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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재 Dec 07. 2022

내 기분을 망치는 가장 큰 적

두 번째 화살의 실체


시청기록을 토대로 영상을 추천해주는 알고리즘은 때로 새로운 영감을 준다. 얼마 전부터 유튜브 추천 영상에 책의 한 구절이나 위인들의 인생 조언을 읽어주는 영상이 뜨기 시작했다. 굳이 화면을 보지 않아도 되는 영상들이라 단순 노동을 할 때 부담 없이 틀어놓기 좋았다. 자동 재생을 해놓고 밥을 차리거나 설거지를 할 때마다 라디오처럼 들었는데, 그중 한 영상이 새로운 습관에 대한 아이디어를 줬다.


그 영상은 붓다의 가르침 중 '화살'에 대해 설명하는 내용이었다. 붓다에 의하면, 우리의 삶에서 발생하는 크고 작은 사건은 모두 '첫 번째 화살'이다. 이 화살은 아무도 피할 수 없으며 화살을 맞고 마음에 타격을 입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중요한 것은 '두 번째 화살'이다.



첫 번째 화살과 두 번째 화살


첫 번째 화살을 맞고 나서 이 화살을 누가 쏜 것인지, 왜 쏜 것인지에 대해 계속해서 곱씹는 것이 바로 이 두 번째 화살이다. 때론 첫 번째 화살보다 이 두 번째 화살이 더 큰 타격을 주기도 한다.


첫 번째 화살은 누가, 왜 쏜 것인지 그 이유와 대상이 명확하지 않을 때가 많지만, 두 번째 화살을 쏘는 적은 언제나 명확하다. 그 적은 바로 자기 자신이다.


첫 번째 화살은 아무도 피할 수 없지만, 두 번째 화살은 피할 수 있다. 그저 내가 나 자신에게 활시위를 당기지만 않으면 되는 것이었다. 이 이론은 굉장히 논리적으로 들렸고, 당장 두 번째 화살을 쏘지 않는 습관을 들이기로 결심했다.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내가 평소에 자주 쏘는 화살은 '메시지 다시 보기'였다. 디지털 노매드인 난 온라인으로 거의 모든 업무 대화를 하기에 그 모든 대화의 기록이 스마트폰에 남았다. 때문에 일이 잘 풀리지 않거나 거래처와의 대화가 매끄럽게 흘러가지 않은 날엔 혹시 내가 경솔하게 말한 부분은 없었는지, 혹은 무례한 광고주가 어떤 말로 날 화나게 했는지 다시 찾아보는 일이 잦았다.


이렇게 이미 끝난 대화를 다시 찾아보고 그때의 감정을 다시 상기하는 것은 명백한 두 번째 화살이었다. 상황과 격식에 맞는 말을 하고, 의견을 명확히 전달했다면 그 후엔 그저 내게 주어진 업무를 최선을 다해 수행하면 되는 것이다.


혹시 '내가 부족했던 부분이 있나?' 하는 싸한 생각이 들더라도 다시 돌아보지 않기로 했다.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이미 내 손을 떠난 것은 떠난 대로 두는 것. 지나간 감정을 굳이 꺼내어 상기하고 일명 '이불 킥'을 하는 것은 시간 낭비, 감정 낭비다.



화살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두 번째 화살의 실체를 알게 된 것은 그 자체로 큰 변화였다. 그 실체를 알기 전까진 내가 이미 지나간 일에 대해 계속해서 타격을 받고 있다는 것조차 인식하지 못했는데, 이제 사후에 그 일에 대해 다시 부정적인 감정이 스며 나오려 할 때마다 '이건 두 번째 화살이다!'라는 것이 상기됐다.


두 번째 화살이 눈에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자신을 향해 활시위를 당기고 있는 내 모습이 인식됐고, 활을 다시 내려놓을 수 있었다.



바꿀 수 있는 것, 바꿀 수 없는 것


깨달음을 준 것은 두 번째 화살뿐만이 아니었다. 두 번째 화살이 우리의 의지로 바꿀 수 있는 것들이라면, 첫 번째 화살은 그 누구도 피할 수 없는 필연적인 것이다.


이 첫 번째 화살을 맞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은 없다. 그렇기에 왜 내게 그런 일이 일어나는지,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머리를 싸매고 고민할 필요도 없다. 고민하든 고민하지 않든, 앞으로도 매일 계속해서 크고 작은 첫 번째 화살을 맞는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두 번째 화살을 쏘지 않는 것, 자신의 마음을 컨트롤하는 것이다. 그게 우리가 삶에서 통제할 수 있는 유일한 거니까. 이 사실을 알게 되자 첫 번째 화살에도 전보다 훨씬 의연하게 대처할 수 있었다.



현재를 사는 방법


화살은 어떤 특정 사건이기도 하고, 이미 지나간 과거의 모든 시간이기도 했다.


두 번째 화살을 쏘지 않기로 결심한 이후로 내 인생의 모토인 '현재를 살기'에 가까워진 것이 느껴진다. 지나간 것을 돌아보지 않고, 피할 수 없는 첫 번째 화살에 대해 불안해하지 않으니 현재에 집중할 수 있게 됐다.


내 기분을 망치는 것, 내가 현재를 살지 못하게 막는 것은 언제나 나 자신이다. 내게 가장 많은 화살을 쏘는 적이 다른 누구가 아닌 나 자신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 만으로 많은 것이 바뀌었다.


두 번째 화살을 쏘지 않는 것. 우연히 알게 된 이 단순 명료한 가르침이 이렇게 큰 평온을 가져다 줄 줄이야. 앞으로는 외면적 습관뿐 아니라 내면적 습관도 자주 손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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