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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냉이꽃 Sep 11. 2019

조상님도 저를 응원하지 않을까요

추석 명상 여행


우리 집 명절


우리 집은 잘 사는 집도 아니고 유서 깊은 가문의 후손도 아니었다.

그러나 명절, 혹은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꼭 있었던 기제사를 위해 

엄마는 몇 날 며칠을 자갈치 시장을 다니며 생선을 사 모으고 산적거리를 장만했다.


차례상이나 제사상에는 놓을 자리가 없을 만큼 음식들이 채워졌다. 

그것이 조상을 잘 모시는 것이라 여겼고, 그래야 후손에게도 좋은 것이라 생각했다.


명절이나 제삿날이 되면 어릴 때는 콩나물 발 다듬는 일이 주어졌다. 

그러나 엄마가 늙고 내가 젊어지자 나도 허리가 부러지도록 일을 해야 했다. 

정말이지 전과 튀김이 마무리될 쯤이면 억! 소리가 날 정도로 힘들었다.


남자들은 지방을 쓰고 밤을 깎는 일이 전부였다. 담소를 나누거나 TV를 보는 남자들을 위해 여자들은 술상과 밥상과 찻상을 차려야 했다. 우리를 더욱 힘들게 만드는 일이었지만 기꺼이 즐겁게 했던 것 같다. 당연한 일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퇴계 이황 집안의 제삿날


퇴계 이황은 첫째 부인과 일찍 사별했다. 둘째 부인은 집안의 참극 때문에 정신이 혼미해진 분이다.  갑자사화로 할아버지는 교살되었으며 할머니는 관비가 되었고, 아버지 역시 몇 번이고 유배되었던 것이다. 퇴계는 장인의 간청을 받아들여 부인으로 맞았다.


제삿날이었다. 둘째 부인이 제사상 위에서 떨어진 배를 치마폭에 감추었다 한다. 퇴계는 나무라는 형수에게 조상님도 손자며느리 잘못이니 귀엽게 보시고 화를 내진 않으실 거라 두둔했다 한다. 나중에 물으니 부인 말인즉 먹고 싶어서 숨겼다 했다. 퇴계는 나무라지 않고 직접 배를 깎아 주었다.


퇴계는 두 부인과 모두 사별했다. 그리고 부인의 제삿날은 술과 기름진 음식을 가까이하지 않았다 한다.

그것이 고인을 공경하는 길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퇴계의 유흔은  비싼 기름과 꿀이 들어가는 유밀과를 쓰지 말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퇴계 이황의 후손이 차리는 차례상과 제사상은 지금도 그지없이 단출하다. 심지어 상 가장자리에 놓였던 대구포가 부인들 치맛자락에 자꾸 걸리자 가운데 놓게 할 만큼 그 중심에는 인간이 있었다.


우리 집안은 누구도 퇴계처럼 사람을 우선 살피지 않았다. 딱히 지킬만한 가문의 전통이 있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굳이 엄격하게 제사의 형식과 법도를 따지던 이유는 무엇일까. 나의 생각에는 무너진 체통과 자존심도 세우고, 없는 가문과 권위를 세워보려 했던 것 같다. 


우리 엄마는 제삿밥을 할 때 조상이 먹고 간 자국이 나야 한다며 정성을 다했다. 밥솥을 열어 약간 패인 자국이 있으면 기뻐했고, 밥이 솟아 있으면 정성이 부족했나 보다 죄송해했다. 우리 또한 대추나 밤을 옮기다가 굴러 떨어지기라도 하면 소스라치게 놀랐다. 잘못된 마음을 품어서 그런가 보다 스스로 자기 검열하기가 바빴다. 아니, 조상이 괘씸해할까 봐 겁이 났다. 그리고는 절을 하며 열심히 각자의 소원을 빌었다. 엄마는 대놓고 말했다. "올해는 저 가스나 시집 좀 보내 주이소."



퇴계선생에게 올린 차례상(donga.com/news/20190910)  , 윤증고택의 차례상(m.ohmynews.com)



명재 윤증의 가르침


집에서 5분 거리에 명재 윤증 고택이 있다. 가끔 된장 사러 가는 곳이다. 장독대 가까이 가면 오래 묵은 장 냄새가 구수하다. 파평 윤 씨는 조선시대 왕비 39명 중 4명을 배출한 가문이다. 윤증은 소론의 영수로 송시열과 대립하였으나 벼슬을 마다하고 이곳 노성으로 낙향한다. 윤증은 86세까지 단 한 번도 벼슬에 오르지 않았고 권력과 거리를 두며 후학을 양성했다. 그래서 그를 두고 백의정승이라 불렀다 한다.


