퐁토슈 가에서의 내 자리는 시간이 지날수록 커다란 동심원을 그려갔다. 처음에는 가게 안, 낯선 언어와 계산대 뒤에 웅크려 있던 나의 공간은 조금씩 골목을 향해 번져나갔다. 어느 날은 아랍 마트의 불빛이 그 원 안에 들어왔고, 또 어느 날은 샌드위치 가게의 이태리 아줌마가, 그리고 늘 기분이 오락가락하던 인쇄소집 남자가 그 안으로 들어왔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가 넓은 듯 좁은 듯, 나는 그 거리를 서툰 이방인의 걸음으로 조금씩 재어 나갔다.
아랍 마트는 작았다. 손님 둘만 들어가도 숨이 막힐 만큼 좁았고, 천장까지 쌓아올린 진열대는 늘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 위태로웠다. 하지만 그 안은 언제나 밝았다. 저녁 무렵 퐁토슈 가가 어둑해질 때도, 그 마트만은 불빛이 환히 켜져 있었다. 나는 그 빛을 볼 때마다 괜히 안도했다. 세상이 무너져도 저 불빛 하나는 꺼지지 않을 것 같은 기분. 주인은 말수가 적었지만 매번 나를 보면 환하게 웃었다. 인사 몇 마디가 전부였지만, 낯선 나라에서 그 인사는 하루를 버티게 해주는 의식 같았다.
샌드위치 가게의 이태리 아줌마는 그와 정반대였다. 처음 봤을 때 손님들의 말을 제대로 못 알아듣는 데다, 그녀의 표정은 늘 사납고 날카로웠다. 마치 갱년기의 폭풍을 고스란히 몸에 지닌 듯 그녀의 말투는 모든 인내심을 다 소진한 사람의 것 같았다. 그럼에도 나는 점심을 사러 자주 그 가게를 들렀다. 어느 날 문득, 나는 그녀에게 물었다.
“혹시 이태리 분이세요?”
순간 아줌마의 얼굴이 환해졌다. 두 손을 크게 휘두르며 이태리인 특유의 제스처를 지어 보였다. 자신을 이태리인으로 알아본 건 내가 처음이라며 반가워했다. 그 후로 그녀는 내게 종종 공짜 케이크나 쿠키를 챙겨주었다.
나는 문득 생각했다. 언젠가 나도 나이가 들면 저런 모습일까. 말은 어눌하고, 인내심은 바닥나 있고, 세상만사가 귀찮아진 나에게 누군가 묻는다.
“혹시 한국인이세요?”
중국인도, 일본인도 아닌 정확히 한국인이라고. 그럼 나는 활짝 웃으며 대답할까. 공짜 옷은 줄 수 없어도 조금의 할인 혜택쯤은 베풀 수 있지 않을까. 나 역시 누군가의 하루를 밝히는 작은 기쁨의 주인이 될 수 있을까.
프랑스인과 결혼해 이곳에 살고 있지만, 나는 여전히 이방인이었다. 그렇기에 이민자들이 언제 좌절하고 언제 위안을 얻는지 나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이태리 아줌마가 내게 건넨 공짜 케이크는 단순한 과자가 아니었다. 그것은 내 안에 남아 있는 한국을 불러왔다. 그 맛은 곧장 추억을 열었고, 잠깐이나마 마음의 허기를 메워주었다. 그 대가로 나는 인생 최고의 몸무게를 찍게 되었지만, 그 시절의 나에게는 살이 찌는 것보다 마음이 버텨내는 것이 더 중요했다.
인쇄소집 남자는 그들과 또 달랐다. 두 마리의 잭 러셀 테리어를 키우는 그는, 어느 날은 반갑게 인사했지만, 또 어떤 날은 내 얼굴을 보고도 모른 척 지나쳤다. 나는 늘 고민에 빠졌다. 인사를 해야 할지 하지 말아야 할지 멀리서 그를 발견할 때마다 나는 머릿속으로 복잡한 계산을 해야 했다. 괜스레 조바심이 났다.
그러다 마침내 나는 규칙 하나를 발견했다. 그 남자는 손에 맥주병을 들고 있을 때만 친절했다. 맥주가 그의 사회성을 깨우는 열쇠였다.
가게에 데이지와 함께 있던 어느 날, 데이지가 쇼윈도에 붙어 꼬리를 흔들고 있었다. 바깥을 보니 인쇄소집 남자가 맥주병을 든 채, 데이지를 향해 까꿍 하듯 손짓을 하고 있었다. 나는 가게 문을 열고 그를 바라보았다. 그는 마치 오랜 친구라도 만난 듯 활짝 웃으며 인사를 했다. 황당했지만 동시에 이상하게 납득이 갔다. 이것은 프랑스라는 나라의 방식이었다.
그들은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인사를 하기 싫으면 하지 않고, 오늘 기분이 나쁘면 그대로 얼굴에 드러냈다. 나는 처음엔 그것을 히스테리, 혹은 유치한 어린아이의 투정으로 여겼다. 그러나 곧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의 방식은 삶을 더 솔직하게 만들었다. 나는 그렇게 배워갔다. 필터 없는 날것의 성질머리. 나 역시 조금씩 그 습관을 몸에 익혔다.
그때부터 다니엘 아저씨에게 배운 온갖 욕들이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오래 묵은 내 안의 화병은 욕설을 통해 조금씩 녹아내렸다. 외국에서의 삶은 종종 나를 벽에 몰아세웠다. 그러나 욕 한마디로 숨이 트였다. 욕은 나를 해방시켰고, 나는 차츰 이 나라의 공기 속에 섞여들었다.
나는 이제 알았다. 이곳에서 나를 버티게 하는 건 결국 사람이라는 것을. 그러나 그것은 사람에게 기대어 매달린다는 의미가 아니다. 오히려 반대로, 그들과의 관계 속에서 나는 나의 경직을 조금씩 풀었다.
아랍 마트 아저씨의 짧은 인사, 이태리 아줌마의 공짜 케이크, 인쇄소집 남자의 맥주 웃음. 그 모든 작은 파편들이 모여 퐁토슈 가에서의 내 세계를 지탱했다. 자잘한 장면들은 내 삶의 기록이 되었고, 그 기록 속에서 나는 조금 더 이방인답지 않게 숨을 쉬었다.
퐁토슈 가에서의 삶은 결국 거대한 사건이 아니라, 매일 부딪히는 사소한 얼굴들로 완성되었다. 나를 곤란하게 만들고 또 어이없이 웃게 만드는 이웃들. 그들의 변덕과 습관 속에서 나는 오늘도 내 몫의 생을 조율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