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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냉이꽃 May 12. 2019

사람들은 삶이 뭔지 잊어버렸어요

영화 <사랑의 기적, Awakenings> 이야기


신경학 박사인 세이어(로빈 윌리암스)는 기면성 뇌염 환자가 있는 요양병원으로 부임합니다. 그리고  레너드(로버트 드니로)를 만나게 되죠. 레너드는 어릴 때부터 30년 넘도록 말도 못 하고 움직이지도 못하고 허공만 바라보고 있습니다.


세이어 박사는 파킨슨병 환자에게 엘도파(L-DOPA)라는 약이 효과가 있다는 학회 발표를 듣게 됩니다. 레너드에게 이 약을 썼습니다.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일어나 걷게 되고, 말을 하고, 춤도 췄습니다. 박사는 엄청난 액수의 약값을 모금하여 다른 환자에게도 투약을 합니다. 환자들은 침대에서 일어나고, 화장실을 혼자 가고, 피아노를 치고 노래했습니다. 경이로운 삶을 되찾은 것입니다.




어느 깊은 밤, 레너드는 세이어 박사를 찾아와 열띤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우리 모두에게 말해야 해요. 얼마나 좋은지 말해줘야 해요. 신문을 보세요 뭐라고 써 있죠? 모두 나쁜 일뿐이에요. 온통 나쁜 일이에요. 사람들은 삶이 뭔지 잊어버렸어요. 살아있다는 게 어떤 건지 잊어버렸다고요. 그들이 얼마나 소중한 걸 가지고 있는지 알게 해줘야 해요.

제가 느끼는 건 삶의 기쁨이에요. 삶이라는 선물... 삶의 자유, 삶의 경이로움




그가 간절하게 원하는 것은 너무나 단순했습니다.


의사: 뭘 원하죠?
레너드: 단순한 겁니다. 산책하는 거 말이에요. 내가 원할 때, 다른 정상인들처럼....

의사: 나가면 뭘 할 건가요?
레너드: 걷고, 보고, 사람들에게 말을 할 겁니다. 이쪽으로 갈지, 저쪽으로 갈지, 아니면 똑바로 갈지 정할 겁니다. 사람들이 당연하게 여기는 일들을 할 겁니다.

의사: 그게 전부인가요?
레너드: 그게 전부입니다.


그러나 산책을 소원하던 레너드에게 엘도파의 부작용이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레너드는 난폭해졌고 다시 쓰러졌죠. 엘도파의 잔치는 끝이 났습니다. 그들은 기적적으로 깨어났지만  다시 잠들게 되었습니다. 



모든 것이 정지된 아들을 보며 레너드의 모친은 고백했습니다. 주어졌던 행복을 알지 못했던 무지함에 대한 각성이었습니다. 아들은 다시 잠들었지만 사람의 어리석음이 깨우쳐지는 순간이기도 했습니다.


제 아들이 건강하게 태어났을 때 왜냐고 묻지 않았죠. 왜 내가 이렇게 행복한지, 예쁘고 완벽한 아이를 선물로 받을 만한 자격이 내게 있었는지 묻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 애가 병에 걸렸을 때 전 왜냐고 물었죠. 전 알고 싶었어요. 왜 내게 이런 불행이 생기는지...




고등학교 때는 원하는 대학만 들어가면 행복 시작일 것 같았습니다. 대학 시절에는 원하는 직장에만 가면 탄탄대로가 기다릴 것 같았습니다. 원하는 것이 얻어지는 순간 무지개는 사라졌습니다. 행복은 가져서 얻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가진 것이 많을수록 행복은 실종했습니다. 


우리가 불행하다고 느끼는 순간에도 행복은 우리 주변에 항상 있었습니다. 레너드의 기적은 바로 그 점을 알게 해 줬습니다. 작은 것에 고마워할 줄 모르고, 주어진 것의 소중함을 모르며, 단순한 일상의 귀함을 모르는 우리를 깨워주고 그들은 다시 잠들었습니다. 


끝없는 욕심을 내려놓을 수 없다면 어떤 것이 주어져도 인간에게 행복은 없습니다. 눈이 막히고 귀가 막혀 안 보이고 안 들리는 것입니다. 그 사실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것이 우리입니다. 물 한 방울의 감사함과 풀 한 포기의 소중함은 비워졌을 때 비로소 알아집니다. 


"만약 당신이 현재에 만족하지 못한다면 세상을 다 가진다고 해도 행복해질 수 없을 것이다." 고대 로마의 철학자 세네카의 말입니다. 흔해빠진 말이고 다 안다고 생각하는 말이지만 내 마음이 그렇게 되어야 알 수 있는 말입니다.


<사랑의 기적>은 파킨슨병 치료약 엘도파(L-DOPA)와 관련된 실화를 바탕으로 한 1990년 영화다. 영화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내용을 박스에 넣어 소개한다.


1. 기면성 뇌염

죽은 듯이 잠만 잔다고 수면병, 혹은 잠자는 뇌염이라 불렸다. 1차 세계대전 후 3년 동안 유럽에서 유행한 신경질환이다. 치사율 40%에 5백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 생존자는 의식도 없고 움직이지도 못한 채 유령처럼 평생을 보낸다. 부검 결과 파킨슨병 환자처럼 중뇌의 흑체가 망가져 있었던 괴질이었다.

2. 신경과 의사 올리버 삭스 Oliver Sacks (1933-2015)

1966년, 의사 올리버 삭스는 기면성 뇌염 환자가 있는 요양병원에 부임한다. 그는 뇌염 환자가 공에 반응하는 것을 보고 연구를 시작했다. 1969년, 파킨슨병 치료제로 새로 나온 엘도파로 임상실험을 시작했다. 환자는 기적처럼 깨어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약의 용량을 맞추기가 힘들었고 심각한 부작용이 나타났다. 결국 투약은 중단하게 되었고 환자들은 원래의 상태대로 굳어갔다. 

올리버 삭스의 글은 이후 어떤 학술지에도 실리지 않았고 그 자신도 학술지를 포기했다 전한다. 그는 환자의 '병리적 상태뿐 아니라 내면에 감추어진 부분까지 파고들어 질병 때문에 달라진 인간의 존재방식을 들여다본(네이버 지식백과 참고)' 의사로 알려진다. 희귀 암으로 사망했다.

3. 영화배우, 로버트 드니로와 로빈 윌리엄스 

1973년, 이 기적과 비극이 교차하는 사건은 영화로 만들어지게 되었다. 환자 레너드 역을 맡은 로버트 드니로는 환자를 직접 찾아다니며 관찰했고, 닥터 세이어 역을 맡은 로빈 윌리엄스 역시 삭스를 직접 만났다. 그 결과 완벽한 재현이 가능했다. 삭스는 말투와 몸짓이 자신과 너무 닮아 거울을 보는 기분이라 했다 한다. 로버트 드니로 연기의 리얼함은 두말할 것도 없다. 소름 끼친다. 영화는 1990년에 개봉되었고, 91년에 한국에서도 개봉되었다. 

참고 :  메디 시네마 (1), 박지욱 신경과 전문의, 더 사이언스 타임즈, 2019.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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