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3월 하순) 기묘한 안도감을 이해하기 위하여
학생을 지도하다 보면,
욕을 하고 거칠게 행동을 하는 학생이
정말 어쩌다 한 번
예의 바른 행동을 할 때
그 순간에 어떤 기묘한 안도감 같은 것을
느낄 때가 있다.
학생의 일탈이 심할수록
이 안도감도 비례해서
같이 커지는 느낌이다.
최근에 비슷한 일을 한 번 더 겪으면서
이 기묘한 안도감에 대해
더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그러면서 떠오른 것이 ‘스톡홀름 증후군’이다.
예전에 어디서 한 번 들은 적이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이번에 한 번 검색을 해 보았다.
스톡홀름 증후군은
자신을 납치한 납치범에게
호의를 품게 되거나
심지어 사랑하게 되는 현상이라고 한다.
언뜻 이해가 안 되는 심리다.
(물론 실제로는 논쟁적 개념이긴 하다.
이 현상이 스톡홀름 증후군이라고 불리는
계기가 된 사건의 당사자들의 목소리도
들어봐야 한다. 여기서는 그냥 이 개념만을
빌려서 쓴다.)
보통은 자기에게 잘해주는 사람에게
호감을 갖게 되고,
더 나아가 좋아하거나
사랑이라는 감정으로 발전되지 않나.
비정상적인 상황에서
비정상적인 감정을 느낄 수도 있다는 점
딱 한 가지 외에는
대체 이해가 되지 않는 그런 증후군이었는데,
이번에는 내가 간간이 느끼는
그 ‘기묘한 안도감’이
이와 관련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우리는 대부분 어떤 일을 하거나 집단에 속해 있다.
때때로 뚜렷한 원칙이 없어
어찌할지 모르게 되거나,
아니면 원칙이 자꾸 후퇴하며
무너지는 것을 경험한다.
앞에서 말한 예와 같이,
학교에서 욕을 하거나 거칠게 행동하며
매우 흥분한 학생을
몸으로 막아야 하는 때와 같은 상황을 생각해 보자.
그냥 그런 행동을 한 학생을 징계를 주고
잘라버리면 되는 거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현실이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물론 그런 행동을 당연히 하지 않는 것이
사회생활의 기본이다.
그러나 그런 행동을 하는 학생을
바로 쳐내버리지는 못하고,
또 학생들이 잘 통제되지도 않는
그런 불편한 상황이 지속되는 것이
가르치는 현장의 현실이며,
주변 사람들은 점점 피로감이 높아지며
힘들어한다.
그러다가 웬일인지
어느 순간 학생이 협조적으로 나오며
예의 발라 보이는 행동을 하는 때가 있다.
아주 간간이 나타나는 이런 순간은
지쳐 있는 주변 사람들에게는
매우 반갑게 느껴지며,
심지어 고맙기조차 한 그런 순간이다.
비정상의 정상화가
기쁘고 감사한 일이긴 하지만,
이때 느껴지는 감사가
비정상이었던 학생을 향하는 것이
적절한 일일까?
하면 안 되는 행동을 하던 학생이
그 비정상적인 행동을 잠시 멈추는 일이
그 학생에게 감동하거나 고마워해야 할 만한
그런 일일까?
이에 대해 머리로는
다양하게 생각을 해보고
아마도 논리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인식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가슴으로 느끼는 느낌과 감정 측면에서는
감동, 감사 같은 것이
확 치고 올라올 때가 있다.
게다가 대부분의 경우
감정은 이성보다 힘이 세다.
좀 더 강력하고 극단적인 예로서
인질범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자.
나를 죽일지도 모르는 사람이
나를 온전히 좌지우지할 수 있는
극한 상황일 때,
내가 그 인질범에 대해 어떤 감정을 느낄지
논리적으로 생각하기는 어렵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실제 그런 상황에 놓이게 된다면?
그런 때 내가 그에 대해 어떤 감정을 갖기로
스스로 ‘선택’ 당할 것인가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해 본다면?
다른 경험 이야기를 해보자.
대부분의 남자들이 그렇듯
나도 군대에 다녀왔다.
훈련소 경험은 훈련소의 교관들
(내가 나온 곳은 DI라고 불렀다)의
살벌한 눈빛과 강압적 얼차려,
인격적 모독 등으로부터
빠져나갈 수 없는 곳에서의 힘듦이 있었다.
그러나, 소위 츤데레(?)라고 말할 수 있는,
때때로 보이는 친절함이나 인간적 면모가
특히 교육 후반부로 갈수록 간간이 보였다.
