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임시

첫눈이 오면 낮아지자

명상을 시작한다

by 냉이꽃



언제 고개숙인 적이 있었던가


앞이 안 보일 정도로 쏟아지는 눈 속에서

낮게 엎드려 기도하는 사진 한 장을 본다.


얼마나 긴 세월이 지나야 인간은 이렇게 작아질 수 있고

얼마나 거듭 실수를 인정해야 인간은 이렇게 낮아질 수 있나.

얼마나 많은 헛된 꿈에서 깨어나야 수만 가지 번뇌에 한눈팔지 않고

천지가 눈으로 뒤덮이는 날, 이처럼 머리 조아릴 수 있을까.


사진처럼 한나절 내내 눈이 쏟아졌고 다음날은 더 많은 눈이 왔다.



한상천 상왕산 보원사터.PNG 사진작가 한상천 / 상원사 보원사터 / 2015년작



이순과는 거리가 먼 예순의 나이


나는 이제 달력 한 장 넘기면 예순이다. 60이라는 나이가 뿌듯하지는 않다. 불혹의 나이에도 끊임없이 흔들렸듯이 이순의 나이가 되어도 나의 귀는 어지럽고 거칠기만 했다. 나의 삶은 대체 어디에 어떻게 떠다니는 것일까.


일제시대와 6.25를 겪은 부모가 만나 결혼을 하였다. 양친은 질곡의 현대사를 살아내며 겨우겨우 자식들을 건사했다. 70년대에 대학을 다녔던 나의 청춘은 역사와 개인의 삶이 마구 얽혀 있었다. 너무나 비극적인 일들이 많이 일어났다. 우리집은 밥상머리에서 이념의 갈등으로 싸우기 일쑤였고 등을 돌리기도 했다. 누구를원망할 일은 아니었다. 우리가 살아내야할 우리 몫의 삶이었다. 많은 젊은이들이 역사의 짐을 짊어지기 시작했다. 물론 개인의 선택의 문제였다. 그러나 그 짐을 외면한다 해서 가볍게 살아지는 것도 아니었다.


목표와 할 일이 분명해 보이던 시기가 지나가자 사람들은 각자 다른 길을 걷기 시작했다. 비관적인 시선을 가진 나는 우리 세대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새로운 시대를 준비하는 새로운 세대가 희망이라 믿었다. 그래서 교사를 선택했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자면 교사로서의 인생도 실패했다.


나는 아무것도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고 제대로 아는 것도 없었다. 막연하기 짝이 없는 희망과 혈기로 노력만 하면 세상이 어찌 될 것이라 믿었다. 만용이었다. 교사가 되어 정말 열심히 노력했지만 갈수록 아이들에게 할 말이 없어지기 시작했고 그동안 내뱉은 말들이 너무나 미안하고 부끄러워졌다. 의욕이 사라진 나는 명예퇴직을 하였다.


나는 세상이 싫어서 스스로 고립을 선택하기도 했다. 폐쇄적인 자기 속에서 답을 찾고 자족하는 삶이었다. 이 오류를 깨닫는 데는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나는 착각의 착각 속에서 자문자답을 했다. 내가 누군지 아냐 땡깡부리며 술주정하는 사람처럼 혼자 잘나 있었고 혼자 높아 있었다.


철없었던 60년의 세월이었다.


나는 정말 무엇일까


실수하고 후회할 짓만 하다가 이젠 정말 나를 돌아봐야겠다 싶었다. 이 고해를 벗어나고 싶어서 절마당도 기웃거렸다. 또 다른 곳도 찾아 다녔다. 마음수련 명상도 했다. 그러나 어디를 가도 제대로 하지는 못했다.


나이가 들고서야, 수많은 헛걸음을 하고서야 마음수련 명상을 제대로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더는 미룰 수 없는 나이였다. 이러다 허망하게 세상에서 사라질 수도 있었다. 시험이 닥치면 정신차리듯이 나이가 드니 더 늦기 전에 정신을 차려야 했다. 돌아볼 것을 돌아보고 쓰레기통같은 마음 속도 치워야 했다.


다시 눈 오는 날, 나는 어디 탑이 보이지 않더라도 머리 조아리며 빌 것이다. 부디 헛된 꿈에서 깨어나 낮은 몸이 되어 살게 해주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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