(이경록, <고려후기의 주요 약물과 그 존재양상 - 돝의 미나리(시호)·생강의 생산과 유통>, <<의사학>>(33(2):259-298), 대한의사학회, 2024.에서 재인용)




‘근채삼덕’(芹菜三德)이라는 말이 있다고 한다.

미나리가 가진 세 가지 덕을 일컫는다.


진흙탕에서도 때 묻지 않고 청청하게 잘 자란다,

음지라는 악조건에서도 잘 자란다,

물을 좋아하면서 가뭄에도 푸르름을 잃지 않는다.


미나리의 미덕이 세 가지뿐이겠느냐만은

예부터 우리 생활에 밀접한

식용 풀이며 좋게 칭송받았다는 것이 확실하다.


그러나 근채삼덕이니 하는 어려운 말까지

가지 않고서라도

푸른 빛깔에 향긋한 미나리의 색, 향, 그 맛으로

눈뿐만 아니라 코와 입으로도

새로 오는 시절을 느끼며

나를 깨워보는 것이 어떨까.


미나리를 씻어 먹는 것만으로도

왠지 지금보다

조금 더 좋은 사람이 될 것 같지 않은가?


(사진출처: 헬스조선https://m.health.chosun.com/svc/news_view.html?contid=20231031022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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