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심하지 않을 결심
과연 내게 마음의 준비가 필요한가?
저녁 7시, 오늘도 운동을 하기 위해 바닥에 요가 매트를 깔고 그 위에 눕는다. 허리를 비틀며 스트레칭을 하다 보니 문득 아직 보내지 못한 업무 메시지가 떠오른다. 카톡을 열어 메시지를 보내고, 메시지를 보내고 나자 이제 화장실 휴지가 떨어졌다는 사실이 생각난다. 가성비, 형광물질 유무, 표백 여부 등을 따지며 고심 끝에 상품 하나를 고르고 마침내 주문하기를 누른다. 시계를 보니 벌써 8시다.
대부분의 일과가 이런 식으로 흘러간다. 주의력 결핍에 걸린 것처럼, 어떤 행동을 하려고 하면 그 사이에 다른 할 일이 떠오르며 꼬리에 꼬리를 문다. 이렇다 보니 행동을 결심하고 실제로 실행하기까지의 시간이 한 시간을 훌쩍 넘기기도 한다.
이 '준비 시간'을 효과적으로 줄일 순 없을까?
준비 따윈 필요 없다
공부를 주제로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는 홍진경의 영상 중에 '공부 준비만 9시간'이라는 제목의 영상이 있다. 공부를 시작할 마음의 준비를 하는 데만 하루가 꼬박 걸려 결국 책은 한 장도 펴보지 못한 채 촬영이 끝나버리는 재밌는 영상이다. 아마 대다수의 시청자가 이 '공부 준비' 영상에 공감했을 것이다. 왜, 그런 경험을 한 번쯤은 해보지 않았는가. 공부를 하려고 책상에 앉으면 책상 정리가 하고 싶고, 정리를 하면 간식이 먹고 싶고.
나 역시 어떤 행동을 할 때마다 마치 골대 앞에 서서 승부차기를 하기 전 마인드 컨트롤을 하는 선수처럼 마음의 준비를 해왔다. 하지만 내 일상은 단 한 번의 발동작으로 우리 팀의 승패를 결정할 중대한 상황이 아니지 않은가. 과연 필라테스를 시작하기 위해, 책을 읽기 위해 마음의 준비라는 게 필요할까?
사실상 내게 마음의 준비라는 것은 '이제 더는 미룰 수 없을 시점이 될 때까지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이 불필요한 '준비 시간'을 당장 없애버리기로 했다.
생각이 떠오르기 전 행동하기
이제 운동을 하기 위해 바닥에 매트를 깔고 그 위에 누우면 다른 할 일이 떠오르기도 전에 바로 필라테스 강좌 녹음본의 재생을 눌러버린다. 녹음본이 재생되는 10분 동안은 다른 생각이 떠오르더라도 꼼짝없이 몸을 움직여야 한다.
책을 읽는 도중에 괜히 카톡을 한 번 확인하거나 SNS를 열어보고 싶은 충동이 들 때에도, 스마트폰을 집어 드는 대신 그저 읽는 것을 계속했다. 그저 하던 행동을 계속하기만 하면 다른 일을 하고 싶은 충동은 사라졌다.
결심하지 않을 결심
이렇게 몸을 움직이며 쓸데없는 생각의 경로를 차단하자 하루에 열 장 남짓 읽던 책을 스무 장, 서른 장으로 늘어났다. 결심의 단계를 없애니 매일 하는 운동에 대한 심적 부담도 사라졌다.
이 '결심하지 않을 결심'은 모든 습관을 더 수월하게 만들었다. 일상적인 모든 행동을 할 때마다 불필요하게 흘려보냈던 준비 시간이 없어져 하루가 더 촘촘해졌다. 결과적으로 같은 시간 동안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게 됐다.
혹시 지금 해야 할 일이 있다면, 생각하지 말고 그저 실행해보자. 실행을 더디게 만드는 다른 행동이 끼어들 경로를 차단해야 한다. 마음의 준비가 될 때까지 기다리는 대신 지금 당장 몸부터 움직여라. 우리의 평온한 일상에 굳은 결심이나 마음 준비 따윈 필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