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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werzdx Oct 23. 2020

즉석우동 옛날짜장

이사일기(2010-2020) - 3. 용강동 (2011.04)

용강동


   용강동 집에는 2011년 4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살았는데, 비록 주거상황은 좋지 못했어도 꽤나 즐거운 시간들이었나보다. 나의 기록들을 살펴보려 페이스북 글들을 뒤져보니 지금은 연락하지 않는 이들과의 대화도 활발했고, 재미있는 이야기들도 많았다.


   열악한 집이었지만 지내면서 겪었던 재미있는 일들, 서울과 전주를 오가며 했던 즐거운 공연들에 대한 이야기들이 가득했다. (아마도) 저마다 취업과 직장생활 때문에 힘들고 건조한 일상을 보내던 친구들과 학교 동아리 후배님들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자유롭게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나를 많이 부러워한 것 같다(하지만 현재를 보세요... 여러분들이 옳았습니다...).


   용강동 집으로 이사하고 얼마 후 나는 선바위역 근처에 있는 SNS 마케팅 회사를 다니게 되었다. 일은 해야 했기에. 한강에 맞닿아있던 집에서 나와 대흥로를 따라 걷다가 대흥역 – 삼각지역 – 선바위역 경로로 출퇴근을 했다.


   대흥역에서 한강 부근까지의 대흥로는 재미있는 볼거리나 풍경은 거의 없었다. 최근엔 그 근처를 가보지 않아 어떻게 변화했는지 잘 모르겠지만 별로 특색 없는 동네의 도로 느낌. 차들도 드문드문 다녀서 무단횡단하는 사람들이 정말 많았고.



즉석우동 옛날짜장


   재미 없어보이던 길이었지만 내 주의을 끌던 가게가 하나 있었는데, ‘즉석우동 옛날짜장’이라는 간판을 하고있는 가게였다. 만약 아는 사람의 가게였다면 용납할 수 없을 것 같은 폰트의 간판을 하고 있어 아무도 눈길을 주지 않을 것 같았지만, 나는 출퇴근길에 그 앞을 오가며 그 안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그곳이 내 눈길을 끈 이유는 사장님이 짬뽕을 만드는 모습 때문이었다. 늘 조금씩 손님이 있었고, 날렵하게 생긴 사장님은 그 손님들을 위해서 군더더기 없는 동작으로 짬뽕을 조리했다, 길을 걸으면서도 그 모습을 조금씩 볼 수 있었던 이유는 가게의 규모가 아주 작았고, 오픈 주방이었기 때문이다.


   ‘언제 한 번 먹어봐야지.’ 하고 생각했지만 왠지 단골손님들만 가는 느낌의 가게여서 진입장벽이 있었다. 들어가볼까 말까 가게 앞에서 고민하던 것을 5일 정도 하다가, 여섯 번째 고민을 하려던 날, 용감하게 입성했다.


   “짬뽕 하나 주세요.”

   사장님은 나를 한 번 돌아보시고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눈짓과 제스처로 내 주문을 접수.


   한 차례 손을 씻으시고는 웍을 데우고, 고춧가루와 다진 마늘 등을 넣고 볶으시더니 야채를 함께 넣으신다. 몇 번의 웍질을 하시더니 오징어와 조개 등을 넣고 다시 웍을 휙휙. 그리고는 (아마도) 육수를 붓고 끓이다가 뭔가를 더 넣고(두반장 같은) 좀 더 끓인다. 다른 냄비 속에서 익혀진 면을 넣고 완성.


   당시만 해도 지금처럼 요리가 트렌드일 때가 아니어서 티비나 인터넷에서 짬뽕 만드는 법은 볼 수 없었는데, 날렵하고 멋진 가게의 사장님이 내 바로 앞에서 역동적으로 짬뽕을 만드는 모습! 오 멋지다. 왠지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할 것 같아서 짬뽕을 받아들고 정중하게 인사를 하고, 후루룩.


   조리되는 모습을 바로 옆에서 보고, 완성되자마자 내 앞으로 온 짬뽕이어서인지 더 맛있었다. 왠지 더 신선한 느낌도 들었고. 맛있는 음식을 별로 먹어보지 못했던 내겐 정말 맛있는 짬뽕이었고, 그 날 이후에도 몇 차례 더 방문하여 사장님의 멋진 퍼포먼스를 감상했다.


   인터넷에 그 집에 대한 기록이 거의 없는 것으로 보아, 유명한 집이거나 맛집은 아니었다. 그래서인지 그 곳은 2011년 말에서 2012년 초 즈음 횟집으로 바뀌었고, 그 후에 배달업체 사무실이었다가 지금은 자동차 썬팅, 코팅 가게로 바뀐 듯 하다.


   내게는 짬뽕이 만들어지는 모습을 생생히 감상했던 것, 그리고 동거인과 생활 패턴이 달라져 혼밥을 해야할 때가 많아져서 자주 이용했던 의미가 있었다.


 

   p.s) 이 집에 대한 정보를 찾다가 추가로 알게 된 사실 하나, 대흥역, 서강대 일대에는 ‘옛날짜장, 즉석우동’ 과 같은 간판을 하고 있는 저렴한 식당들이 유난히 많았다고 한다.


   그런 가게들로부터 유추할 수 있는 식당의 종류는? 바로 기사식당. 택시기사님들이 유난히 많이 이용하는 ㅁㅍ닭곰탕도 인근에 있는 것을 보면 이 동네가 택시기사님들이 쉬어가는 혹은 식사를 많이 하는 이유가 있는 곳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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