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어떻게 CFO가 되었나요?
며칠 전 우리 회사 CFO(최고 재무관리자)와 1:1 면담을 가졌다. 시가총액이 50조 원에 달하는 상장기업의 CFO와 일개 인턴의 만남이다. C급 임원과 면담을 하는 건 증권사에서 자산운용사로 이직할 때 했던 사장 면접이 마지막이었다(역시나 면접 이후 사장님과 말을 섞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CFO 스캇은 나뿐만 아니라 재무 사업부에서 일하는 모든 인턴들과 1:1 면담을 진행 중이다. 엄청나게 바쁜 사람일 텐데 우선 그 정성이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신입사원도 아닌 잠깐 있다 떠날지도 모르는 인턴들에게 굳이 시간 할애를 하는 건 왜일까? 이거 물어보는 걸 까먹었다.
30분 정도의 짧은 면담이었지만 나름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스캇이 매우 수평적인 커뮤니케이션 스타일이어서 C급 임원이라는 사실은 티도 나지 않을 정도였다. 이 전에도 인턴 오리엔테이션에서 얼굴을 본 적은 있었지만, 실제로 대화를 나눠보니 더 진솔하고 인간적인 모습이었다. 한국으로 치자면 그냥 임원 아재인데 권위주의가 없다 보니 대화에 불편함이 없어 좋았다. 미국 와서 이런 격 없는 대화를 많이 하다 보니 이제 진짜 다시 한국 가서 회사를 다닐 순 없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내가 사장이라면 또 모를까.
마지막으로 질문할 기회가 주어졌다. 나는 물었다. 당신은 어떻게 CFO가 되셨나요? 정답이 없는 질문이란 걸 알고 있었지만 저 사람의 생각이 궁금했다. 어떤 사람과 대화를 하더라도 내게 제일 흥미로운 주제는 바로 어떻게 이 사람이 이곳까지 오게 됐는가 하는 여정에 관한 것이다. 엔지니어로 커리어를 시작한 스캇은 어떤 과정을 거쳐 지금의 CFO 자리까지 와있는 것일까. 목적지가 있는 항해였을까 아니면 하루하루 열심히 살다 보니 여기에 닿아있는 것이었을까. 그게 듣고 싶었다.
잘 모르겠다고 그는 답변을 시작했지만 역시 그럴 리 없었다. 요지는 조직 내외에서 어떤 자리든 더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는 자리를 선택함으로써 자기가 잘 모르는 분야에 대해 더 알아가는 노력을 쉬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즉, 연봉을 많이 주거나 직급이 높은 곳을 찾아가지 않고 미래에 자신이 리더가 됐을 때 필요한 스킬셋들을 갖춰가는 데 도움이 되는 자리를 추구했다고 한다. 말처럼 쉽지 않은 일일 텐데 역시 커리어적으로 성공한 사람은 생각뿐 아니라 행동도 다르다는 걸 배웠다.
한 가지 추가적으로 롤모델을 정해서 그 사람과 닮아가려고 노력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스캇은 내게 조언해줬다. 이미 자기가 원하는 걸 가진 사람을 닮아가려고 노력하다 보면 그 사람이 가진 비슷한 무언가를 가지게 될 테니 말이다. 어릴 때 현대 정주영 창업자가 내 롤모델인 적이 있었는데 지금은 누군지 잘 모르겠다. 롤모델이 없어서인지 내 성장도 정체된 느낌이다. 닮아가고 싶은 단 한 사람이 필요한 지금이다.
업무 외 시간에는 뭘 하냐고 물어서 나는 글을 쓴다고 했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답답한 마음을 그나마 글쓰기라는 방법으로 배출하는데 누군가 내 얘기를 들어준다는 게 신기하고 보람차다고 말이다. 기회가 된다면 지금 하고 있는 실리콘밸리 인턴 경험을 주제로 책도 써보고 싶다고 말했더니 큰 관심을 보였다. 자기 아들의 여자 친구도 한국 사람인데 글쓰기를 좋아해서 미디엄(Medium)에 글을 쓰고 있다면서 링크를 내게 공유해줬다. 나도 내 브런치 링크를 공유했는데 혹시나 구글 번역기를 통해서 내 글을 읽을지도 모르겠다.
벌써 인턴 8주 차. 아직 뭘 하고 살고 싶은지는 잘 모르겠지만 확실히 시간이 흐를수록 우리 회사는 점점 좋아지는 것 같다. 친절하고 똑똑한 사람들이 좋은 제품을 만드는 실리콘벨리의 멋진 소프트웨어 기업. 난 과연 몇 주 뒤 여기로부터 입사 제안(Full-time offer)을 받게 될까?
커버 이미지: Photo by Ian Schneider on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