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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영로스팅 Feb 01. 2024

혁신을 가로막는 재무적 기준

똑똑한 선도 기업이 혁신과 거리가 멀어지는 이유는 역설적으로 더 똑똑해지고 체계화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똑똑한 경영자들은 분석을 통해 가장 수익성 높은 고객들에게 집중하고, 기존 주류 고객이 원하는 제품과 서비스에만 집중합니다. 재무 부서도 회사 기조에 맞추어 매출과 손익 기준을 더 강화하면서 오히려 혁신을 저해하는 함정에 빠지게 됩니다.


혁신을 가로막는 대표적인 네 가지 재무 함정이 존재합니다.

 

먼저 순현재가치(NPV)의 함정입니다. 미래 현금흐름을 예측하고, 이를 요구 이자율로 나누어 산출되는 순현재가치 수치는 신규 사업에 대해 매력적이지 않게 나올 가능성이 높습니다. 신규 사업의 미래 현금 흐름을 예측한다는 것 자체가 어렵지만, 신규 사업인 만큼 비용 요소 투입가 클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더 큰 함정은 '파르메니데스의 오류'에 있다. 현실세계의 조건은 절대 변하지 않는다고 주장한 그리스 논리학자의 이름을 딴 이 오류는 혁신 사업을 추진하지 않는 현재 회사 상태가 지속될 것이라 가정합니다. 하지만 모든 것이 변화하는 현대 사회에서 혁신하지 않으면 경쟁 심화, 비용 증대 등 상태는 지금보다 악화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문제는 회사의 어느 누구나 지금 상태가 얼마나 더 나빠질지 예측하기 어렵다는 데 있습니다. 대규모 조직에서 '마이너스 가정'을 용감하게 손들고 나서기는 어렵습니다. 


두 번째는 고정비용의 함정입니다. 기존 사업은 고정비용이 매몰 비용화 되어, EBIDTA 또는 잉여현금흐름(FCF)으로 계산하는 반면, 신규 사업은 신규 투자비(고정비 등)를 포함해 계산하기에 기존 사업이 훨씬 더 매력적으로 판단될 수밖에 없습니다. 기술이 변화하고 있음에도 기존 사업자는 기존 기술을 기반으로 한 사업에 더 매몰될 수밖에 없는 반면, 기존 고정비가 없는 신규 사업자는 신규 기술을 통해 사업을 전개할 수 있습니다.

  

세 번째는 주당 순이익(EPS)에 대한 집착입니다. 상장회사에서 주당 순이익은 그 어느 지표보다 중요합니다. 오늘날 경영자들은 단기 주가 관리에 집중하라는 압박을 여러 방향에서 받고 있습니다. 그래서 확률은 낮으나 장기적 실적 개선에 도움이 되는 혁신 프로젝트에 투자를 꺼리는 경향이 커지게 됩니다. 재임기간이 짧고 단기간 성과에 따라 인센티브를 받는 전문 경영인 입장에서는 장기적 이익을 희생해 단기 성과를 끌어올리는 것이 합리적 선택입니다. 주주(주인)의 이익이 경영자(대리인)의 이익과 일치하기 어려운 '주인-대리인' 이슈가 여기서 발생합니다. 

 

마지막으로 관문(Gateway) 방식의 절차가 가지는 함정입니다. 대부분 대기업은 단계 별로 신규사업의 진행 여부를 결정합니다. 초기 단계에는 광범위하게 혁신 기회를 검토하다 각 단계별로 명확한 기준을 두어 거르는 작업을 수행합니다. 각 단계별 '문지기'들은 진척 상황과 프로젝트의 잠재력을 기반으로 다음 단계로 넘기거나, 이전 단계로 되돌려 보완시키거나 아니면 폐기하게 됩니다. 문제는 각 단계에서 요구하는 재무적 기준이 예측 불가능하다는 데 있습니다. 초기 시장에 진입하는 사업의 경우, 매출 잠재력 계산의 정확도가 낮을 수밖에 없으며, 비용도 예측 불가능한 요소를 포함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모든 것이 예측 가능하다고 가정하는 재무 부서 주도의 '관문' 방식의 프로젝트 진행은 혁신 프로젝트 수행을 오히려 저해합니다.


따라서, 혁신 프로젝트를 실행까지 연결하기 위해서는 반대로 할 필요가 있습니다. 해당 사업이 의미가 있으려면 어떤 기준을 충족시켜야 할지를 먼저 정하고 소거법 형태로 해당 사업을 검토하는 것입니다. 회사 차원에서 수용가능한 최소의 매출, 손익, 현금 흐름을 제시하고 해당 프로젝트에서 검증할 요소들을 정리하여 점검 목록을 만듭니다. 각 항목은 적은 비용으로 검증할 수 있는 순서에 따라 나열하며 소거법을 통해 접근해야 합니다. 해당 접근의 전제는 성공에 대한 가정을 사전에 명확하게 정의하고 이런 가정이 실제로 타당한지 최대한 적은 비용으로 빠르게 검증하는 방식을 따라야 합니다. 


대부분 혁신이 실패로 끝나는 이유는 틀린 답이 나와서가 아니라 애초에 올바른 질문을 던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애초에 잘못된 질문은 잘못된 답을 도출합니다. 많은 기업들이 혁신을 추구하면서 함정에 빠지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Clayton M. Christensen, Stephen P. Kaufman, and Willy C. Shih, "Innovation Killers: How Financial Tools Destroy Your Capacity to Do New Things", Harvard Business Review (January 2008)> 


이전 09화 '파괴적 혁신'을 위한 조직 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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