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임시

사막에 대한 명상

아리조나 사막이 마음수련 명상에 던진 질문

by 냉이꽃


아리조나 사막


미국도 궁금하고 사막도 궁금했던 경상도 촌사람들이 여행을 계획했다.

아리조나의 피닉스였다.


아리조나는 인디언이 살던 땅이고, 이후 역마차가 달리던 카우보이의 땅이자 사막이다.

그 사막 한가운데 세워진 도시가 피닉스라 했다.

나는 모래바람 날리는 사막과 붉은 인디언의 신비로운 땅을 상상하며 비행기를 탔다.


할리우드를 지나서 한참을 달렸던, 이제는 기억도 가물가물한 여행길.

피닉스로 가는 길은 가도 가도 끝없는 사막이었다.


Reuzencactus in de woestijn bij Tucson, anonymous, 1880 - 1920.jpg Reuzencactus in de woestijn bij Tucson, anonymous, 1880 - 1920


사막이 와 이렇노?


거칠고 메마른 산은 끝이 없는데 그 어디에도 능선이 아름다운 모래산은 없었다.

생텍쥐페리가 추락했던, 어린 왕자를 만났던 그 사막을 기대했던 것이다.


그저 황량한 산.... 이게 사막인가?

고운 모래 대신 거친 돌이 많고 모래 능선이 아니라 메마른 나무가 듬성듬성 있는 여기가 어찌 사막인가?

놀라운 건 엄청난 크기의 선인장이었다. 가시 하나로 사람도 뚫어버리겠다 싶을 만큼 크고 단단하고 강해 보였다. 멕시코도 아닌데 웬 선인장?


나는 구시렁거렸다.

사막이 와 이렇노



미국은 와 이렇노?


우리는 돌아오는 길에 L.A를 경유했다. 그리고 한인타운의 한글 간판을 보면서 또 놀랐다. 60-70년대의 한국에나 있을 법한 촌스러운 간판이 즐비했다. 어릴 적 향수를 불러일으키며 정겹기도 했다만 이는 이민 1세대의 기억 속의 한국이고 추억의 그림자였다. 그러나 이민 1세대가 기억하는 한국은 이미 다 사라지고 변한 지 오래다. 아이러니하게도 선진 미국의 한 모퉁이에서 한국의 옛 그림자를 보게 된 것이다.


나는 또 구시렁거렸다.

미국이 와 이렇노



신기한 미국 공항


미국 공항에 앉아 시간을 죽이고 있던 우리는 영화에서나 보던 장면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남녀가 예사로 포옹하고 어쩌고 하는 모습은 궁금해서 안 볼래야 안 볼 수가 없었다. 그걸 흘끔거리며 보는 사람은 한국 사람밖에 없다고 주의를 받았지만 우리 중에서 안보는 척하면서 안 본 사람은 없었다.


나는 끊임없이 나와 다른 세상을 간섭하고 평가하고 판단하고 구분하고 있었다.



마음수련 명상은 자기 관념에서 벗어나는 방법이다


밤하늘이 아름다운 피닉스의 마지막 밤, 우리는 미국 고기를 굽고 거나한 저녁을 먹었다. 그리고 별밖에 보이지 않는 밤하늘 아래에서 인간의 편견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분명한 것은 내가 아는 사막과 달랐다는 이유 하나 만으로 엄연히 존재하는 아리조나 사막을 불평하며 툴툴거렸다는 점이다. 기껏해야 흔히 접했던 사진 속의 사막 정도가 내 관념의 기준이 아닌가. 나는 나의 부실한 관념을 의심하지 않았다. 내 생각이 맞다는 전제 하에 실존하는 사막을 의심하고 불평했다. 사막이 왜 이러냐는 불평은 왜 세상이 내가 아는 것과 다르냐는 오만불손함의 표현이었다.


나는 평생을

이와 같이 살지 않았을까.


내가 이렇게 무례하고 경박한 존재인지 미처 몰랐다. 아리조나 사막을 가리키며 불평하던 나는 어디에 살고 있는 것이었을까. 한 줌도 안 되는 지식과 관념 속에 갇혀 사는 나에게 대체 생각의 자유는 있는 것일까. 내 생각에는요... 했던 그 생각이 대체 뭐란 말인가? 있는 그대로의 세상을 단 한순간이라도 관념으로부터 자유롭게 본 적이 있었을까? 말없는 사막을 이처럼 함부로 대했으니 사람에게는 어떻게 했을까?


피닉스의 그날로부터 십수 년이 흘렀지만 나는 마음수련 명상으로 나를 돌아보았다. 보잘 것없이 함부로 판단하고 함부로 말하는 내 모습이 보였다. 숱한 사람이 나의 말과 눈빛에 상처받는 모습도 보였다. 나 역시 다른 사람으로부터 그렇게 상처받았던 기억도 떠올랐다. 숱한 사람을 멋대로 보고 판단하며 나의 생각이 더 옳다 여기고 사는 습관은 뿌리가 꽤 깊었다.


그래서 마음수련 명상을 중단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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