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한된 합리성 #허버트 사이먼 #AI #AI에이전트 #의사결정 #AX
2025년 5월 아마존웹서비스(AWS)는 "한국 생성형 AI 도입 지수"라는 보고서를 발표했습니다. 국내 기업의 AI전환(AX) 수준을 알 수 있는 자료입니다. AWS에 따르면, 국내 기업의 94%가 생성형 AI 서비스를 도입했고, 조사 기업의 63%는 AI를 총괄하는 CAIO를 선임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하지만 AI를 전사적인 업무 수행에 통합 적용한 기업은 9%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죠. 여전히 많은 기업들은 해당 기업에 맞는 AI 인재의 채용, AI 개념 증명(PoC)이나 생성형 AI 활용 교육 등에 머물고 있다는 뜻입니다. AI의 도입은 일하는 방식, 기업문화 등 다양한 영역에서의 변혁(transformation)을 만드는 일임에도 아직 초보적인 단계에서 변화관리를 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AWS AGS테크노로지의 샤운 난디 총괄은 "한국 기업들의 성공적인 AX를 위해서는 CAIO를 중심으로 명확한 목표를 설정하고, 전 직원이 참여할 수 있는 변화 관리 전략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라고 말합니다.
변화 관리는 보통 해빙(unfreezing), 변화(changing), 재결빙(refreezing) 3단계를 거칩니다. 성공적인 변화 관리를 위해서는 해빙단계에서 나타나는 갈등과 혼란을 잘 풀어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렇다면 변화의 필요성과 당위성, 변화가 가져다줄 비전을 공유하면서, 새로운 추진 세력(driving forces)을 만드는 해빙 단계에서의 가장 큰 걸림돌은 무엇일까요? 바로 지금의 리더들입니다. 현재 리더의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기존의 가치관이나 기준에서 가장 성공적인 성과를 만들어낸 사람들입니다. 따라서 이들은 자신만의 사고체계와 방식이 단단하게 굳어져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특히, 단기 성과로 계약을 맺는 한국의 C-level들은 장기적인 비전을 갖고 새로운 변화에 동참하기가 어렵습니다. 지금 당장 내가 성공한 방식으로 조직을 이끌 유인이 훨씬 큰 것이죠. 실제 2025년 AI전환과 관련된 글로벌 기업을 조사한 라이터(Writer)사는 "C-level 임원 800명과 일반 직원 800명 등 총 1,600명의 지식근로자 중 31%가 조직의 AI 프로젝트를 의도적으로 방해한 적이 있다”라는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죠.
이러한 저항을 줄일 수 있어야 조직이 원하는 AI전환(AX)을 만들어낼 수 있는데요, 이는 단순한 AI 기술에 대한 경험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리더십 측면에서의 인식의 전환이 요구됩니다. 특히, 의사결정과정에 대한 점검이 요구됩니다. 조직이 AI를 활용한다는 것은 결국 의사결정의 질을 높이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AI 에이전트를 활용하여 정보 검색, 초안 작성, 피드백 및 수정 과정을 반복하여 최적의 대안을 찾아내는 것이 일하는 방식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가야 하는 것이죠.
이를 위해 리더들은 사이먼(Herbert Simon, 1978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의 '제한된 합리성(bounded rationality)'를 명확히 이해하고 있어야 합니다. 허버트는 모든 의사결정자들이 최적의 대안을 찾기 위해 노력하지만 시간의 부족, 정보의 부정확성, 개인의 한계 등의 이유로 최적 대안의 선택에 실패한다고 말하죠. 즉, 문제 해결에 있어 객관적으로 최선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제한된 정보와 대안, 주어진 시간과 비용을 감안하여 "개인적으로 만족스러운(satisficing) 선택"을 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개인적으로 만족스러운 선택이 과해지면 자신이나 자기편의 이익만을 충족시키려는 '정치적 의사결정'에 빠지게 됩니다. 자신의 이익을 만족시켜 주는 대안을 의사결정 과정 초기에 결정해 놓고 새로운 정보가 얻어지더라도 그것을 바꾸지 않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죠. 자신이 선호하는 대안에 반례가 될 수 있는 정보들은 철저히 무시하고, 자신이 입맛에 맞는 결론을 지지하는 것들만 선택하면서 오히려 의사결정의 질이 떨어지게 됩니다.
사이먼은 이러한 제한된 합리성, 정치적 선택의 위험은 "개인의 결심에 따라서, 개인이나 조직의 목표를 높임으로써, 또는 보다 정교해진 관리기법이나 컴퓨터 프로그램을 활용함으로써 개선할 수 있다"라고 말합니다. 실제 사이먼은 최초의 AI 프로그램으로 평가받는 '논리 이론가(Logic Theorist)'를 개발했으며, 인간의 사고 과정을 흉내 내 더 복잡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일반 문제 해결사(General Problem Solver)'를 만들기도 했죠.
AI 에이전트의 시대에도 의사결정은 결국 리더들의 몫입니다. AI의 활용법을 배우는 것은 너무나 중요합니다. 하지만 AI를 배우는 것과 함께 리더 스스로가 자신의 '제한된 합리성'과 '정치적 선택 오류'에 빠질 수 있다는 점을 지속적으로 학습해야 합니다. 사이먼 교수가 이야기한 개인의 결심, 높은 목표에 대한 개념화도 필요합니다. 이는 도적적 리더십, 공공선, 사회 전반의 효율성 제고 등 높은 차원의 개념을 지속적으로 학습해야 함을 뜻합니다.
이선 몰릭(Ethan Mollick)은 <듀얼 브레인(Dual Brain)>에서 "인간이 집중해야 할 분야는 AI가 어떤 일을 수행할 수 있는지, 그리고 인간이 생활하고 배우며 일하는 방식에 어떠한 변화를 몰고 올 것인지 실용적 측면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라고 말합니다. 즉, 활용하고 피드백을 주는 인간의 수준이 AI의 수준을 결정한다는 말이죠. AI시대, 단순히 단어나 기술을 아는 것을 넘어 기업문화를 새로운 시대에 맞게 변혁시키는 계기로 활용해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참고문헌]
Administration Behavior: A Story of Decision Making Process in Administrative Organization. H. A. Simon. 1957
DUAL BRAIN. Ethan Mollick. 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