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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werzdx Nov 26. 2020

서울 시민과 서울 사람

이사일기(2010-2020) - 7. 성산동 (2014.08)

서울 시민이 되어야 할 필요충분조건


   대학교에 입학할 즈음까지만 해도 나는 내가 언젠가 서울 시민이 되리라는 상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그저 내가 매일 마주하는 곳 전라북도 전주, 그 바운더리 안에서 살아갈 것이라고 생각했지. 내가 살고 있는 배경의 공간이 바뀌리라는 상상은 아예 해본 적이 없었다.


   서울 시민이 된 건, 내 브런치 안 이사일기 시리즈의 시작일 때였다. 2010년 2월. 동아리 동기와 후배와 함께 음악을 해볼 것을 결의하고, 일원이 되기를 고대하던 음반 레이블과 계약을 하고, 서울로 올라오게 되었다. 그 때부터 서울 시민이 되었지.


   서울 시민이 된 이유는, 어쩌면 삶의 조건과 맞닿아 있었다. 집을 임차하여 안정적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해당 집의 확정일자를 받아야 했고,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전입신고를 해야만 했기에. ‘확정일자를 받아야 안전하다’는 누군가의 조언에 따라 나는 ‘타의에 의해’ 서울 시민이 되었다.


   이후 일을 하며, 각종 행정적인 일들을 처리하며, 집과 관련된 조건들을 만족시키려 나는 언제나 서울 시민이어야 했고, 2010년 2월 이후 나는 그 조건을 빠짐없이 만족시켰다.


   하지만 서울의 장소들에 대해, 곳곳에 대해 이야기 할 때 나는 늘 뒤로 물러서야 할 때가 많았다.



즐거운 서울


   지금의, 현재의 이야기를 할 때 혹은 서울 곳곳의 주거조건에 대해 이야기할 때 나는 늘 서울 사람들보다 아는 게 더 많았다. 이를테면 신정네거리나 고척동의 집값이 왜 저렴한지(아파트 말고 오래된 빌라나 원룸), 서울 동북권에서 집값이 저렴한 곳은 어디인지 등등 보통 평생 한두 군데의 동네에서만 살아본 서울 사람들에 비해 이사 때문에 이 동네, 저 동네 알아본 적이 많았던 나는 서울의 곳곳을 더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1990년대나 2000년대 초반의 서울에 대해서 나는 거의 알지 못한다. 나는 유년시절과 중고등학교 그리고 대학교 시절을 서울에서 보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가족과 함께 보내는 단란한 시간, 어릴 적 친구들과 보냈던 추억 속 서울의 페이지들이 내겐 없다.


   내겐 집값이 저렴한 동네를 돌아다니며 살펴본 곳곳의 모습과 정취들이 기억나고, 살고 싶었지만 가격 혹은 조건 때문에 계약하지 못하고 돌아섰던 선망의 동네들이 있었다.


   흔히 지방 출신 사람들이 하는 말들 중 ‘서울 시민은 되었지만, 서울 사람은 될 수 없다’가 있다. 나도 크게 공감했던 말이기도 하고,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그렇다.


   서울에서 태어나고 자란 사람들을 몹시 부러워 할 때가 있었다. 비정상적인 구조 탓에 모든 것이 서울로 몰리는 우리나라에서 서울 그 자체는 어떠한 특권이라 생각되었다. ‘저 사람이 나보다 앞서 있는 것은 서울에서 태어나 어려움 없이 자라고 있기 때문이야.’ 하는 어리석은 생각을 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이제 그런 생각은 하지 않는다. 세상은 저마다의 사람들, 각자가 노력하기에 따라 달린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태생이 게으른 나는 어떤 조건이 있었던들 지금과 같은 모습을 벗어나지 못했을 거야, 라고 생각한다.


   서울로 오게 된 것이, 그래도 나는 좋다. 어떠한 계기가 없어서 계속 고향에 머무르는 제한적인 삶을 살았다면 어땠을까? 모든 가정은 무의미하지만 그 언젠가의 어떤 선택으로부터 나는 이곳에 와있고, 지금이 참 재미있다.



#메인 사진 : 2010년 10월 광주프린지페스티벌 공연 때문에 방문한 광주 어딘가에서 하헌진, 이랑, 회기동단편선, 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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