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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이 May 31. 2024

바다에서 쓰는 편지

24.05.16. 목요일 시원한 바다에서

잠깐 바람을 쐬러 바닷가에 와 있는데 '기다림은 부서지라고 만들어진 파도다' 라는 문장이 떠올랐다. 나는 무언가 노력할 때 그 시간을 기다리는 시간이라고 생각하는데 요즘 그 시간이 너무 오래 되었다는 생각이 났다. 


 학교에 다닐 때는 실기 시험이 늘 있고 중간고사 기말고사가 늘 있다. 그래서 누구를 기다려도 정신없이 지나가는데 요즘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자니 갑갑해서 쉽게 우울해진다. 


 늘 생각하고 있는 곳이 있다. 기다리자고 갈 수 있는 곳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그곳을 계속 생각한다. 


 알 수 없는 불안감에 빠질 때면 나는 이미 할 수 있는 것은 모두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나를 계속 보아주는 사람도, 기다려주는 사람도, 같이 그려주는 사람도 있다는 생각을 한다. 


 어제는 글을 보러 다녀온 2주 동안의 기억을 떠올려 곱씹어보았다. 천천히 느긋하게 읽어 내려간 글을 너는 '대화하듯이 읽는다'고 표현했다. 그래서 나는 그 속도를 유지해서 느리게 글을 읽어나갔다. 


 악기 연주를 좋아하는 삶을 보고 있자니 인생이 많이 간절했다. 그래서 나는 그 시간을 보고 '사랑 그 자체인 이야기'이라고 말했다. 묵묵히 음악을 듣고 있는 시간이 조금은 아프고 나긋해보였다. 아픔이 있지만 반짝이는 것들을 가득 품고 있는 시간. 내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파도가 부서지는 모양을 보고 언젠가 썼던 시의 구절을 생각했다. 기다림은 파도다. 부서지라고 만든 파도다. 


 기다림이라는 마음이 닿을 수 있는 곳이 어디까지일까. 누군가 무엇을 기다린다고 해서 그것이 그에게 더 다가설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 마음만큼은 의미가 없다고 할 수는 없겠지. 기다림은 사람을 쉽게 무너뜨린다. 언젠가 계속 기다릴 수 있다고 믿었던 마음도 시간의 파도에 의해 부서지고 만다. 그래서 어떤 기다림은 아프다. 


 나는 여름이 오면 겨울을 기다리고 봄이 다와가면 겨울을 아쉬워한다. 그만큼 겨울을 많이 좋아하는데, 바다도 여름 바다보다는 겨울 바다를 좋아한다. 


 언젠가 친구와 바다에 같이 가 맛있는 저녁을 먹고 나란히 바닷가에 앉았던 적이 있다. 그 친구와는 바닷가에 가면 저녁을 먹고 바닷가 모래사장 옆에 앉아 한 시간 정도 이야기하고 오는 습관이 있었는데, 그날은 취직이 이야기의 주제였다. 같은 음악을 하는 친구라 둘 다 악단 취직이 목표였다. 나는 서울 시립에 들어가면 어떡하냐는 착각 섞인 너스레를 열심히 떨었고 그 친구는 사람 좋게 허허, 하고 웃었다. 그때부터 기다려 온 이야기가 아직 내 기다림 리스트에 머물러 있다. 


 기다리고 있는 것이 많은 편이다. 악기도 어느 정도 결과물을 내려면 아직 멀었고, 공부도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고 그리고 내가 기다리는 순간들이 아주 많다. 나는 꿈이 큰 사람은 아닌데 그리움이 많은 사람이라 그럴까. 


 키가 달린 개량 대금을 사려고 했는데 나는 손이 작아 악기를 내 손에 맞춰야 한다고 했다. 그러려면 서울에 있는 악기상에 직접 가야한다고 하셨다. 조만간 서울에 가야하는데, 개량 대금을 사면 악기 연습을 본격적으로 시작해야해서 조금 무섭다. 


 저번주부터 청성곡을 연습했다. 숨이 닿지않는 곳이 많아서 1장만 집중해서 연습했다. 그런 기다림의 순간도 익숙해진지 오래되었다. 언젠가 넓은 무대에서 청성곡을 연주하고 싶다. 


  기다리는 시간에는 부서지는 파도만 있는 게 아니라 빤히 서로를 마주보는 순간도 오지 않을까.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파도가 가득 울렁거리다 부서지며 빛나는 순간처럼. 그런 파도들은 여러번 부딪히면서도 계속 흔들리다 모래사장에 닿는다. 그런 순간은 분명히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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