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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werzdx Dec 09. 2020

삼선동, 기억 속을 거닐다

이사일기(2010-2020) - 8. 서교동 (2015.07)

삼선동


   서교동 집에 사는 동안 동네 그리고 도시 서울에 대한 관심이 유난히 많아졌던 것 같다. 여기저기 다른 동네들을 다녀보고, 재미있는 프로그램에 많이 참여했다. 그 중 지금까지도 기억에남는 것, 바로 '삼선동, 기억 속을 거닐다' 시간이었다.


   희섬정이라는 공간, 그리고 성북천 일대의 멋진 풍광으로 인해 나는 삼선동이라는 동네에 관심을 갖고 있었지만, 성북 쪽을 잘 알지 못하거나 근처에 사는 사람이 아니면 생소한 동네일 수 있다. 조금은 어색하면서도 예쁜 이름 삼선동.


   이날 행사는 페이스북을 하다가 알게 되었다(어떤 이들과 페이스북 친구를 맺느냐에 따라 아주 좋은 정보를 얻을 수도 아닐 수도 있다, 요즘 페북을 하는 목적은 정보습득이 가장 큰 듯). 삼선동, 기억 속을 거닐다라.. 소설가 故 박완서님의 '그 남자의 집' 소설에 관해서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걸어보는 시간. 무척 흥미가 가는 주제였다.


   행사를 주최하는 단체는 '삼선동 마을기획단'이었다. 마을기획이라, 조금 어색한 말이긴 하지만 마을에서 재미있는 무언가를 해보려는 것임을 알 수 있었다. 당시 비슷한 이름을 갖고 있는 기관들이 많이 생기기 시작할 때이기도 했다.



함께 걸을까요?


   평일 저녁이었기에 일 끝나자마자 서둘렀다. 만남 장소는 성신여대입구역에서 성북구청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다리 위. 나무데크로 된 다리였는데 어떤 행사를 위해 다들 모여 무언가를 준비하는 느낌이 드는 공간이었다. 그날도 딱 그런 느낌.


   이날 함께 걸을 코스는 앞에서 설명했듯 소설가 故 박완서님의 '그 남자네 집' 작품 속 배경, 그리고 시인 권혁웅님의 작품 속에서 등장하는 장소들이었다. 이날 설명은 삼선동 마을기획단 김민석 코디님께서 해주셨다.



   첫 번째 장소는 다리를 건너면 바로 보이는 돈암동성당이었다. 성당 위 한옥집 골목길이 소설의 주 배경이라 했다. 예전에 비해 이 주변이 많이 변했지만 성북천과 돈암동성당만은 그대로 남아있다고 했다. 소설 속에서 돈암동성당이 나온 부분을 함께 낭송해보며 그 장면들을 떠올릴 수 있었다. 어둑어둑해지기 시작하는 주위 분위기와 썩 어울렸다.


   돈암동성당을 지나 성북천 아래로 내려갔다. 내천이 지나는 동네는 여러모로 참 좋다. 그 위를 지나는 다리, 천변을 걷는 사람들의 모습, 다리 위에서 고즈넉히 아래를 내려다보는 이의 마음. 그중에도 성북천은 유난히 좋은 느낌이다. 좋은 느낌을 갖고 함께 걸었다. 어떤이가 특별히 들고 나온 청사초롱이 예쁘게 빛났다.



   이제부터는 나의 기억이 완전하지 않음을 아쉬워해야겠다. 천변을 걷다가 어느 위치에선가 우리는 다시 위로 올라왔다. 올라와서 골목으로 들어가며 진행자분의 설명을 들으며 골목을 즐겁게 걸었다. 걷다가 특별히 맛집이라고 소개해주신 곳, 당시에는 돈암시장 안에 있던 태조감자국 앞을 지났던 것은 분명히 기억한다(역시 먹을 건 확실히 기억..).


   걸으며 오래된 여관, 목욕탕, 철학관 등의 재미있는 장소들을 많이 소개해주셨던 것 같다. 모던한 도시 속에서는 보기 힘든 재미있는 장소들.


   중간중간 소설 속에서 등장한 장소들과 재미있는 곳들에 대한 설명을 들으며 우린 369성곽마을까지 걸었다. 꽤 긴 거리와 시간이었음에도 지루하지 않았다. 그리고 서울성곽에 도달했다.



   그때까지는 그 존재를 잘 몰랐던 369성곽마을. 지금은 마을사업 사례로 많이 거론되고, 앵커시설도 있는데 그 당시에는 아직 그러지 않았던 듯 하다. 성곽 근처까지 걷고 좋은 분위기를 오롯이 느꼈다.


마을 369

삼선교 다리 밟고 낙산으로 오르는 부드러운 하늘  굳은 시멘트길

북저동 복사골 꽃잎 흐르던 삼선평 모래도 씻겨가 버리고 되넘이 넘어온 새들을 부리던 혜화문 천장 봉황마저 외워앉았다

육십년  경제개발 뒤안길에 만들어져 여태껏 지켜오다 유행처럼 불어왔던
삼선동

구역 재개발 지역

이제 개발의 앞섶을 여미고 낙산 성북천 햬화문 사이 찻길 바람길 그리고 둔덕길을 따라
사람으로 마을로 인정으로 이어갈  하나의 구전 신화


   성곽에서 아래로 내려와 우리는 근처 떡볶이 집에서 출출한 배를 채웠다. 다음 거리뷰로 그 집을 찾아보았는데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없어졌을 수도 있고..ㅠ


   명확하지 않지만 4년도 넘게 지난 그 날의 기억이 아직까지 어렴풋이 남아있는 것을 보면 내게 꽤 인상적인 기억이었나보다. 그와 비슷한 프로그램을 기획해서 나도 해보리라 다짐했던 기억도 난다.




   처음 접했던 삼선동의 이야기와 밤은 빛났고 아름다웠다. '삼선동, 기억 속을 거닐다' 를 준비해주신 분들께 참 고마운 마음이었다. 청사초롱, 인동초 향기, 박완서, 권혁웅, 빛나던 이야기와 불빛들..


   희섬정 주인장 송나님과 삼선동 마을코디네이터 김민석님께서 이끌어주신 투어와 그 내용은 매우 명확하고 가치 있는 것이라 생각되었다. 소설가와 시인의 작품 속 내용들과 배경 속 그 길을 따라서 지역의 기억과 재미들을 엮어 우리들을 즐겁게 인도해 주셨다.


   요즘 난무하는 마을투어, 동네투어 같은 이름을 한 것들 중에 가장 좋았다.

   내 기억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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