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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냉이꽃 Aug 09. 2019

올 여름, 명상으로 성장하기

법륜의 <참선>과 박서보의 <아무 것도 안그리기>


새벽에 일어나 책상에 앉았다. 한 번 밖에 없는 짧은 인생이니 성의껏 살아보려는 것이다. 나의 행복과 너의 행복은 긴밀하게 엮여있다. 혼자 잘 있다가도 너를 만나 밑바닥까지 뒤집어지지 않았던가? 거대한 그물망 속의 한 매듭이 너와 나의 인생이다. 성공적인 나의, 혹은 너의 삶은 우리의 행복을 단단하게 견인해 줄 것이다. 반대로 나의 불행으로 너의 삶을 조져놓을 수도 있다. 물론 각자의 인생은 각자의 책임이다.


맛있는 요리, 미술관 나들이, 산행, 사랑하는 당신은 나를 웃게 만든다. 그러나 그러한 행복의 조건을 나열한다고 행복이 마냥 커지지는 않는다. 순간의 행복은 언제나 사라졌다. 사랑이 눈물의 씨앗이듯이 쾌락은 고통이 되기도 했다. 반대로 고통은 행복을 깨닫게 되는 동력이기도 했다. 그 결과, 행복은 조건보다는 삶을 바라보는 방식에 있음을 알게 되었다. 내 마음에서 지옥과 천국이 왔다 갔다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음의 문제에 주목하게 되었다. 그 마음을 살피는 일이 굳이 이름 붙이자면 명상이다.


명상은 관념이 아니라 실천이다. 마음의 이치를 머리로 이해하는 것은 그림의 떡과 같다. 시원한 물은 들이켜야 하고, 달콤새콤한 사과는 베어 물어야 한다. 경험을 하면 의문은 없어진다.



법륜에게 참선이란?


법륜의 즉문즉설은 현장에서 이루어진다. 덕분에 평범한 사람들의 생각을 가감 없이 볼 수 있다. 지혜로운 말이 세상에 차고 넘치는데도 왜 사람은 달라지지 않을까? 어쩌면 긴긴 문답 속에 그 해답이 있는지도 모른다. 스님은 사람의 모순된 점을 잘 보여주신다.


"참선이 뭔가요? 명상이랑 같은 건가요? 마음을 찾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 마음을 찾고 싶어요."라는 질문이었다. 2016년 어느 날이다.


법륜 : 그런데 참선 뭐할라고 해요? 

질문자 : 일반 사람들이 겪는 짜증나고 이런 거 있잖아요... 안에서 막 나오는... 컨트롤하고 싶은데...


짜증 때문에 힘들지 않은 사람은 없다. 명상, 참선, 마음이라는 말로 우회하는 솔직하지 못한 질문 역시 낯설지 않았다. 나 역시 진솔하게 묻고 담백하게 답한 적이 없었다. 스님은 자신을 포장하는 대중에게 직설적으로 되물었다. '빙 둘러서 말하지 마라. 참선이고 뭐고, 짜증 나서 괴롭다 이 말 아니냐?'


법륜은 누구나 다 짜증을 내지만 정말 짜증을 낼 만한 이유가 있어서 내는건지 묻는다.  짜증을 내는 것은 습관이며 사람은 기본적으로 자기가 옳다는 생각을 갖고 있어서 생기는 것이라 설명했다.누구나 다.  


법륜 : '아! 사람이 다르구나' 이것만 객관적인 거요. 여기에 옳고 그르고 라는 건 없어요. 서로 다른 걸 두고  나를 기준으로 보면 내건 옳고 니는 틀리고가 되는 거예요. 그래서 짜증이 일어나는 거예요. 이치는 이해가 됐어요? 

질문자 : 네!

법륜 : 이치가 이해가 됐다는 건 머리가 이해가 됐다는 거예요. 그런데 이거는 테어나서 지금까지 수천수만 번 반복된 거기 때문에 습관화되어 있어요. 짜증이 확 일어날 때는 자기중심, 내 생각이 옳다는 것에 사로잡혀버리는 거예요. 그런데 그걸 내가 못 알아차려. 성질을 확 내놓고 나중에야 겨우 알아차린다 이 얘기요. 


