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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재 Nov 12. 2022

내 몸이 부끄러워졌다

8분 필라테스를 시작했다


광고업계에서 일하며 가장 좋은 점은 여름이 비수기라는 이다. 들어오는 일을 거절하기 힘든 프리랜서의 신분으로 휴가를 낸다는 건 어려운 결정이지만, 비수기라면 얘기가 다르다. 자의로 일을 중단하는 게 아니니 죄책감 없이 맘 놓고 쉴 수 있다. 유럽인들처럼 8월 한 달 내내 놀 수 있다니, 여름을 사랑하는 내겐 최고의 직업이다.


이번 여름 역시 제주에서 한 달 살기를 하며 매일 바다 수영을 했다. 올해 제주 바다의 분위기 많이 달라져 있었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가족 단위의 한국인 여행객들이 대부분이었는데, 코로나 이후로는 어리고 '힙'한 친구들이 하나둘씩 보이기 시작했다.


코로나가 아니었음 해외에서 휴가를 보냈을 사람들이 차선책인 제주도로 오게 된 것이다. 코로나가 잠잠해진 올해는 외국인 여행객들도 눈에 띄게 많아졌다. 프랑스어, 러시아어, 영어  다양한 언어와 인종으로 가득했다.


그 전까진 비키니를 입는 게 눈치가 보였는데, 이 오히려 래시가드를 입는 게 유난스럽게 느껴졌다. 내가 놀던 해변만 유독 그랬는지 그런 사람들만 눈에 띄었던 건지는 모르지만, 남자든 여자든 모두 하나같이 근육질의 멋진 몸매를 자다.



날 더 사랑하기 위해


숨쉬기 운동과 마우스 운동밖에 하지 않는 난 그들 앞에서 한없이 작아졌다. KTX를 타고 가며 봐도 운동을 하지 않은 게 티가나는 밋밋한 내 몸이 초라하게 느껴졌다. 자타공인 나르시시스트인 내가 내 몸을 부끄럽게 여긴 것이다.


이런 열등감, 용납할 수 없었다.


나는 운동의 의지로 불타올랐다. 니체가 '자신을 경멸하고 사랑하라'라고 했듯,  더 사랑할 수 있는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숙소로 돌아오자마자 바로 운동을 시작했다. 10년 전 잠시 홈트에 발을 담갔던 적이 있던 터라 그 동작을 기억해내는 건 어렵지 않았다. 그렇게 1일 차 운동을 끝냈다. 문제는 며칠이나 지속하느냐였다.



속임수가 필요하다


회사원이던 시절, 충동적으로 헬스장에 등록했다가 며칠 후 위약금을 내고 취소한 적이 있다. 다음날까지 이어지는 야근을 밥 먹듯 하던 터라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았다. 퇴근 후 헬스장에 들른다는 건 불가능했고, 5분이라도 더 자는 게 간절했던 오전 시간은 말할 것도 없었다.


그때만큼 바쁘진 않지만 요즘도 정신없는 건 똑같다. 머릿속에 '운동'이라는 스케줄이 따로 생기는 것 자체가 부담이었다. 지속할 수 있는 운동의 조건은 '별도의 행동을 요구하지 않는 방식'이어야 했다.


할 일이 늘어났다는 것을 나 자신이 알아채지 못하게 하는 속임수가 필요했다.


매일 당연하게 하는 샤워라는 스케줄에 운동을 살짝 밀어 넣었다. 샤워를 할 때 양치 - 머리 감기 - 바디 - 얼굴 클렌징의 과정을 거치듯, 운동이라는 꼭지를 샤워의 카테고리에 추가해버리는 것이다.


'운동'이라는 스케줄이 따로 생긴 것이 아니다. 그저 샤워에 하나의 과정이 추가되었을 뿐이다.



8분의 기적


샤워는 매일 하기 때문에, 운동도 매일 한다. 무리하고 싶지 않았기에 예전에 익혀뒀던 '8분 필라테스'로 시작했다.


워낙 오랜만이라 자세를 따라 하는 것 자체가 힘들었다. 1분 만에 온몸에서 땀이 나고 오뚝이처럼 뒤뚱거렸다. 근육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순살 같은 몸이니 당연했다.


4개월 차인 지금, 코어 근육이 생기니 아무리 노력해도 되지 않던 어려운 자세도 가능해졌다. 10개도 하기 힘들었던 동작은 50개를 해도 끄떡없다. 웬만해선 땀도 나지 않는다.


지난여름 해변의 아름다운 몸들을 보며 가장 부러웠던 게 등근육이었다. 등을 멋지게 가르는 기립근이 갖고 싶었다. 등근육을 기를 수 있는 동작을 더해 이제 운동시간 20분이 됐다.


무엇보다 놀라운 건 오랜 시간 내 어깨 위에서 생활하던 곰 한 마리가 사라졌다는 사실이다.

하루 종일 같은 자세로 작업을 하기에 어깨와 허리 통증은 어쩔 수 없는 직업병이었는데, 이 몸이 무겁지 않다. 작업량이 많은 날엔 몸이 조금 찌뿌둥한가 싶다가도, 운동을 하고 나면 다시 개운해진다.


밋밋하던 배에 그 유명한 '11자 복근'이 드러나기 시작했고, 아무리 노력해도 불편하게만 느껴지던 바른 자세도 가능해졌다.



내 몸을 사랑하게 됐다


매일 습관적으로 하다 보니 이제는 굳이 생각하지 않아도 자동적으로 몸이 움직인다. 하루아침에 갑자기 몸이 망가지지만 않는다면 여든 살까지도 지속할 수 있을 것 같다. 샤워를 못하게 되는 날이 오기 전까진 말이다.


장점을 다 나열하기도 힘들지만, 가장 큰 변화는 내 몸을 사랑하게 됐다는 거다. 내년 여름엔 나도 누군가의 운동 의지에 불을 지피는 존재가 되고 말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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