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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기 소리의 인벨로프(envelope)

이사일기(2010-2020) - 8. 서교동 (2015.07)

by awerzdx

나는 보통 화장실 때문에 잠든 중에 두어 번은 깼다가 다시 잠에 들던지, 예정 기상시각과 근접해서 깨면 계속 깨어 있던지 하는 편이다(몸을 일으키지는 않고, 그냥 깨어만 있는 상태).


집 전세금과 전세자금대출 연장건으로 머리가 아프던 2017년 여름, 몸이 아주 피곤했던지 전날과 이날 사이의 밤과 새벽에는 6시 쯤 딱 한 번 몸이 깼다. 화장실에 다녀와서 다시 누웠다.


누워서 가만히 정적 속에 있는데, 온전히 평화로운 상황에서 점진적으로 소나기가 오는 상태로 변하는 순간을 맞이했다! 물론 방에 누워있었으니 오로지 그 소리 만으로. 정말로 다른 소리는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내 방으로 빗대어 상상해보자면, 수직 높이값으로는 가장 높은 곳인 책장의 일부분이 젖었다가, 그 다음에 위치한 모니터의 일부분, 장롱, 작은 책꽂이 순서로 서서히 젖어가는 상태.


빗방울들이 범해가는 대지의 면적이 늘어나는 정도와, 하늘로부터 땅에 떨어지는 그들의 가속도 증가분이 그 짧은 시간 동안 일정하게 느껴졌다.


소나기의 선두주자들이 대지의 면면을 범하여 그들이 처음 대지와 만날 때 느껴지던 최초의 순간들이 잦아들면, 비로소 귀에 안정감을 주는 시간이 온다. 최초의 순간들에 비해 날카로움이 없어지고 대지 전체를 적시는 안온한 느낌으로 변화한다.

소리의 인벨로프(envelope) - 이미지 출처 : https://c11.kr/kbdr


소리의 인벨로프(envelope) 측면에서 봤을 때 *어택(Attack)*디케이(Decay)의 시간은 매우 짧지만 강렬하다. 하늘과 대지가 변화하는 신호를 귀가 먼저 알아차리고 보통 창문을 열던지, 밖을 바라보던지. 나는 누워있었으니까 귀 자체로만 그것을 받아들였지.


2~3초 혹은 5~7초 정도 후에 *서스테인(Sustain)의 상태로 접어든다. 보통 이 때 다시 잠들 것이다. 오늘은 2초 정도만에 서스테인의 상태가 되었다. 동시에 볼륨이 작아진 편안한 상태.


빗방울 무리들의 인벨로프에서는 대부분의 경우에 서스테인의 지속시간을 예측할 수 없으며, 서스테인이 지속되는 가운데 또다른 빗방울 무리들의 인벨로프가 다른 위치에서 시작되는 경우가 있다. 그리고 그곳에서 시작된 빗소리가 이곳으로 서서히 밀려온다. 저쪽에서 이쪽으로 패닝효과가 걸린 것처럼.


언제부턴지 모르게, *릴리즈(Release)의 단계로 접어들었다. 비가 시작되기 전에는 느껴지지 않았던 잔음들이 아직 미약하게 남아있다. 아, 그럼 아직 서스테인의 상태인가? 역시 소나기 중에 서스테인이 언제까지 지속될지는 알 수 없군.


다시 자야지. 어느날 이른 아침의 헛소리, 끝.



*어택(Attack) : 소리 재생의 시작 단계로, 음이 나기 시작한 후, 소리 크기가 점점 커져 최고 음량을 내는 어택에 도달할 때까지의 단계
*디케이(Decay) : 소리가 어택에 도달한 후, 서스테인 레벨까지 떨어지는 단계
*서스테인(Sustain) : 신호가 계속 지속되는 동안 소리의 크기가 일정하게 유지되는 단계
*릴리즈(Release) : 신호가 끊어진 후, 또는 음을 그만 내라는 신호가 들어온 후, 소리 크기가 점점 줄어들어 조용해질 때 까지의 단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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