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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재 Dec 09. 2022

불면증 환자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양을 세는 대신 뭘 할 수 있을까?


나는 불면증 환자다. 매일 밤 침대에 누워 눈을 감고도 잠에 들 때까지 두세 시간이 걸린다. 잠드는 데 효과적이라는 호흡법을 따라 해보기도 하고, 만화 속 주인공이 그랬던 것처럼 양을 세보기도 했지만 허사였다. 다양한 종류의 수면유도제를 먹어도 봤지만 곧 얼마지 않아 내성이 생겼다.


잠들기 위해 노력하는 동안 머릿속엔 과거에 일어났던 일이나 오늘 있었던 일, 내일 할 일들이 뒤죽박죽 섞인다. 통제할 수 없이 떠오르는 이 생각들은 대부분 쓸데없는 것으로, 얼마 전 봤던 웃긴 영상이나 10년 전 만났던 연인을 떠올리기도 한다.


하루의 10%에 달하는 긴 시간을 의미 없는 시간 여행이나 양을 세는 데 쓰는 것은 명백한 낭비였다. 이 시간을 좀 더 생산적인 것에 시간을 써보기로 했다. 그러나 가만히 누워서 눈을 감고 할 수 있는 것은 생각뿐이다. 


더 생산적인 생각이란 뭘까?



상상은 현실이 된다


어릴 적부터 패션에 관심이 많았던 난 패션지 보는 것을 좋아했다. 잡지는 내게 책이라기 보단 일종의 스크랩북이었다. 셀러브리티들의 화려한 생활을 보여주는 사진으로 넘쳤고, 그중 맘에 드는 사진들을 오려 한데 콜라주 해놓고 그것을 '뮤즈 보드'라 불렀다. 이 뮤즈 보드를 보며 이 사진이 찍힌 현장의 분위기는 실제로 어떨까, 내가 이곳에 있다면 어떨까 하고 상상하는 것을 즐겼다.


10대와 20대 초반까지 만들었던 뮤즈 보드는 화려한 파티장, 호화로운 여행지로 가득했다. 10년이 지난 지금은 그 뮤즈 보드를 보며 꿈꿨던 장면을 대부분 경험했다. '원하는 미래를 생생하게 상상하면 이루어진다'는 말은 거짓말이 아니다. 다만, 무언가를 원한다고 해서 바로 다음날 내 손에 '뿅!'하고 나타나는 것이 아닐 뿐이다. 이뤄지는 데엔 때로 5년, 10년의 시간이 걸리기도 한다. 하지만 결국엔 이뤄진다.


직업을 갖기 시작하고, 더 이상 잡지를 읽지 않게 된 이후로는 더 이상 뮤즈 보드를 만들지 않았다. 원하는 삶에 대해 상상하는 시간을 가져본 지도 꽤 됐다. 이 상상을 다시 시작해야겠다고 느꼈다.



원하는 건 무엇이든


오직 잠에 들어야 한다는 일념으로 고군분투하던 시간을 그렇게 내가 원하는 미래에 대해 상상하는 시간으로 써보기로 했다.


요즘 하는 상상은 프로 작가가 되는 것이다. 떨리는 마음으로 출판사에서 온 제안 이메일을 열어보고, 출판 기획자와 미팅을 하고, 계약서를 꼼꼼히 읽어보며 계약서에 사인을 한다. 몇 달간 편집자와 의견을 주고받으며 퇴고를 하고, 고심하며 제목을 고르고, 표지 디자인 수정을 거쳐 마침내 만족스럽게 완성된 책을 손에 받는다.


기대했던 것보다 책이 팔리지 않아 처음엔 약간 실망하게 되는데, 한 유명인이 개인 SNS 스토리에 올린 책 추천 게시물이 모든 상황을 뒤바꿔 놓는다. 기껏해야 두 자릿수였던 판매부수는 순식간에 불어나 다섯 자리 수가 되고, 책이 유명해지니 다양한 제안이 들어오기 시작해 강의를 다니고 인터뷰도 한다. 작가와의 대담에 참석한 독자 중에서 나를 진정으로 알아주는 운명의 상대를 만나기도 한다.


어느 허무맹랑한 인터넷 소설처럼 들리겠지만, 이 상상은 10년 안에 현실이 될 것이다. 늘 그랬듯이.



꿀잠은 덤


모든 좋은 습관이 그렇듯, 여기에도 한 가지 생각지 못했던 효과가 있었다. 바로 잠에 더 쉽게 들 수 있게 된 것이다. 


기분 좋은 상상의 나래를 펼치다 보면 어느새 다음날 아침이 되어있었다. 밤을 새운 것이 아니라 나도 모르게 잠들어버린 것이다. 언제 잠들었는지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저 좀 더 가치 있는 생각을 하며 보내기 위해 시작한 습관인데 이런 순기능이 있을 줄이야.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한 가지 상상에 집중하다 보니 다른 쓸데없는 생각이 줄어 잠이 잘 온 것 같기도 하다. 모든 게 완벽한 미래를 상상하며 마음이 편안해진 걸지도 모르겠다. 


혹시 나처럼 불면증을 겪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수면 유도제 대신 상상하기를 추천한다. 꼭 불면증을 고치기 위해서가 아니어도 좋다. 원하는 미래를 상상하는 습관은 그 이상의 가치가 있다. 록스타가 되거나, 전용기를 타거나, 로또에 당첨되는 상상을 해도 상관없다. 상상은 자유니까. 그러다 보면 어느 날 문득 자신이 상상했던 이미지 속 그 장소에, 비슷한 모습으로 서 있는 걸 발견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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