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현재 Nov 04. 2022

타이머를 샀다

'시계부'를 써보기로 했다

하루가 왜 이리 짧지?

얼마 전 을 개설 계좌명 '일론 머스크'라 지었다. 잔고는 형편없지만 그 이름의 기운이라도 받고 싶어서였다. 그 정도 부자가 되는 건 이번 생에 들겠지만 그와 내가 똑같이 가진 게  한 가지 있다. 바로 매일의 '시간'이다.


회사에 다닐 땐 시간에 대해 크게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모든 타임테이블 정해져 있었니까. 아침 9시까지 출근을 하고, 12시부터 1시까진 점심을 먹고, 퇴근 후엔 취미 활동을 하고, 다음날이 되면 또다시 출근. 그러다 주말이 되면 친구를 만나 놀거나 종일 침대에서 뒹굴거렸다. 하루를 아무 소득 없이 보내도 죄책감이 없었다. 평일 내내 열심히 일했으니 그 정도 여유는 부릴 자격이 된다고 생각했다.


프리랜서가 된 후론 하루 일과가 온전히 내 책임이 됐다. 하루에 12시간을 넘게 일을 하기도 하고, 어떤 날은 하루 종일 잠을 자기도 했다. 오늘 할 일을 밤에 할지 낮에 할지 정하는 것도 내 권한이었다. 하루를 허망하게 보낸 것도 내 탓, 꽉 채워 보낸 것도 내 덕이었다.


스스로의 고용주가 된 지 6년. 나만의 바이오리듬에 맞춰 규칙적으로 생활했지만 언제나 시간이 충분치 않다고 느꼈다. 수면 시간을 빼면 하루에 16-18시간이 주어지는데, 체감 시간은 잘 쳐줘야 10시간 정도였다.


나머지 시간은 대체 어디로 간 걸까, 내 시간만 유독 빠른 건 아닐 텐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상했다. 혹시 일론 머스크와 나의 시간이 다르게 흐르는 걸까?



하루가 왜 이리 짧지?


딱히 과소비를 한적도 없는데 카드값이 예상보다 훨씬 많이 나올 때가 있다. 혹시 카드사에서 나 몰래 금액을 더 청구한 게 아닌가 하는 의심부터 든다. 물론 그럴 리 없겠지만, 그게 아니고선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금액이다. 카드사 앱을 열고 내 결제 내역을 하나하나 훑어본다. 하나도 빠짐없이 모두 내가 쓴 돈이다.


그럴 땐 가계부를 쓰며 내가 이번 달에 불필요하게 낭비한 돈이 얼마인지 계산해본다. 이번엔 돈이 아니라 시간이니, 시계부를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각 일과에 쓰는 시간이 어느 정도인지 정확히 알고 싶었다.


휴대폰 타이머가 있었지만 더 직관적인 기계가 필요하다고 느꼈다. 다이소에 가서 3천 원짜리 쿠킹 타이머를 구입하고 내가 어떤 행동을 할 때마다 시간을 재봤다. 샤워 후 머리를 말고 로션을 바르는 데만 꼬박 30분, 밥을 차려먹고 치우는데 1시간, 글 한편을 고치는 데는 무려 3시간이 걸렸다. 각 과정에 생각보다 너무 긴 시간이 걸렸다.


가계부를 쓸 때 고정비용을 따로 계산하듯, 매일 고정적으로 쓸 수밖에 없는 시간을 계산해봤다.

밥 차려먹고 치우기 대략 1시간 x 두세 끼= 약 2시간 30분

샤워(+머리 말리기) = 30분

영어공부 + 운동 = 약 1시간

= 필수 고정 시간 : 4시간


그럼 이제 필수 고정 시간 외에 내가 매일 쓰고 있고정 여가시간이다.

유튜브, OTT = 약 2시간

SNS, 인터넷 서핑(취침, 기상 전 / 시도 때도 없이) 약 2시간

= 고정 여가시간 : 4시간


SNS와 OTT로 낭비하는 시간이 무려 4시간이나 됐다. 그것도 최소. 수면시간을 빼면 하루의 약 25%를 내게 필요 없는 콘텐츠를 보는 데에 낭비하는 셈이다.


필수 고정 시간 4시간 + 고정 여가시간 4시간 = 8시간과 수면시간을 빼면 남는 시간은 겨우 8시간. 매일 작업하는 카페에 오가는 시간과 중간중간의 휴식시간을 합하면 대략 30분, 실질적으로 일하는 것은 대략 4-5시간 정도.


여분의 시간은 길어야 두세 시간밖에 되지 않았다. 특별히 외출을 하거나 약속이 있는 날, 일이 유난히 많은 날 등의 수많은 변수가 들어갈 자리가 하루에 두 시간밖에 없는 것이다. 사실 이 두 시간도 각각의 일정에서 조금만 꾸물대면 마치 손가락 사이로 모래가 빠져나가듯 사라질 수 있다.


카드 결제 내역을 확인하듯 시계부를 찬찬히 훑어보니 모두 내가 쓴 시간이 맞았다. 당연한 결과지만, 정확히 24시간이었다.



'한 시간'의 길이


내가 착각한 것은 '나의 한 시간'의 길이였다. 1시간이라는 걸 개념적으로는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정확히 어느 정도의 양인지는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누군가 나와 같은 행동을 할 때 더 은 시간이 걸릴 수도 있다. 그렇다면 그의 1시간 '나의 1시간'보다 길다. 이렇듯 시간은 상대적이다.


회사에 다닐 때 매일 아침 적는 투두 리스트를 반밖에 해내지 못했던 이유를 이제야 깨달았다. 내 시간의 정확한 도를 모르고 있었으니, 당연한 결과다.


하루는 짧지 않을지 몰라도, '내 하루'는 짧았다. 내 시간의 속도를 바꿀 순 없으니 시간이 새는 곳을 찾아야 했다. 각종 OTT와 스마트폰에 낭비하는 4시간이었다. 이 시간을 줄여기로 했다(이에 대해선 다음 챕터에서 따로 이야기하겠다).



나만의 속도에 맞춰


같은 일과컨디션에 따라 속도가 달라지기에 타이머를 켜고 행동하는 것을 습관화해보기로 했다. 타이머를 켜고 밥을 먹는 모습은 나 자신이 봐도 유난스러웠지만 오늘 내 시간이 어디서 새어나갔는지는 알아야 하니까.


시계부를 쓴 지 몇 개월이 지난 지금, 불필요한 시간낭비를 줄이니 하루가 길어졌다. '내 시간'의 길이, 나만의 속도를 명확히 알게 됐 이제 내 속도에 맞지 않는 무리한 계획을 세워 스스로 패배감을 주행동은 하지 않는다.


연말이 코 앞으로 다가왔다. 올해가 유독 빠르게 흘러간 느낌이 든다면, 오늘 시간이 어떻게 갔는지 모르겠다면 시계부를 써보는 걸 추천한다. 내 시간의 속도 어느 정도인지, 시간이 어디서 낭비되고 있는지를 파악하는 것이 보람찬 하루를 위한 첫걸음이 될 거라 확신한다.


이전 07화 내 몸이 부끄러워졌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