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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werzdx Dec 04. 2020

이사 후, 뭐든 다 있는 곳

이사일기(2010-2020) - 8. 서교동 (2015.07)

또 한 번의 이사


   시간은 흘러 어느덧 2015년 7월. 2010년부터 총 열 군데의 집에 살고 있는 내 이야기도 이제 여덟 번째 집까지 왔다. 이사 차시로는 마지막에 다가오고 있지만 시점은 여전히 2015년이다. 집을 구하는 일도 경험이 쌓임에 따라 확실한 안목과 노련함이 더해져서 최근의 집들에서는 모두 2년 넘는 기간동안 거주하고 있기 때문.



   서교동집은 꽤 괜찮은 곳이었다. 반지하이긴 했지만 13평 투룸에 집 구조도 반듯 반듯, 넓찍해서 좋았다. 앞선 글에서 소개했던 좋은 집을 구하고도 '계약하기까지 거쳐야 할 6단계'도 무사히 잘 통과해서 집 계약에까지 이르렀다. 그리고는 이사. 이곳에서의 시작 날짜는 7월 18일.


   망원동, 성산동 일대에 이사왔을 때 늘 들르곤 했던 곳. 이사날 바로 다이소에 갔다. 살아가는 동안, 이사짐을 싸는 동안, 이사를 하는 동안 없어졌거나 버리게 되는 물건은 꼭 있었다. 그런 물건들을 채우려 다이소에 꼭 들른다.



그곳에서, 그 혹은 그녀


   나의 기억에 근거해보아도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오면 거의 모든 이들은 으레 다이소 혹은 생활용품 마트에 들르게 된다(그런 곳에는 남성들이 더 많고 한 번에 사는 물건이 많다, 살림을 마련할 때는 확실히 여성보다 남성들이 서투른듯). 그리고 그 혹은 그녀가 얼마나 많은 물건을 사려고 들고 있는지, 혹은 잘 찾고 있는지, 뭘 먼저 사야할지 헤메고 있는지 보면 그 사람의 사연을 대강은 짐작할 수 있다,


   냄비, 후라이팬, 국자, 주걱, 화장실 슬리퍼, 대야 등 살고 있는 도중에는 잘 사지 않게 되는 물건들을 골라서 들고 있다면 백 프로 그는 이제 막 지방에서 올라와 이 곳으로 이사 온 사람이다.


   표정부터 서투르다. 하지만 서투름과 동시에 그의 눈빛에는 기대감이 가득해서 아직 힘들다는 느낌은 없는 그런 아이덴티티.


   반면 꽤 많은 물건들을 골랐지만, 전혀 서투름이 보이지 않고 표정에도 당황한 기색이나 넘치는 기대감이 없는 얼굴이라면 그는 상경해서 살고 있다가 몇 번의 이사를 경험한 사람인데 새로 물건들이 필요한 경우이거나 둘이 살다가 각자가 갈라진 경우 등으로 추측할 수 있다(이번 이사에서의 나와 같은 경우).



   간혹 서툴러 보이지는 않지만 서울분이 아닌듯한 부모님(주로 어머니)과 동행하는 경우가 있다. 나의 경우 몇 번 경험하였던 일인데 부모가 보시기에 자식이 너무 마음에 안 들게 살고 있는 경우 혹은 너무 힘들어하는 기색을 느끼셨을 때, 그 와중에 이사를 하게 되는 경우라고 짐작해볼 수 있다. 그럴 경우 나 자신이 꽤 한심하게 느껴지고 죄송스럽기도 하지.


   오늘 오후 대강 짐을 풀고 시장에 들렀는데 짐을 드는 모습조차도 서툴렀고, 맞게 샀는지 확인하듯 비닐봉투를 뒤적뒤적 했으며, 얼굴에는 아직 힘든 기색보다는 서울 생활에 대한 기대감이 역력했던 한 청년이 시장 입구 옆 다이소에서 나오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생전 알지도 못하는 그를 마음 속으로 조용히 응원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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