윤증은 나중에 후손들이 제사상을 차리기가 어려울까 봐 염려했다. 윤증의 유언으로 제사상은 가로 99cm, 세로 68cm로  제한했다. 더 이상 음식을 놓지 못하게 한 것이다. 또한 제상에 떡을 올려 낭비하지 말고, 일거리가 많은 유밀과도 하지 말 것이며, 비싼 기름이 들어가는 전도 올리지 말 것이며 제사는 엄정하고 간소하게 하라 가르쳤다. 설 차례상은 더욱 간소하여 과일, 김치, 식혜, 북어포, 떡국이 전부라 한다. 과일은 대추, 밤, 감 세 가지며 밤이 없으면 감자를 깎아 올렸다. 밤은 마을에 지천이고 감과 대추는 마당에 주렁주렁 달려 있었으니 거두어 오면 될 일이었다. 단지 정성과 마음을 다하라 하였고 침이 튀지 않게 창호지로 입을 가리라 했다 한다.



윤증고택의 오래된 대추나무



제사로 식구를 힘들게 하지 말라는 뜻을 지키는 윤증 고택의 제사상 비용은 3만 원을 넘지 않는다 한다. 또 조상이 커피를 좋아하셨다면 커피를 올릴 수도 있을 것이라 했다. 


과일과 제철 음식 하나면 족했으며, 무엇보다 사람을 중시했던 아름답고 격조 높은 전통은 다 어디로 갔을까. 상다리 부러지고 여인들 허리가 부러지는 전통은 대체 어디서 온 것일까.


윤증의 후손은 고택을 지키고 있었고, 된장을 사러 가면 몸을 낮추고 친절을 베푼다. 직접 왔다고 천 원을 깎아 주기도 하신다. 제사상을 물으니 그런 것도 아냐하며 반색을 하시고 지금도 윤증 집안의 전통은 잘 지키고 있다 하셨다.


거미가 만든 그물이
위 아래로 걸려있네
잠자리를 위해 말하네
처마 밑으로 오지 마라


이는 윤증이 8세에 지었다는 시다. 나는 이런 마음을 잊은 지 오래다.


윤증 고택의 대추나무, 올해 추석상에 는 저 대추가 오를 것이다.



소크라테스에게 한 청년이 찾아갔다. 

"나처럼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사람도 행복할 수 있습니까?"

소크라테스는 청년의 머리를 물속에 처박았다 꺼낸 다음 물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게 무엇이던가?"


나도 질문을 해본다. 지금 이 순간 숨 막혀 죽을 지경이라면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 소중한 것을 얼마나 많이 가지고 있는지. 나는 세상에 한 일도 없이 얼마나 많은 것을 누리고 있는지.

누리고 있는 많은 것을 얼마나 당연하게 알고 있고, 막 대하고 막 누리고 있는지.

대체 무엇이 불만인지. 뭐가 부족한지....


또 질문을 한다. 조상이 지금 나에게 말을 걸 수 있다면 진정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일지.

허리가 부러져도 좋으니 상을 가득 채워 나의 허기를 채워달라 하실지,

늦게 나타나는 시누이와는 마땅히  싸우고 미워하고, 울화병이 생길 만큼 며느리 괴롭히고, 아들과의 불화를 조장하라 하실지...


애플의 창업자 스티브 잡스는 생전에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 나에게 소크라테스와 한 끼 식사할 기회를 준다면 애플이 가진 모든 기술을 그 식사와 바꾸겠다." 그렇게 중요한 것이 나에게는 무엇일까.


삶은 내 몫이다. 타인의 삶은 나의 것이 될 수도 없거니와 된다 해도 문제다. 

나는 이 긴 연휴에 내면과의 조우를 기획한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명상을 할 것이다.

당신의 후손이 똑바로 서서 걸아가기를 나의 조상은 응원하지 않을까? 전을 부치는 대신 기획한 명상 여행을 기뻐하지 않으실까?


윤증고택의 백일홍 나무



항상 똑같은 사람들하고만 있으면 그들은 우리 삶의 한 부분을 차지해 버린다.
그렇게 되고 나면 그들은 우리 삶을 변화시키려 든다.

그리고 우리가 그들이 바라는 대로 바뀌지 않으면 불만스러워한다.
사람들에겐 인생에 대한 나름의 분명한 기준들이 있기 때문이다.

<연금술사> 파울로 코엘로, 문학동네,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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