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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werzdx Dec 02. 2020

피터팬 컴플렉스 (2)

이사일기(2010-2020) - 7. 성산동 (2014.08)

   첫 번째 집 보러가기 시도를 실패로 마친 후, 여유를 두고 삼보일배하는 마음으로 찬찬히 집을 더 보기로 했다. 서두른다고 잘 될 것 없으니 좋은 집이 나올 때까지 느긋한 마음으로 기다렸다. 어제 글에서 좋은 집을 발견한 후 거쳐야 할 수많은 확률을 언급했던 이유는, 바로 오늘 할 이야기 때문이었다.


   좋은 집을 구하고도 이후의 여섯 단계를 거쳐야만 완성할 수 있다는 ‘계약 기간 내 마음에 드는 집으로 이사’를 기적적으로 달성한 순간이 곧 내게 찾아왔기 때문이다. 그때를 회상하며 그 여섯 단계를 나열하니 노트북 키보드 자판이 손상될 만큼 흥분한 마음이 되는 것이었다. 물론 지금은 다 지난 일이다.



1밀리미터 발견, 신중에 신중을 기해


   2015년 6월 중순에서 말로 향하고 있던 어느 날, 회사 점심시간이 끝날 무렵 습관처럼 피터팬의 좋은방 구하기 카페에 들어갔다. 언제나처럼 [직거래] 서울투룸이상 -> [투룸] 마포.은평.서대문 메뉴로 들어가서 집들을 살폈다.


   점심 먹고 커피 한 잔 하러 카페에도 다녀온 터라 점심시간의 남은 여유가 별로 없었는데 그만, 정말 괜찮은 집을 하나 발견하고야 말았다. 서교동 반지하이지만 괜찮아 보이는 투룸, 가격도 이 정도면 아주 저렴! 아아.. 이것을 발견한 순간 지금 바로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안될 것 같았다.


   보증금 3000만원에 월세 30만원인 집이었는데 전세자금대출을 받을 요량으로 혹시 보증금을 더 높이고 월세를 줄여줄 수 있는지 세입자에게 물었고, 집주인이 전세 6000만원으로도 해줄 수 있다는 답을 들었다!


   글을 올린 세입자에게 연락하고 오늘 오후에 집을 보러가겠노라고 했다. 이런 저런 핑계를 대서 어렵사리 오후 반차 허락을 맡고 먼저 은행으로 향했다.



   ‘이정도면 정말 괜찮은데, 첫 번째로 보러 가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바로 그 집을 보러 가기 전에 은행에 먼저 들른 건, 전세자금대출이 잘 나오는 집인지 먼저 확인해보기 위해서였다. 만에 하나 전세자금대출이 되지 않는 집인데 계약금을 걸었다간 그야말로 낭패를 보고야 말 것이므로, 먼저 보러간 이에게 빼앗길 수도 있는 상황이었지만 그래도 신중을 기했다.


   나의 상황과 집의 상황을 설명하고, 안전하게 대출이 나오는 집이라는 것을 확인하고, 다시 한 번 지금의 세입자와 연락을 주고받고, 아직 계약을 하기로 한 사람은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보러갈 집으로 향했다.


   익숙한 동네, 익숙한 곳이어서 찾아가는 건 어렵지 않았다. 지금 살고 있는 곳에서 걸어서 10분이면 닿을 수 있는 곳.



모든 단계를 통과


   다행스럽게도 내가 첫 번째로 보러 온 사람인 것 같았다. 사진에서 보듯이 집은 괜찮았다. 13평 짜리 투룸이었는데 신혼살림을 하고 계셨고 아이도 있어서 짐이 많았다. 짐이 많아서 좁아보이던 것, 건물 자체가 조금 오래되어서 샷시가 아주 새것은 아니었던 점(나무 창문은 아니니 되었다) 말고는 아무 문제도 없어보였다. 내겐 아주 괜찮았다.


   ‘이 정도 집이면 계약금을 걸고 가도 괜찮겠다.’

   이날의 결론에 쉽게 도달한 것은 절대 아니었다. 이미 모든 서류를 준비해서 은행에 가서 대출이 잘 나오는지 여부를 확인했으며, 주인께서 전세로 돌려줄 수도 있다는 것도, 집이 괜찮다는 것도 확인했다. 현재의 세입자와 이사날짜도 확인했고.


   이제 마지막 관문이 남았다. 주인께서 전세자금대출에 동의를 해주실 것인가? 집주인분은 연세를 많이 드신 할아버지셨지만 말씀을 나눠볼수록 정확하고 괜찮은 분이라는 것을 느꼈다. 보증금 3천에 월세 30만원이면 전세로 전환했을 때, 금리가 점점 더 떨어지고 있던 해당 시점에 보통 8천에서 9천 정도는 받으셨어야 했는데 쿨하게 6천에 맞춰주셨다. 그리고 예상대로 전세자금대출 동의도 문제없이 해주시기로 했다.


   “우리 집 들어오는 젊은 분 사정이 있으니 내가 생각해줘야지. 이사 나가려는 사람하고 복비도 꼭 반반 나눠서 내요.”


   ‘하.. 지극히도 상식적인 집주인의 마인드가 이렇게도 감사할 줄이야..’


   지금껏 집주인들에게 겪었던 언짢고 차가웠던 일들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가면서, 나는 눈물을 흘릴 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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