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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대금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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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이 May 30. 2024

만들기

24.05.30 느린 밤

 낮에 단소를 잠깐 불고 저녁에 청성곡을 잠깐 불었다. 요즘 잠드는 시간이 많아져서 연습을 오래 하지 못하고 있다.


 단소는 소리가 가끔 안 나고 청성곡은 불다가 힘들어서 악기를 잠깐씩 내린다. 학교에 다니는 동안 불었던 실력이 그립다. 그때는 그렇게 잘 부는 줄도 몰랐는데 지금 생각하니 나는 그래도 꾸준히 불었던 사람의 음악 소리를 내었던 기억이 있다.


 오늘부터 스케줄이 있더라도 저녁에 하루 두 시간씩 연습하기로 했다. 원래는 청춘 마이크에 나가려고 신청서를 쓰려고 했는데 체력이 공연하러 다니기에는 아직 부족한 것 같다. 아침에 하는 운동도 열심히 하고 악기도 더 다듬어야겠지.


 악기 연습을 오래 하지 않아서 불던 노래를 제대로 만들지 못한다면, 당연히 다시 연습을 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는 꾸준함과 성실함이 필요하다. 뭔가를 할 때 하다가 잘 되지 않으면 꾸준함으로 밀어보는 편인데 이번에도 그런 마음이 필요한 모양이다.


 하루 두 시간 연습은 쉽지 않다. 내일부터 그 일을 하려니 마음이 벌써 힘들다. 다시 있을 공연들과 연주를 생각해서 힘을 내야지, 하다가도 밤마다 두 시간을 어떻게 악기를 붙잡고 있을까 하는 생각에 겁을 조금 먹고 있다.


 <4월은 너의 거짓말>이라는 애니메이션이 있다. 거기에는 피아노를 전공했던 주인공이 다시 피아노를 연주하게 되는 이야기를 담았는데, 콩쿠르에 나가기 위한 준비가 다 되고, 연습을 시작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친구들이 모두 떠난 방에서 피아노 앞에 선 주인공 아리마는 피아노를 보고 이렇게 말한다. '또 우리 둘만 남았네'라고.


 악기를 붙잡고 연습하는 일은 악기를 길들이고 나도 그 악기에 길들여지는 일이다. 그래서 그 연습 과정과 하려는 마음은 숭고하다. 그리고 악기를 길들이려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악기에게 말을 거는 행동을 해야 한다. 악기를 잡아끌 것이 아니라, 조용히 말을 걸어 함께 소리를 내는 일을 사람들은 음악이라고 말한다.


 내일부터 연습을 하려니 조금 두근거리고, 아직 준비되지 못해서 나가지 못한 청춘 마이크는 아쉽고, 그리고 다시 있을 공연들을 기대하려니 마음이 들뜬다. 악기는 나에게 여러 가지 마음을 안겨준다.


 낮에 단소를 잠깐 불었는데, 대금 전공 연주자들은 대금과 결이 같은 악기인 단소로 연주하거나 과외를 하는 경우가 있다. 나도 단소 과외를 하고 싶어서 요즘 단소를 자주 연습하는 중이다. 국악의 12 율명 중에 b플랫 음을 내는 임종 다음에 나오는 음인 이칙이 있다. 그건 피아노 건반으로 치자면 b, 시 소리를 낸다. 등대지기를 불다가 이칙이 나와서 당황했는데, 임종에서 마지막 손가락을 반음을 냈더니 소리가 났다. 그래도 익숙지 않아서 연습 중이다. 손가락을 적당히 위쪽 대각선 바깥으로 밀어내면 소리가 잘 난다. 이칙은 전통음악에서는 잘 나오지 않는 소리이기도 하고, 관현악 연습 때도 가끔씩 나오면 다들 음정 맞춘다고 고생이었던 음이다. 절대 음감이 아닌 나는 음정을 만들 때 혼자 오랫동안 고생하곤 했다.


 열심히 불 것. 그리고 꾸준해주었으면 좋겠다. 오늘부터 연습을 제대로 못한 게 아쉽기는 하지만 그래도 성실하게 연습하다 보면 어느 곳에라도 닿을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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