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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이 May 03. 2024

뱀파이어와의 인터뷰

24.04.24. 여전히 낡은 시간에

 내게는 잃어버려서는 안 되는 책 목록이 있다. 그중 가장 첫 번째 책이 앤 라이스가 쓴 <뱀파이어와의 인터뷰> 다. 같은 내용으로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했는데 나는 이 책 시리즈의(시리즈 물이다) 엄청난 팬이어서 영화도 챙겨보곤 했다.

 <뱀파이어와의 인터뷰>는 지금은 절판된 책이라 구하기 힘들다. 몇 년 전 보수동 책방 골목에서 한 권을 중고로 구했다. 그래서 원래 읽던 한 권은 읽는 용도로, 중고로 구한 책은 소장용으로 보관해두고 있다. 모두 오래된 책이라서 종이가 낡아서 색이 바래있다.

 소설은 주인공 루이스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지난 이야기를 하고 싶다며 자신이 뱀파이어가 되던 젊은 시절의 이야기를 그는 인터뷰하는 청년에게 시간이 흘러 온 대로 차분히 이야기한다. 이야기는 결국 뱀파이어 루이스가 지금까지 뱀파이어가 되고부터 겪은 일들과 그것에 대한 내용이다. 그는 뱀파이어가 되고부터 자신의 생활에 죄책감을 느끼며 뱀파이어라는 존재는 무엇이며 왜 그런 존재가 있게 되었는지에 관해 고뇌하고 괴로워한다. 그리고 그가 사랑한 존재들과 그에 관한 마음에 대한 내용은 뱀파이어인 루이스를 굉장히 인간적인 존재로 보이게 한다.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때는 열일곱 살이었는데, 그때는 병원에서 입원하고 난 뒤 학교를 그만두고 혼자 지내던 때였다. 책을 못 읽은 지 오래되어서 퇴원하고 서점에 가서 처음 집어든 책이 그 책이었다. 나는 주인공 루이스가 고뇌하고 자신의 존재에 대한 근원을 궁금해하는 모습이 나와 무척 닮아있다고 생각했고, 두어달 때쯤 걸려 그다음 시리즈인 <뱀파이어 레스타>부터 <뱀파이어 아르망>까지 다 읽었다. 아르망의 이야기 다음 권인 <메릭>은 아직 번역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원서로 사 두었는데 아직 읽지 못하고 있다.

 <뱀파이어와의 인터뷰>를 가장 좋아하는 책으로 꼽는 이유는 주인공 루이스가 그의 존재 이유에 대해 고뇌하고 답을 찾아가는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결국 루이스는 뱀파이어가 어떻게 있는 존재인지 답을 찾지 못한다. 가장 오래된 뱀파이어인 아르망을 만나지만 그는 우리의 존재의 이유나 근원에 대해서 '전혀 모른다'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는 사랑하는 어린 뱀파이어 클라우디아를 잃고 자신이 살던 뉴올리언스로 돌아와 조용히 지낸다.

 루이스가 답을 찾아 헤매는 동안 나는 그를 마음속으로 열렬히 응원한다. 내게는 그가 뱀파이어의 존재에 관해 고민하고 파고드는 모습이 어린 시절 인간은 무엇이며 왜 살아야 하는가, 하는 문제로 고민하던 내 모습이 겹쳐 보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결국 어두운 소설의 끝자락에서 그를 다독여주고 싶어 한다. 그런 식으로 저 책을 다섯 번은 더 읽었다.

  인용하고 싶은 부분이 있다. 루이스는 농장의 노예들에게 뱀파이어인 것을 들킨 뒤 도망치는 부분에서 이런 말을 한다.

"나는 이 세계의 종말이 오날까지 살도록 되어 있소. 그런데도 나는 내가 무엇인지 모른단 말이오!" 라며 울분을 토한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운영하던 농장을 불태우고 떠난다. 이 책을 읽고 있으면 너무 오래된 이야기라 색이 바래고 낡은 책을 쥐고 있는 느낌이 난다. 물론 내가 많이 읽은 책이어서 그런 느낌이 나겠지만, 그가 아주 오래전부터 있어왔던 존재였기 때문에 더욱 그런 느낌이 나는 것은 아닌가 싶다.

 이 세계의 종말이 오는 날까지 살아야 하는 존재에게 생이란 무엇일까. 자신이 무엇이라는 마음으로 그는 그날까지 '살아있어야' 하는 걸까.
 
 얼마 전 <왜 살아야 하는가>라는 책을 다 읽었다. 그 책에는 살아가는 방식과 세상을 대하는 방식에 대한 이야기를 써두었다. 누군가는 슬픔으로, 누군가는 사랑으로, 누군가는 이야기로. 루이스는 '왜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대답으로 어떤 말을 들려주었을까. 섬세하고 여린 감수성을 가진 고뇌하는 존재는 어떤 대답을 들려주었을까. 나는 아직 찾지 못했다. 왜 살아야 하는지에 관해서는 나는 아직 답을 찾지 못했기에 답할 수 없다. 그러나 책에서 보았던 루이스의 깊은 고민은 나를 끌어당기기에 충분했던 것 같다.

 이 책이 퇴원 후 찾은 첫 소설책이라는 사실이 기쁘다. 약에 취해 책을 제대로 읽지 못하던 때에 읽기 시작했는데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그때는 이렇게 소중히 보관할 오랜 친구 같은 책이 될 줄을 몰랐겠지만 말이다.

 누구에게나 마음 깊이 담고 있는 질문은 있다. 나의 경우에는 '왜 살아야 하는가'가 그런 질문이고, 다른 이에게는 또 다른 질문이 있겠지. 절대로 풀 수 없는 질문. 그것들은 질문 자체로 질문을 가지는가. 그런지는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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