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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이 May 17. 2024

소중한 것을 바라보는 사람에게

24.04.30. 좋은 문장 하나

그래서 이 눈먼 사람들, 추상성에 삶 바친 사람들은 제 힘닿는 데까지 현실을 솥에 넣고 휘저어 정수를 뽑아내고 자신이 준비한 퍼즐 판에 여기저기 붙여본다. 가끔은 그 쓸모없어 보이는 일이 누군가를 구원하는데 나도 그렇게 삶을 버텨냈다.
(책의 말들, 175페이지 인용)

 이 눈먼 사람들, 철학자들을 말하는 내용이다. 이 책의 작가는 '어떤 추상성은 삶을 조타하는 힘이 된다', 며 철학자들이 얼마나 추상적인 것을 붙잡고 들여다보고 또 생각하는지, 그리고 그것이 누군가에게는 소중한 일이 될 수 있는지를 말한다.

 철학과 전공 수업을 처음 들었던 기억이 여전히 내게 생생히 남아있다. 그때는 철학 수업은 듣고 싶고 악기 부느라 바쁠 때고 그래서 나는 거기서 제일 어려운 수업을 듣고 철학을 포기하자,라는 바보 같은 마음으로 형이상학 수업을 신청해서 들으러 갔었다.

 형이상학은 존재에 관한 학문으로 영어로는 metaphysics라고 한다. 자연학 이전의, 자연학을 넘어선, 이라는 뜻인데 수업에서는 자연철학, 고대 철학부터 시작해 철학사를 따라 존재에 관한 철학자들의 철학을 훑었다. 자연 철학자들은 '있는 것'에 대한 근본, 원질을 찾으려 했다. 세상은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가에 대해 물로 이루어져 있다고, 공기, 무한자, 불 혹은 원소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존재와 그로 인한 세상에 관한 다양한 주장이 중세와 근대, 현대에도 있었는데 나는 거기서 하이데거의 철학에 반했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철학에 관심을 내려두기로 해놓고서는 정신없이 철학과 수업에 빠져들고 말았다.

 지금도 집에서 철학 책을 많이 읽는다. 요즘은 장자가 문득 보고 싶어 져서 강신주의 <장자수업>을 읽고 있다. 더불어 힐쉬베르거의 <서양철학사>도 읽고 있다. 그래서 드는 생각인데, 내가 그때 형이상학 수업을 듣지 않았다면 나는 도대체 집에서 뭘 읽고 있으며 무슨 생각을 하고 살고 있을지 궁금해진다.

 철학은 극도로 추상적인 일이다. 그런데 철학사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거로 논쟁도 하고 논문도 써내고 그 사람들은 그 추상적인 단어와 문장에 대해 몹시 진심이어서 놀라게 될 때가 많다. 그래서 몇 년 전의 어린 나는 나도 저런 '내' 철학이 갖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그래서 지금도 틈만 나면 철학과 대학원에 가게 되기를 고대하고 있다. 저렇게 확신하며 주장할 수 있는 철학이 있다는 것은 축복이지 않을까. 그 철학이 어느 누군가에게 어떤 대접을 받건 나는 그런 자세가 철학이든 음악이든 무엇을 하던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에세이를 쓰면서 산문이란 무엇인가, 하는 생각에 골라 읽은 책이 <책의 말들>인데 문장이 단정하고 곱다. 그리고 한 내용에 다소 짧게 붙인 생각들이 조용히 읽힌다. 에세이 공부용으로 읽은 첫 책인데 철학 내용을 담고 있어서 기쁘다. '그 쓸모없어 보이는 일이 누군가를 구원하는데 나도 그렇게 삶을 버텨냈다.'라는 말에서 나는 위로를 받았다. 철학과 복수전공을 하고 있다면 다들 그런 걸 왜 하냐는 말을 대놓고 하는데 나는 거기서 엄청난 상처를 받았다. 대놓고 왜 그런 짓을 하냐는 말에 네가 뭘 알아,라고 화를 내며 대답하고는 도망가버렸는데 어딘가에도 저런 사람들이 또, 다시 있을 거라고 생각하니 기쁘다.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에게도 저런 것들이 하나씩 있을 거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따뜻해진다. 어쩔 수 없이 찾아간 수업에서 만난 친구 같은 생각들, 혹은 겨우 지켜낸 공부의 과정들, 누구도 이해하지 못했던, 그렇지만 소중하게 지낸 시간 같은 것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자신을 어딘가에 내어주고 산다. 나도 세상을 그렇게 배웠다.




 그렇게 소리 없이 분주하게, 그리고 성실히 살아가는 사람 중에는 추상적인 사상을 아주 소중하게 만져 글로 써 내놓는 사람이 있다. 그런 사람을 우리는 '철학자'라고 한다. 한때는 나도 철학자가 되기를 꿈꿨던 때가 있는데 지금은 그 꿈이 조금 흐려졌다. 가감 없이 사상을 만들어내고 퍼즐 짜놓듯이 논리적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펼쳐두는 사람은 언제나 그러한 사상들을 사랑한다.

  모든 직업이 자신의 방식으로 세상을 대하고 사랑한다. 그러나 '세상은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가' , '해는 어째서 내일도 뜰까' 하는 극도의 보통의 세상이 말하는 실용성에서 떨어진 생각을 하는 철학자들은 우리가 살아있는 이곳을, 살아있는 동안 그것대로 사랑하면서도 그냥 내버려 두고 지나칠 생각이 없는 것 같다.

 탈레스는 하늘의 별을 관찰하다가 바닥에 난 구멍을 발견하지 못해 그곳에 결국 풀썩 빠졌다고 한다. 그것을 보고 누군가는 비웃었다고 하는데, 나는 그 말을 듣고 머릿속을 지나치는 수많은 철학자를 떠올렸다. 별을 관찰하다가 자신이 발 붙인 땅을 제대로 신경 쓰지 못한 그 사람의 삶의 방식이 조금은 모자라면서도 사랑스럽다고 생각했다. 탈레스는 서양 철학의 아버지라고도 불린다. 그리고 세상이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가에 대해 가장 처음 답을 내놓았던 사람이다. 그의 별 관찰 일화는 철학자들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철학자들이 내놓는 이야기를 신기해하며 공부했던 시기를 생각하면 그때의 나는 밝다. 어느 때보다도 밝게 보인다. 지금도 철학책을 손에서 놓지 못하고 보곤 하는데 나에게 그런 것이 있다는 것이 반갑고 신기하다. 생각을 파고들고 새로운 생각을 내놓고 다시 그 생각에 생각을 덧붙이고 파고드는 일이 내게는 소중한 일처럼 여겨졌다. 그렇게 펼쳐진 생각은 다른 누군가의 생각이 되고 그리고 어쩌면 생각의 시작이 되고를 반복하며 철학은 이어져왔다. 그런 학문이 있다는 사실이 무척 다정하게 느껴진다. 무엇보다도 다정하고 밝게. 세상에는 이런저런 것들이 있고 내가 읽은 저런 책도 있고 저런 사람도 이야기도 있고 나도 있다. 이 세상에 속하고 있다는 사실이 문득 다시 느껴진다.

 위에 인용했던 글의 작가도 그런 추상성으로 구원받았다고 말한다. 그런 작가의 문장에서 묘한 반가움을 느꼈다. 에세이 공부용으로 읽었는데 좋은 문장이 많이 나와서 기뻤다. 평소에 팬이었던 저자라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밑줄 친 문장이 꽤 많은데 기회가 된다면 다시 소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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