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태어났다. 책을 덜 읽어야 했다.
<시간은 없고, 잘하고는 싶고> - 모처럼 에세이를 읽었다. 웬만하면 안 읽는 장르다. 내 독서의 70%는 비문학 전문서적(경제, 경영, 행동심리, 수학, 의료, 기타 자연과학/사회과학), 30%는 자서전/평전이다. 그럼에도 오랜만에 에세이를 읽은 이유는 한 줄의 문장이다. "아이가 태어났다. 책을 덜 읽어야 했다."는 말이 내 이목을 확 사로잡았기 때문이다. 안 그래도 똑같이 느끼던 참이었다. 아이가 태어나서 개인적으로 독서나, 학교 공부나, 운동을 충분히 할 수 없는 게 계속 마음에 짐처럼 느껴졌다. 아이는 (거의) 항상 예쁘지만, 그렇다고 아이 때문에 자기 계발에 쓰는 시간이 현저히 줄어든 상황까지 사랑스럽진 않다. 때문에 매일 고군분투한다. 나는 그런 아빠다.
매일매일의 아쉬움을, 자주 허덕이는 마음을, 조각 시간을 모으는 일이 가치 있다는 믿음을 시간이 부족한 많은 사람들과 나눠보고 싶다... 미래의 무엇을 위해 근면하고 싶진 않다. 다만 아이를 기르는 동안에도 나 자신을 보듬고 성숙한 인간으로 나아가는 일에 소홀하고 싶진 않다.
시간도 저장과 불러오기가 되면 얼마나 좋을까. 대학시절에 난 넘치는 시간을 어쩔 줄 몰라 장작처럼 모아 불태우곤 했다. 공부를 중간고사와 기말고사 직전 과목별 4시간 정도만 했기 때문에 차고 넘치는 게 시간이었다. 깨어있는 모든 시간은 여자 친구(지금의 아내)와 함께였다. 새내기 때부터 연애를 하다 보니, 매일 함께 보낼 시간이 많다는 사실이 행복하기도 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넘치는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갈팡질팡했다. 우리가 봤던 많은 영화, 만화, 드라마들은 대부분 그저 불태우기 위한 장작에 불과했다. 우리는 그런 것들을 진심으로 즐기지 않았다. 그런 취미들을 통해 진심으로 즐거움을 느끼도록 만들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그랬다. 그렇다고 달리하고 싶은 것도 없던 시절이었다. 그때 태워버린 장작들을 모아다가 지금 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태어난 지 오늘로 딱 12주 된 우리 딸아이는 나와 아내의 시간을 (아주 많이) 먹으며 쑥쑥 자라고 있다. 내가 우리 외할머니의 시간을 먹고 자라난 것처럼. 우리 할머니가 나를 키우는 데 써주신 시간을 내가 우리 아이에게 쓴다면, 이 시간은 원래 내 것이 아니었나 보다. 그저 윗세대에서 아랫세대로 흘러가는 잠시 빌렸다가 돌려주는 그런 시간인가 보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빌렸으니 그 절반 만이라도 열심히 돌려주자.
누군가 그랬다. 시간이 없는 게 아니라 우선순위가 없는 거라고. 못하는 게 아니라 더 하고 싶은 다른 무언가가 있어 안 하는 거라고. 당연히 최우선 순위에 와야 할 육아를 내 자기 계발과 같은 위치에 놓고 싶어 하는 내 욕심이 문제다. 아이의 성장 못지않게 내 성장도 중요하다는 이런 내 욕심이 분에 넘치는 것일까. 아직 30대 초반, 이뤄가야 할 것이 이룬 것보다 많은 이 시점에 아이를 위해 잠시 멈춰서는 게 두려운 건 불필요한 내 조바심일까. 아이의 성장과 내 성장의 가운데는 어디쯤일까.
아이를 위해서, 나를 위해서, 또 아내를 위해서 자녀는 일단 하나만 잘 키우기로 했다.
커버 이미지: Photo by Derek Thomson on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