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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werzdx Dec 03. 2020

도서대여카드의 기억

이사일기(2010-2020) - 7. 성산동 (2014.08)

빈 카드에 이름 적기


   더 나은 집으로 이사 준비를 마쳤고, 짐을 하나 하나 싸기 시작했다. 이사할 집은 현재 집에서 도보로 10분 밖에 걸리지 않았지만 이사를 준비하는 과정은 똑같았다. 이사갈 곳이 가깝다고 해서 대충 싸도 되는 짐이 있는 건 아니었으니까. 

   짐을 싸다가 책을 한 권 발견했다. 내가 아주 오랫동안 갖고 있는 책이다. 고등학교 1햑년 때, 독서동아리에서 했던 장 그르니에의 '섬'. 꽤 유명한 책이어서 읽은 사람도, 좋아하는 사람도, 저마다의 감상도 참 많은 책이다. 나는 여전히 그 책을 온전히 이해하거나 충분히 느꼈다고 생각하지는 못한다. 그냥 내가 느끼기에 좋은 문장이 많았다고 기억되고, 여전히 1~2년에 한 두번씩 꺼내보는 책이다.


   독서동아리 선생님께서 그 책을 '금주의 토론해볼 책'으로 정해주셨었고, 나는 어렵사리 읽어 나갔다. 그 책을 학교 도서관에서 빌렸던 것 같다. 그리고 책의 맨 뒤 도서대여카드에는 친하지는 않지만 왠지 모르게 내가 동경하고 있던 아이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내 기억이 정확히지 않을 수 있다. 다른 책과 혼동했을 수도. 부디 내 기억이 맞기를 바랄 뿐).


이미지 출처 : 세계의 끝님 블로그(blog.naver.com/PostList.nhn?blogId=koenja)

   왜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 때부터 나는 책을 빌릴 때 늘 책의 도서카드를 확인하는 습관이 생겼던 것 같다. '잘 읽을 것 같지는 않지만 왠지 빌리고 싶은 책', '중간에 힘들어서 포기할지언정 왠지 한 번 쯤은 도전해보고 싶었던 책'을 집어 들어 그 책의 도서카드를 보고 이 책을 빌린 사람이 누구였을까 확인하곤 했다.


   아무도 빌린 이가 없는 책이면 왠지 희열을 느끼기도 했고, 역시나 내가 예상했던 사람이 그 책을 빌렸던 경우, 그리고 전혀 예상치 못했던 친구가 이 책의 대출자였음을 확인하기도 했고.





음반, 혹은 책을 낸다면?


   고등학교 때 전주 시내 북문승강장(차이나타운) 근처에 일본 애니메이션을 빌려주던 '보물섬(?)'이라는 가게가 있었다. 한 친구 때문에 그곳에 자주 갔는데, 그 때 빌려본 '귀를 기울이면'에서 바로 도서대여카드에 얽힌 이들간의 이야기가 나온다.


책 '도서대출중'의 표지

   도서대여카드에 낭만이 섞여 있으려면 이성간에 서로 같은 책을 연이어서 빌려보고, 서로에 대해 궁금해하는 상황 정도는 있었어야 했던거다. 남고였던 학교 도서관만 갔지, 학생회관이나 시립도서관은 별로 가지 않았던 것이 후회스럽군..



   음반을 내게 된다면 음반 케이스 뒷면에 음반대여카드 넣는 곳을 만들어 붙이고, 카드를 만들어 넣고 싶었다. 노래 제목, 만든 사람, 부른 사람, 연주한 사람 등을 적어넣어도 좋고, 아님 구매자가 음반대여카드로 이용해도 좋게끔.


   음반은 내지 못했으니, 도서대여카드를 만들기 위해서라도 내 맘대로 내 책을 내볼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도서대여카드가 표3(뒷 표지의 반대편)에 붙어있었는지, 내지의 마지막 페이지에 붙어있었는지는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메인 사진 출처 : https://blog.aladin.co.kr/nama/594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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