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기에 걸렸다. 기침을 오래 앓고 있어 집에서 아무것도 못하고 있다 문득 방을 다시 정리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책 정리와 가구배치를 다시 했다. 이전에 살던 집은 책을 꽂을 공간이 많았는데 지금 살고 있는 곳은 방이 좁아 책을 마음껏 쌓을 수 없다. 그나마 있는 3단 책꽂이를 위로 쌓아 벽 한 켠을 책으로 가득 채웠다. 옆 방에 있는 책들은 일단 차치하고서라도 내 책들을 정리하고 싶었다.
자취방이 있는 대구에 이사를 갈 때 낡은 책꽂이 두 개를 들고 갔다. 쓰던 책꽂이를 계속 쓰는 게 좋을 것 같아 가지고 갔는데 덕분에 자취방 한 편에 작은 도서관이 만들어져 있었다.
어딜 가든 책을 쌓아놓고 보는 편인데 요 며칠 몸이 좋지 않아 책을 읽지 못했다. 그런데 정리를 다하고 보니 한쪽 벽에 천장까지 쌓인 책이 기분 좋게 느껴졌다. 그래서 내일은 하루 종일 책만 보기로 했다. 소설책을 들고 푹신한 침대 위에서 온종일 뒹굴며 하루를 보내기로 했다. 마음이 벌써 들뜬다.
천장까지 쌓인 책은 묘한 유대감을 준다. 내가 읽었던 책 혹은 내 손이 닿았던 책들에게 가질 수 있는 일종의 친근감이랄까. 가득 쌓인 책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편해진다.
하루는 선생님과 이야기를 하다가, 집에 있는 가구가 모두 낡았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선생님은 그런 '낡았다'는게 나에게 어떤 느낌이냐고 물으셨고 나는 집에 온 것 같은 편안함을 준다고 말했다. 그래서 낡은 소파나 책장을 버리기 싫어한다고 이야기했던 기억이 있다.
낡은 책상, 낡은 침대, 낡은 인형 그리고 낡은 책장이 있는 방. 편안하고 아늑하다. 머리 위까지 쌓인 책은 조용히 나를 부른다. 내 손이 닿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다음 방은 어떤 모습일까. 이다음에 지내게 될 방이 지금보다 크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방 한 칸에 내가 좋아하는 책을 잔뜩 쌓아 서재로 쓸 수도 있겠지. 어쨌든 나는 지금 이곳에 있으니까 조용히 쌓아진 책들과 함께 작은 방에서 잘 지내보자.
여름이 가고 가을이 올 줄 알았는데 추석이 다 되도록 더위가 가시지 않는다. 여름감기에 걸려 고생을 하고 보니 내가 겨울을 아주 좋아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푹신한 소파에서 담요를 무릎에 얹고 두껍고 재미있는 소설책을 보던 겨울을 늘 그리워했다. 여름이 가면 겨울이 오겠지. 이 시간도 가면 내 낡은 책장도 어딘가 다른 곳에서 나와 함께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