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 속이라면 잠시 멈춰 설 때
1.
2022년이 끝나가는 시점, 신년이 되면 매주 3개의 글을 쓰며 흐름을 놓치지 말자 다짐했습니다. 주제는 플랫폼과 콘텐츠 어느 사이로 놓고 매주 지속할 수 있는지를 고민해 보자였습니다. 3개씩 3주를 쓰다 보니 3개월은 쓸 수 있겠구나 싶기도 했습니다. 6개월 24주 동안 72개의 글을 꾸준히 썼으니 일단 스스로의 약속은 지킨 셈입니다. 토요일을 글 쓰는 날로 정하니, 출장을 가는 날은 공항에서, 시차 적응이 안 된 토요일 새벽에도, 독감에 걸렸어도, 실리콘밸리 은행이 파산해 혼비백산한 그날에도 스마트폰을 붙잡고 글을 쓸 수 있었습니다.
2.
무엇보다 경기 침체 속 글로벌 OTT와 빅테크의 행보가 궁금했습니다. 넷플릭스와 디즈니를 비롯한 콘텐츠 사업자나 구글이나 메타가 이 상황을 어떻게 헤쳐나갈지 행간을 읽고자 했습니다. 이들은 2023년을 '효율성의 해'로 선언한 메타처럼 인건비를 포함한 고정비를 과감하게 줄이고, 메타버스와 같은 확실치 않은 신규 사업을 정리하며 핵심 사업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허울 좋은 '구독자수'와 같은 지표를 내던지고 수익성을 최우선 기치로 내세운 넷플릭스가 그래도 선방하고 있는 반면, 디즈니는 2022년 5조 원 넘는 적자를 기록한 스트리밍 사업부를 정리하느라 골머리를 앓고 있습니다.
3.
한국의 K콘텐츠 사업자 역시 적자와 성장 부진에 허덕이고 있습니다. <기생충>이 아카데미상을 받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던 CJ ENM이 어닝쇼크에 주춤하고 있습니다. 티빙과 콘텐츠 웨이브가 연간 천억 원대 적자 속에서 넷플릭스와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습니다. 웹툰 명가라 불리는 네이버웹툰과 카카오엔테인먼트 역시 각기 다른 이유로 적자에 허덕이고 있습니다. 한 때 또 다른 K콘텐츠 시대의 숨은 주역이라 불리던 웹툰 업계는 이제 생존을 위협받고 있습니다. 기생충과 BTS를 필두로 정점을 향해 가고 있던 K콘텐츠 산업이 이제는 정점을 찍고 하락세로 접어든 게 아닌가 걱정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모든 지표가 코로나 이전으로 회귀하면서 일시적 조정으로 끝날지, 구조적인 문제로 영속적 일지는 더 지켜봐야 하는 대목입니다.
4.
그래서 우리는 '어둠'과 '비운' 사이에 있습니다. 빅테크를 시작으로 정리해고 소식이 헤드라인을 연일 장식 했고, 은행권의 불안과 높은 인플레이션 우려는 끝나지 않았습니다. 네이버와 카카오는 2022년 역대 최대 매출을 기록했지만 수익성은 악화되고 있어 심각한 내홍을 겪는 중입니다. 엔데믹이 되면서 콘서트 경기는 되살아나고 있으나, 영화관과 웹툰 및 영상 콘텐츠 OTT 플랫폼의 성장세는 꺾였습니다. 코로나 시기 누가 더 '우상향'을 많이 하느냐? 의 게임에서 이제는 누가 더 매출을 버티면서 '수익성'을 높일 수 있는가? 의 게임으로 변모했습니다. '우상향'의 시대에 묻혔던 많은 이슈들이 '수익성'의 시대에는 불거져 나오기 시작할 것입니다. 그래서 본격적인 '비운'은 아직 시작조차 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5.
한국 경제는 여전히 침체와 회복의 기로에 서 있습니다. 중국 리오프닝, 실내 마스크 착용의무 해제 등 호재가 있으나 수출 부진과 내수 침체를 뒤집기에는 부족해 보이기 때문입니다. 통계청이 3월 31일에 발표한 '2월 산업활동동향'에 따르면, 1월 생산과 소비, 투자가 늘면서 양호한 시작을 보였습니다. 생산, 소비, 투자가 모두 증가한 것은 2021년 12월 이후 14개월 만입니다. 하지만, 글로벌 경기 둔화에 따른 반도체 수요 감소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1분기 실적이 '어닝쇼크’ 일 가능성이 높게 제기되고 있고, 3분기까지 실적 악화가 지속될 것이라는 전망입니다. 수출 부진이 이어지면, 2023년 경제성장률이 1% 후반에서 1% 초반까지 추락할 수 있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습니다.
6.
그럼에도 ‘희망’의 ‘씨앗’을 꿈꾸어볼 수 있을 듯합니다. 중국의 리오프닝으로 인한 수요 회복과 이로 인한 중국 빅테크의 성장은 회복의 신호탄이 될 수 있습니다. IMF는 중국 경제의 회복 가시화를 전제로 2023년 세계경제성장률 전망치를 2.7% ('22년 10월 예측)에서 2.9% ('23년 1월 예측)로 상향 조정하기도 했습니다. 경기 침체로 부진을 겪던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아마존, 메타 등 미국 5대 빅테크가 2023년 1분기에 이어 2분기에도 시장 전망치를 웃도는 실적을 기록했습니다. 생성형 인공지능(AI)이 본격적으로 도입되는 2024년부터는 더 가파른 고성장을 꿈꾸어볼 수도 있을 듯합니다.
7.
‘개와 늑대의 시간(l’heure entre chien et loup)’이라는 프랑스어 표현이 있습니다. 어둠이 자욱하게 깔리며, 낮도 밤도 아닌 애매모호한 경계의 시간에 저 멀리 보이는 짐승이 개인지 늑대인지 구분할 수 없는 시간대를 의미합니다. 지금 우리는 안개 자욱한 개와 늑대의 시간 어딘가에 있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속도보다는 방향성입니다. 그래서 매주 트렌드를 기록하며 지금이 '어둠'인지 '희망'인지를 가늠하고 싶었습니다.
이 브런치북은 그렇게 쓰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