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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이 May 10. 2024

푹 자고 나면 가득 피어 있을 거야

24.04.30. 밝은 낮

 일곱 시쯤 일어나서 아침을 먹고 휴대폰을 확인하고는 밀린 카톡에 답장을 하고 다시 잔다. 카톡이라 해봐야 매일 연락하는 친구 둘에게 온 게 다지만 그래도 무슨 중요한 것 마냥 꼬박꼬박 답장을 하고 침대에 눕는다. 그리고 다시 잠들어서는 오후 한시쯤 일어나 점심을 먹고 이렇게 글을 쓴다. 오늘은 오후에 일어나서 문득 공연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혼자 했던 공연이라고는 학교 콘서트홀에서 했던 졸업 연주 밖에 없고, 팀 활동을 하려고 꾸려진 팀에 들어가기도 했지만 내 몸 상태가 따라주지 않아서 쫓겨나듯이 나왔다. 그런데 오늘은 그냥 아주 넓은 곳에서 자리 잡고 앉아서 청성곡이 불고 싶었다. 가끔 이럴 때가 있는데 나는 그러면 참지 못하고 악기를 꺼내와 집에서라도 분다. 그런데 요즘은 악기를 쉬고 있는 참이라 불고 싶은 걸 참고 올해 청춘 마이크 모집이 언제인지 알아봤다.

 내 이야기는 악기 이야기로 시작해서 그 이야기로 끝난다. 늘 그렇다. 악기를 불지 않아도 일어나서 악기 생각을 하고 악기를 부는 생각으로 하루를 끝낸다. 어제는 <장자 수업>을 읽다가 바람과 구멍 이야기를 듣고 악기 생각을 했다. 나는 어딘가로 끌려가는 사람처럼 속수무책으로 그 앞에 서 있다. 서게 된다.

 일어나서 아침을 먹고 다시 자고, 그리고 다시 일어나서 노닥거리다 일찍 씻고 잠든다. 한 때는 악기를 불지 않으면 세상이 회색으로 보인다며 시무룩한 얼굴로 다녔지만, 지금은 그 정도는 아니고 가끔 울기는 한다. 엊그제는 참지 못하고 울어버렸다. 그 소리가 없는 인생이 지친다고.

 이번에는 그러지 말자고 마음먹고 푹 쉬었는데 엊그제는 조금 서러운 일이 생겨서 울다가 결국 울음의 끝에 가서는 악기 불고 싶다고 말하고 있었다. 나른한 시간을 무척 좋아했던 어린 시절이 있었는데 나는 커가면서 아침 여섯 시에 일어나 하루를 시작하는 바쁜 사람이 되었고 혼자 다니는 걸 좋아하면서 조용히 바쁜 특이한 사람이 되어갔다.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았다고 내가 했던 일이, 하루가 모두 의미 없는 것이 되지는 않는다. 그렇지는 않다. 어제는 문득 나는 내가 잠들었던 시간을 스스로가 의미 없다고 생각지 않았으면 했다. 모두가 살아가는 걸 보면서 나는 조금씩 페달을 밟아 적당히 바람을 맞으며 달리는 자전거 여행을 생각했는데 나는 여태껏 거의 자동차 경주하듯이 달리고 있었다. 건초염이 오도록 악기를 불었고 허리가 다 망가지도록 의자에 앉아 있었다. 그렇게  몇 년을 달렸는데 결국 이렇게 지치고 보니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겠다. 나는 나를 보살필 줄 알아야 했다.

 잠들었던 시간이 의미 없지 않기를. 조용히 혼자 앉아 읽은 책들이 가난한 마음에 햇살이 되어주었기를 바란다. 이렇게 혼자 쓰는 글도 나와의 이야기라고 생각해 주었으면 좋겠다. 내가 그렇게 생각했으면 좋겠다. 가수 아이유가 부른 노래 <겨울잠>이라는 노래를 좋아하는데 거기에는 이런 가사가 있다.

 때 이른 봄 몇 송이 꺾어다 너의 방문 앞에 두었어
긴 잠 실컷 자고 나오면 그때쯤엔 예쁘게 피어 있겠다.

 가사는 자고 있는 사람에게 말을 걸듯이 이어진다. 푹 자고 나면 예쁘게 피어있겠다고, 가을에 만나면 읽었던 책 이야기를 해달라고, 자고 일어나면 무슨 꿈을 꾸었는지 말해달라고 다정히 말한다. 저 노래를 좋아해서 자주 들었는데 나도 바쁘게 살았던 나에게 저렇게 말해주고 싶다. 푹 자고 나면 가득 피어있을 거야,라고 말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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