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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werzdx Dec 17. 2020

소나기 소리의 인벨로프(envelope)

이사일기(2010-2020) - 8. 서교동 (2015.07)

   나는 보통 화장실 때문에 잠든 중에 두어 번은 깼다가 다시 잠에 들던지, 예정 기상시각과 근접해서 깨면 계속 깨어 있던지 하는 편이다(몸을 일으키지는 않고, 그냥 깨어만 있는 상태).


   집 전세금과 전세자금대출 연장건으로 머리가 아프던 2017년 여름, 몸이 아주 피곤했던지 전날과 이날 사이의 밤과 새벽에는 6시 쯤 딱 한 번 몸이 깼다. 화장실에 다녀와서 다시 누웠다.


   누워서 가만히 정적 속에 있는데, 온전히 평화로운 상황에서 점진적으로 소나기가 오는 상태로 변하는 순간을 맞이했다! 물론 방에 누워있었으니 오로지 그 소리 만으로. 정말로 다른 소리는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내 방으로 빗대어 상상해보자면, 수직 높이값으로는 가장 높은 곳인 책장의 일부분이 젖었다가, 그 다음에 위치한 모니터의 일부분, 장롱, 작은 책꽂이 순서로 서서히 젖어가는 상태.


   빗방울들이 범해가는 대지의 면적이 늘어나는 정도와, 하늘로부터 땅에 떨어지는 그들의 가속도 증가분이 그 짧은 시간 동안 일정하게 느껴졌다.


   소나기의 선두주자들이 대지의 면면을 범하여 그들이 처음 대지와 만날 때 느껴지던 최초의 순간들이 잦아들면, 비로소 귀에 안정감을 주는 시간이 온다. 최초의 순간들에 비해 날카로움이 없어지고 대지 전체를 적시는 안온한 느낌으로 변화한다.

소리의 인벨로프(envelope) - 이미지 출처 : https://c11.kr/kbdr


   소리의 인벨로프(envelope) 측면에서 봤을 때 *어택(Attack)*디케이(Decay)의 시간은 매우 짧지만 강렬하다. 하늘과 대지가 변화하는 신호를 귀가 먼저 알아차리고 보통 창문을 열던지, 밖을 바라보던지. 나는 누워있었으니까 귀 자체로만 그것을 받아들였지.


   2~3초 혹은 5~7초 정도 후에 *서스테인(Sustain)의 상태로 접어든다. 보통 이 때 다시 잠들 것이다. 오늘은 2초 정도만에 서스테인의 상태가 되었다. 동시에 볼륨이 작아진 편안한 상태.


   빗방울 무리들의 인벨로프에서는 대부분의 경우에 서스테인의 지속시간을 예측할 수 없으며, 서스테인이 지속되는 가운데 또다른 빗방울 무리들의 인벨로프가 다른 위치에서 시작되는 경우가 있다. 그리고 그곳에서 시작된 빗소리가 이곳으로 서서히 밀려온다. 저쪽에서 이쪽으로 패닝효과가 걸린 것처럼.


   언제부턴지 모르게, *릴리즈(Release)의 단계로 접어들었다. 비가 시작되기 전에는 느껴지지 않았던 잔음들이 아직 미약하게 남아있다. 아, 그럼 아직 서스테인의 상태인가? 역시 소나기 중에 서스테인이 언제까지 지속될지는 알 수 없군.


   다시 자야지. 어느날 이른 아침의 헛소리, 끝.



*어택(Attack) : 소리 재생의 시작 단계로, 음이 나기 시작한 후, 소리 크기가 점점 커져 최고 음량을 내는 어택에 도달할 때까지의 단계
*디케이(Decay) : 소리가 어택에 도달한 후, 서스테인 레벨까지 떨어지는 단계
*서스테인(Sustain) : 신호가 계속 지속되는 동안 소리의 크기가 일정하게 유지되는 단계
*릴리즈(Release) : 신호가 끊어진 후, 또는 음을 그만 내라는 신호가 들어온 후, 소리 크기가 점점 줄어들어 조용해질 때 까지의 단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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