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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 다 갔다.

by awerzdx

저마다 유난한 더위를 말한 올 여름, 아직 계절이 끝나지 않았건만 아침 저녁으로 이렇게나 시원해져버렸으니 이런 글을 남기지 않는 것도 이상하다고 할 수 있겠다.


올해 봄은 유난히 길었다고 기억된다. 여느해 같으면 5월이면 더워지곤 했는데 확실히 기후가 달라지고 있는 건지,


매년 시기의 흐름이 달라지는 건지, 유닌히 시원한 봄이었다. 6월 초가 되었음에도 여름임을 예감할 수 없을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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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소일각 치천금, 봄밤의 한 순간은 천금과도 같은 값어치가 있다.


해마다 4월 초가 되면 몇날 며칠 이 말을 되뇌이며 봄의 아름다움을 만끽하곤 했는데, 올 4월 초엔 도무지 그 말이 나오지 않았다. 봄을 말하기엔 여전히 쌀쌀한 날씨 때문이었겠지.


모두를 힘들게 한 것만 같은 올 여름의 끝, 아니 아직 한 달은 남았을 순간에 '올 여름은 길지 않았고, 천천히 더워졌고, 그렇게 심하게 덥지는 않았으며, 나는 집에 에어컨 없이 살았다.' 이런 말이 참 뜬금 없고 속 없이 들릴지 모르겠지만 모두 사실이야, 정말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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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한 더위와 높은 습도가 같이 찿아온 시기는 딱 일주일 정도였다. 2주 전쯤 갑자기 시원했던 날이 찾아오기 바로 전 주, 딱 그 일주일 정도 빼고 올 여름 힘든 시간은 별로 없었다.


이상하게 시원했던 일주일이 지난 후 맞이했던, 한낮 최고기온이 38도까지 오르던 땡볕 더위에도 습도는 높지 않아 그다지 힘들지 않았다, 고 나는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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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내가 사는 아파트 앞 동 베란다를 가만히 바라봤다. 그리곤 에어콘 실외기가 없는 집이 몇 개쯤 되는지 헤아려보았다. 총 60세대가 살고 있는 앞 동에서 에어콘 실외기가 없는 집은 예닐곱 집쯤 되었다.


초저녁에 불이 켜지지 않은 채 밖에서 봐선 아무런 흔적도 보이지 않는, 아무도 살고 있지 않아보이는 집이 두 어채 있었으니, 나처럼 에어콘이 없는 집은 앞 동에 다섯 집 정도 되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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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과 귀로는 더욱 자극적인 콘텐츠로 감각을 채우길 원하면서, 배달 어플리케이션으로 정작 자신의 몸을 이용해 귀찮음을 행하려는 감각은 점점 더 퇴화시키려는 요즘 시대에,


음식을 시켜먹어야 할 때는 반드시 포장을 해와 귀찮음을 행해 몸과 마음의 감각을 유지하고,


시각과 미각과 청각은 미세한 변화도 감지해낼 수 있게 계속 잔잔함과 자극을 번갈아가며 충족시키는 삶이 되어야 하겠다.


여름이 또 갔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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