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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werzdx Dec 01. 2020

피터팬 컴플렉스 (1)

이사일기(2010-2020) - 7. 성산동 (2014.08)

확률의 확률


   이전에 언급했듯 자꾸만 혼자가 되어가는 느낌, 함께할 때 별로 즐겁지 않은 마음 등으로 인해 나는 계약기간인 1년을 채우고 다른 곳으로 옮기기로 했다. 마포구 일대를 이곳저곳 알아보았고, 그 채널은 늘 피터팬의 좋은방 구하기 카페였다.


   왠지 부동산으로 집을 알아보면 ‘숨겨진 저렴한 곳’은 발견할 수 없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피터팬의 좋은방 구하기 카페에서는 정말 숨겨진 1센티, 아니 1밀리미터를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피터팬 카페의 장점만을 열거하지만, 그 1밀리미터를 발견하고도 물론 어려운 단계가 있다. 지금부터는 그 1밀리미터를 발견한 후 거쳐야 할 확률이다.


- 발견한 그 집이 정말 좋은 집일 확률 -> 여기서 상당수의 확률이 줄어든다.

- 가격 대비 정말로 좋은 그 집을 내가 1번으로 보러 갈 확률 -> 이것 역시 쉽지 않다.

- 보러 간 그 집이 계약 상 아무런 문제가 없을 확률 -> 요즘엔 전보다는 많이 믿을만한 듯

- 보러 간 그 집 주인이 전세자금대출 혹은 보증금/월세 비율 조정을 해줄 확률 -> 신축이어서 전세로 받아야하는 집 혹은 대출을 그냥 싫어하는 집주인 아니면 요즘엔 전세자금대출은 왠만하면 해주고, 월세가 주 생활요인인 집 말고는 보증금/월세 비율 조정도 잘 해주는 편

- 다음 보러 올 사람이 오기 전까지 앞에 열거한 이 모든 것들이 확인되어 안전하게 계약해도 좋을 확률 -> 짧은 순간 판단이 필요할 때도 있음

- 현재의 세입자가 이사할 날짜와 내가 들어갈 날짜가 맞을 확률, 그러니까 내가 새로운 집에 들어갈 날에 맞추어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집에 들어올 세입자도 내가 날짜에 맞게 구해놓았을 확률(이전 집과 내가 임대차 계약 기간이 끝나지 않은 경우), 서로의 이사날이 정확하게 맞지 않더라도 내가 새로 들어갈 집의 보증금이 그다지 많지 않던지, 이사 나갈 집이 약간 날짜 양해를 해줄 확률, 전세자금대출을 받는 경우 은행으로부터 대출이 제날짜에 될 확률(2, 3주 여유를 가져야 함) -> 마지막 관문과도 같은 이것을 통과하지 못해 이사가 좌절되는 경우도 더러 있음


   쓰다보니 흥분해서 막 열거했는데, 일반적인 이사의 테크트리를 따른다면 마지막의 것은 신경쓰지 않아도 되는 항목이다. 나는 이사의 대부분이 계약기간 만료가 아닌 상황이었기 때문에 모든 경우에 곱절의 어려움이 있었지만.



다시, 집을 구하다


   이 집의 계약기간은 8월초까지였고, 6월 중순 경부터 집을 보러 다녔다. 지속적으로 보러 다녔다기보다는 가끔 피터팬카페를 둘러보다 괜찮은 집이 나오면 보러 가는 식으로 천천히 시작했다.


   설렁설렁 피터팬카페를 보다가 공덕동 쪽 괜찮아 보이는 집을 발견했다. 가격도 괜찮고, 반지하도 아닌 투룸이라.. 다른 이에게 선수를 빼앗기기 전에 서둘렀다.


   신공덕동 삼성래미안 아파트가 내려다보이는 효창공원 근처 동네였다. 공덕역에서는 아파트 옆으로 높은 언덕을 올라야 하고, 효창공원역에서는 버스로 갈 수 있는 동네. 이전에 효창공원 근처에 살던 친구가 있어서 아주 어색한 곳은 아니었다.


   집은.. 사진에 속았다. 리모델링을 했다고는 하지만 집 천장이 낮았고, 투룸이라고 할 수 없는 구조. 무엇보다 1층임에도 반지하와도 같은 지형이어서 예전의 악몽도 떠올라 살짝 보고는 그냥 나왔다.


   신공덕동 삼성래미안 아파트 옆 언덕 쉼터에서 내려다보이는 저 아래를 조망했다. 바로 앞에는 숨이 턱 막히는 아파트들이 몇 채 서 있었고, 그 건물에는 모두가 같은 모양을 한 네모난 집들이 다닥다닥 빼곡히 박혀있었다.

   주위 풍광을 완벽하게 방해하며 드높은 건물을 저렇게도 멋대가리 없게 세워놓고, 저 안에 있는 집 하나 하나마다 몇 억씩 내고 사람들은, 가족은 평안을 얻는가? 휴식을 얻는가? 만족을 얻는가? 또 그것을 위해 어느 누구의 얼마나 많은 노력과, 수고로움과, 어떤 권리에 대한 포기가 담겼을지.


   씁씁하게 하늘을 바라보면서 그냥 1년 더 살까 하는 생각도 잠시 해보고, 부슬부슬 내리기 시작하던 비를 맞고 내려왔다. 공덕역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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