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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혁재 Jun 05. 2020

시작은 우연에서부터 - 2


됐다. 드디어 이메일이 왔다! 


날짜는 1월 30일. 오토데스크(Autodesk) 1차 면접을 본 지 2주 만이었다. 보통 1차 면접 결과는 며칠 내로 금방 알려주는 게 보통이라 내심 좌절하고 있던 터였다. 앞선 글에서 밝혔듯이 1차 면접을 말아먹었기 때문에 연락이 다시 안 와도 이상할 건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당사와 채용 프로세스가 진행될수록 점점 더 느낀 거지만, 인사팀의 업무처리 속도가 상당히 느렸다. 생각보다 커뮤니케이션이 명확하거나 신속하지도 않았고, 내부 의사결정이나 결제도 더뎠다. 인사팀의 이런 답답한 업무처리는 2차 면접이 끝난 뒤에 더 빛(?)을 발하며 나에게 심적 고통을 안겨주게 된다.


어쨌든 늦었지만 연락은 왔고, 바로 2차 면접 일정을 잡았다. 회사가 샌프란시스코에 있고 나는 버지니아에서 학교를 다니고 있었기 때문에 2차 면접 역시 본사 면접(on-site interview)이 아닌 화상통화 면접이었다. 면접관은 내가 인턴쉽을 하게 될 팀의 팀장이었다. 직급은 Senior Manager. (참고로 미국 비금융권 회사의 일반적인 직급체계는 아래서부터 이렇게 올라간다: Analyst < Senior Analyst(또는 Associate) < Manager < Senior Manager < Director < Senior Director < Vice President < Senior Vice President < Executive(CEO, CMO, CFO 등). 다행히 이번 면접은 순조로웠다. 그 사이 다른 기업들과 인터뷰를 하면서 어느 정도 경험치가 쌓이기도 했고, 그날 컨디션도 괜찮았다. 운도 역시 좋은 날이었는데, 한 면접 질문에 대한 내 답변이 면접관의 학창 시절 경험과 연결이 되면서 공감대가 형성됐다. 역시 면접은 반은 운이다.


면접을 잘 본 만큼 결과를 더 초조한 마음으로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하루하루 애가 탔다. 마음에 더 여유가 없었던 건, 3차 최종면접까지 갔던 American Express 인턴쉽 채용에서 탈락 소식이 날아왔기 때문이다. 다된 밥이라고 생각했는데 놓치고 나니 더 어깨가 무거워졌다. 이제 손에 남은 카드는 Autodesk 밖에 없었다. 느낌은 좋았지만, 이 놈의 인사팀 연락은 또 도통 오질 않았다. 더욱 나를 희망 고문했던 건 며칠 뒤 날아온 한 통의 이메일이었다:


Hi Jay,
 
I hope this note finds you well. How was your conversation with Joe(가명)? 

I wanted to let you know that the team overall enjoyed chatting with you and is moving to next steps. I’ll be working on those in the next couple of days and should have more information tomorrow/Monday.  

Do the dates – June 1st through August 21st work with your academic schedule?  

Warm Regards,
Annie(가명)


내가 마음에 든다면서 다음 단계로 넘어가자는 내용이었다. 좋은 거 아니냐고? 아닌 건 아닌데, 대체 어떤 회사에서 저렇게 애매한 표현을 쓴단 말인지. 다음 단계라는 게 3차 면접을 의미하는지, 아니면 이제 결정했으니 채용 오퍼에 사인을 하자는 건지 도통 불분명했다. 희망의 불씨는 살았지만, 아직 좋아하긴 일렀다. 오퍼 레터에 사인하기 전엔 절대 끝난 게 아니기 때문이다. 인사팀의 이후 업무처리도 또 한 번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이메일에는 분명 내일이나 월요일에 연락을 주겠다고 했지만 화요일까지 연락이 오지 않았다. 기다리다 못해 내가 연락을 했더니 미안하다며 며칠만 더 기다려 달라고 했다. 참 의사결정과 내부 프로세스가 느린 회사라고 생각했다. 단점이 없는 회사는 없을 테니, 그나마 이게 제일 큰 단점이길 바랄 뿐이었다.


2월 15일, 드디어 최종적으로 오퍼 레터가 이메일로 날아왔다.


Dear Jay,

Congratulations! We are thrilled to offer you temporary employment in our University Internship Program. You will be in the position of Intern – Financial Analyst. An offer from us means that a lot of people here want you to join our unique and passionate team. Details about our offer are in this letter and its attachments. There’s a lot of information included, so, if you have questions about anything, please reach out to us...


2주 간 재고할 시간이 주어졌지만, 나는 지체 없이 바로 사인했다. 다른 면접도 남아있는 게 없었고 비록 인사팀의 느린 업무처리가 맘에 걸리긴 했어도 너무 멋진 회사기 때문이다. 실제 근무할 때 마주하는 회사는 또 다른 존재지만, 적어도 내가 꿈으로만 꾸던 실리콘벨리에서 독보적인 제품을 만드는 메이저 테크 회사기 때문에 매우 만족스러운 자리였다. 비록 2주 정도 지나서 구글에서 면접요청이 날아오긴 했지만, 뭐 그거 본다고 붙으리란 보장도 없고, 또 오퍼에 한 번 사인한 뒤에는 결정을 뒤집기가 상도덕상 모하기 때문에 구글 면접은 내가 거절해야 했다. 참나. 구글 면접을 내 손으로 거절하는 이런 날도 있구나 싶었다.


친구의 한 마디 '여기 지원했어?'로 시작된 나의 오토데스크 채용과정은 이렇게 장장 3개월 만에 끝을 봤다. 그 사이 딸아이도 태어나고 복수학위 공부도 하고 취업 준비도 하느라 고달팠는데, 그래도 역시 결과만 좋으면 일단 장땡이다. 요즘 에세이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를 훑어 읽고 있는데, 다른 건 몰라도 일단 열심히 산다고 해서 결과가 무조건 따라오는 게 아니라는 작가의 말에 정말 공감한다. 더 열심히 해서 떨어지는 사람도, 덜 열심히 해도 붙는 사람도 항상 있다. 내가 어느 쪽이 될지는 지나고 돌아보기 전에는 모른다. 정말 너무너무 미치도록 하고 싶은 일이라면 붙을 때까지 매달리면 되고, 그게 아니라면 방향을 틀어서 다른 방면에서 성공하면 된다. 분명 적어도 어느 한 분야에서는 내가 바로 그 '덜 열심히 해도 붙는 사람'일 거라 믿고 말이다.



Photo by Markus Winkler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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