훈련시간에는 누구보다 무자비한 DI가
때때로 휴업일에 추리닝을 입은,
아는 형 느낌으로 가끔씩 생활관에 등장하여
다친 데는 어디 없냐고 툭 물어볼 때,
혹은 교육 마지막날 밤 즈음에
어둑한 생활관에 다 같이 모여서
긴장을 풀고 있을 때
DI가 진솔한 자기 이야기를 하며
노래 한 곡을 부르던 그때,
DI에 대한 원망이나 미움 같은 것이
미운'정'으로 변하게 되었다.
그 DI가 단순한 기억의 대상에서
추억의 한 페이지를 차지하는 존재로
위치의 조정이 된 것이다.
물론 그런 모습이 가식이라며
더 싫어하는 사람도 있긴 했었지만,
세월이 흐른 후에 군대 이야기를
술안주 삼아 즐겁게 하는
여러 사람들의 모습을 떠올려보면
이게 무슨 말인지 이해는 갈 것이다.
가르치는 일을 하는 현장에 퍼져있는
‘초반에는 엄격하게, 점점 부드럽게’의
요령 같은 것을 생각해도
앞의 이야기들과 접점이 있다.
내리사랑이나 한결같은 순애보의 이야기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굴곡이 있는 ‘애증의 이야기’들이
우리 마음을 울리는 때가
훨씬 더 많다는 것도 덧붙일 수 있을 것이다.
대하기 어려운 어떤 누군가가
나에게 어쩌다 해주는 따뜻한 말을 듣고
그 사람에 대한 어려움이 슥 풀리거나
일종의 호감이 생기는 경험을
해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런 경험을 크게 과장해 보며
스톡홀름 증후군을 다른 관점에서
이해해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스톡홀름 증후군에 대해서는
인간의 감정적인 영역을 건드리는 현상이다 보니
이성적 판단을 개입시키기가
어려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소위 ‘비정상의 정상화’에 대해 느끼는
감동이나 즐거움의 방향만큼은
제대로 돌아와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비정상에게서 가끔 보이는 정상화 현상에 대해
정상들이 비정상에게 고마움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비정상이 정상과 만나 정상이 되어가며
비정상이 정상에게 고마움을 느끼게 되는 것이
올바른 방향이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반대 방향을 생각하다 보니
스톡홀름 증후군과 정반대의 현상을 부르는
용어도 있다는 설명이 눈에 띈다.
그런 것을 ‘리마 증후군’이라 한다고 한다.
‘리마 증후군’은
페루의 수도인 리마의 명칭을 딴 용어로,
1996년에 리마에서 일어난
주페루 일본 대사관 인질 사건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리마 증후군은
인질범이 자신의 인질에게
정신적으로 동화되어
폭력성이 저하되는 이상현상을 일컫는
심리학 용어이다.
(위키백과 ‘리마 증후군’ 항목 참조)
리마 증후군에서 주목한 부분은
강자인 인질범이
약자인 인질에게 동화된다는 부분이다.
다시 말해,
단순한 힘의 논리로만은 설명할 수 없는
어떤 지점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을
이 증후군이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절대적 강자가 절대적 약자에게
힘의 우위를 믿고 자신의 것을 내어주는 것처럼
단순히 시혜적으로 무언가를 주는 일과는 다르다.
‘힘이 있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있다’는 논리로만은
완전히 해설되지 않는 어떤 지점이
인간관계에서 발생할 수 있다.
어쩌면 그 지점이
인간성이란 무엇인가를 찾아가는
통로 중 하나가 될지도 모르겠다.
다른 한편으로,
힘의 논리로 설명 안 되는 지점이 있다는 말은
힘의 논리가 필요 없다는 말이 당연히 아니라는 점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어느 한쪽만을 선택하기보다는
우리가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동원할 수 있는 여러 다양한 것들을
다 적재적소에 활용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분명한 것은
‘힘’ 이외의 것도 존재하고 있음을 이해하는 일이
그것을 포함한 다양한 요소들을
잘 활용할 수 있게 해주는
시작 지점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스톡홀름 증후군이든 리마 증후군이든
일상적이지 않은 상황에서는
평범한 일상의 관점으로는 언뜻 이해하기 힘든
인간관계와 인간 심리에 대한 특이한 현상이
일어날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는
공통점이 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지?’ 쪽에서
‘그럴 수도 있다’는 것을 아는 쪽으로
생각을 돌려보는 것만으로도,
이전과는 다른 눈으로 주변을 보게 된다.
내가 간간히 느꼈던 그 ‘기묘한 안도감’도
조금 깊이 이해를 할 수 있게 된다.
앞으로
생각과 느낌이 요동치게 되는 현장에 들어가게 될 때,
이전보다는 조금 더
감정과 이성 사이에서
무게 중심을 잘 잡을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