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근마켓 프로 화분셀러

중고거래를 하다 깨달은 것들

by 너굴

당근마켓에서 시들어 죽은 난을 팔았다. 사실 사무실에서 처리하지 못한 흙과 함께 화분을 판 것인데, 처음엔 무료나눔을 하다가 인기가 제법 있는 것 같아 1000원~2000원 가격을 붙였다. 어제는 높이가 50cm 이상 되는 화분 2개를 올렸는데, 구매의사를 내비치는 당근러의 연락에 다각도의 사진을 전송하며 적극적인 영업을 시작했다.


당근!

[화분 2개 3000원에 주시면 감사하겠어요]


개당 2000원짜리 화분이었는데, 이걸 깎네? 하는 생각과 함께 불편한 마음이 들었다. '1000원짜리를 팔면 500원도 깎으려나. 헐값에 내놓았다고 생각했는데 흥정이 들어오니 기분이 별로네.' 하지만 이내 '무료나눔으로 시작한 화분팔이였는데...' 하며 거래 약속을 잡았다.


오늘 건물 앞에 도착했다는 연락에 내려가 보니 60대 후반에서 70대 초반 정도 되어 보이는 어르신이 하얀색 벤츠에 타고 계셨다. 차 안에서는 극동방송이 흘렀다. 젊은 당근러를 떠올렸던 탓인지, 4000원에서 1000원을 깎으신 분이 벤츠를 타고 나타나서인지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나는 잠시 멈칫했다. 화분을 차에 함께 실어드리고, 3000원 건네시며 하신 말씀에 나는 또다시 3초짜리 아노미 현상을 겪는 듯했다.


"봉투에 담지 못해 미안해요"


내가 어르신 당근러를 직접 만나기 전에 가지고 있던 정보는 닉네임과 -1000원을 원한다는 것이었다. 닉네임을 보고는 젊은 여성일 것이라 미루어 짐작했고, 방문 시간은 오후면 언제든 좋다고 한 것을 통해 어린아이를 둔 엄마를 떠올렸다. 끝으로 얼마 되지 않는 가격에서 25% D.C를 요구한, (또 볼 일은 없겠지만) 나랑은 좀 안 맞을 것 같은 사람이라는 필터를 장착했다. 이를 바탕으로 '돈은 봉투에 넣어서 건네야 한다'는 살짝 격조 있어 보이는 삶의 태도를 가진 대상을 기대하지는 않던 것이 내가 어르신 당근러를 만나 잠시 당황했던 이유라 할 수 있겠다.


이번 당근거래로 일부를 가지고 전체를 짐작하는 것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다. 비대면으로 거래대상과 이야기를 나눌 때, 내 나름의 데이터를 바탕으로 '이런 닉네임을 사용하고 이러한 종류의 물건을 사며 이런 방식의 말투를 사용하는 사람은 특정 연령대의 여성(또는 남성) 일 것이다'라는 식의 접근법으로 상대를 추측했다. 나는 고지식한 30대가 되지 않을 줄 알았는데. 내 경험이 전부인 양 살아가는 사람이 아니고 싶었는데.


사실 이렇게 길게 글을 쓸 일인가 싶기는 한데, 고민하고 생각하는 시간이 없다면 습관성 편견에 사로잡힌 사람이 될 것 같아서 끄적여본다. 글을 마치려는 순간 당황스러운 생각이 밀려든다.


내가 가격제안가능 기능을 꺼놓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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