그러면 참선이라는 건 뭐냐. 나라고 하는 이것이 무엇인가 이거를 참구, 연구를 해야 돼요. 절에서 하건 집에서 하건, 앉아서 하건 서서 하건 그게 무슨 상관이 있겠어요. 그것을 계속 탐구하느냐 안 하느냐의 문제지. 하면 답을 얻을 것이고, 앉아서도 안 하고 머리 깎아도 안 하면, 딴짓 딴생각하면 못 얻을 것이고 그래요.


생각으로는 안된다. 생각을 떠나야 하기 때문이다. 


베트남 국립역사박물관 소장품전 / 국립중앙박물관


박서보에게 그림이란?  


그는 50년대 참혹한 전쟁을 겪으며 바로 옆에서 죽는 사람을 보기도 했다. 그는 그걸 그려보기로 한다. 1962년 <회화 No.1>은 한국 최초의 앵포르멜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파리 비엔날레에 출품된다. 이후에도 평생을 도전하고 탐색을 멈추지 않았다. 모든 변화는 나로부터 시작하는 것이기 때문에 스스로 변화하지 않으면 추락한다 했고, 곁눈질로 베껴 변하려다가 추락한다고 했다.


그의 그림은 서양의 <미니멀리즘>과 달리 <단색화>라는 독자적인 영역으로 존중받고 있다. 서양의 미니멀리즘이 우유라면 박서보의 단색화는 곰탕이라고도 한다. 혹은 진정한 미니멀리즘은 박서보가 완성했다고도 평가한다.


60-67년에, "너는 도대체 누구냐" 나한테 계속 반문해보니 쥐뿔 아무것도 아닌 거야. 노자, 장자 할 것 없이 불경까지도 죽어라고 공부를 했다고. 안 본 책이 없을 정도로. 거기에서 깨달은 것이 "나를 비운다는 것, 그림은 수신의 도구라는 것" 그런데 어떻게 그려야 되는지 방법을 몰랐다는 거지. 

 2019.7.3 국립현대미술관 제작 영상


그는 글씨 공부하며 쓰고 지우는 어린 아들을 보며 무릎을 쳤다. 무위였을까? 그걸 흉내내기 시작한 것이 단색화다. 지우고 선을 긋고 또 지우는 반복의 과정은 치밀하고 정교하며 섬세했다. 


그림은 수신의 도구다. 수신을 하기 위해서 수행을 하잖아. 수행하는 도구다. 그 수행 과정의 행위의 찌꺼기다. 그게 그림이다. 별거 아니다. 수신을 하기 위해서는 나를 전부 비워내야 한다. 
나를 비운다는 일이 일평생 과제였는데 내가 어느 정도 비워졌는지는 몰라. 나는 열심히 비웠다고 생각할 뿐이지. 절대로 두려워하지 말고 지신이 진심으로 하고 싶으면 용기를 내서 시도하고 시도할 때는 발표하지 마라. 그걸 몇 년이고 시도하다 보면 자기의 길을 찾게 돼. 그리고 내가 부탁하는 것은 많이 읽으라는 거. 많이 읽되 절대로 기억하지 말고 읽은 걸 다 버려라는 거야. 그렇지 않으면 그것이 자기 발목을 잡고 있다고. 남의 명구절들이 자기를 포로처럼 잡고 있다는 거야. 그러면 안돼. / 2019.7.3 국립현대미술관 제작 영상


그의 말처럼 전시실은 비움으로 가득하다. 그 정제되고 편안한 공기는 빛과 공간과 사람을 넉넉하게 흡수하고 있었다. 그에게 미술이란, 말하고 채우는 것이 아니라 비우는 것이다. 미술이 하는 모든 행위를 단념한 그는 말했다.

나는 아무것도 그리지 않는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 박서보 작품 전시장


박서보 말처럼 변하지 않으면 추락한다. 그래서 자기의 관념을 비워야 하고, 자기의 틀에서 벗어나야 한다. 말처럼 쉽지 않아서 해볼 만하다. 그래서 법륜도 진리에 인생을 걸었고, 박서보도 죽을 만큼 힘들게 긋고 지웠다.


명상이건 참선이건 그림이건 달라져야 하는 것은 자기 자신이다. 뭘 해도 좋으니 이 여름, 떠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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