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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담자 P Feb 27. 2020

시가 탄생되는 시간, 새벽 여섯 시 반

아직은 자고 있는 세상을 지켜보는 일

태양이 뜰 거라고는 상상할 수 없는

어둠이 짙게 깔린 하늘을 바라보는 일


이 시간의 풍경이 가져다주는

알듯 모를듯한 신비로움이

나로 하여금 시를 쓰게 해


가로등 불빛이 만들어내는 고즈넉한 분위기

한산한 마을버스 안의 차가운 공기

하나둘씩 불이 켜지는 도로변 아파트

캐리어를 끌고 공항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


늘 경쾌한 버스단말기의 '하차입니다' 음성

힘차게 커브를 돌아 내릴 곳에 멈춰 선 버스

문득 밀려오는 어지러움에 찡그려지는 눈

지하철역으로 바삐 걸음을 옮기는 나


도라지 장사 준비를 이미 마친 할머니를 보며

내가 어제보다 3분쯤 늦었음을 아는 재미

영업 준비 중인 고로케 가게의 어수선함을 보며

'가게 오픈 전은 이렇구나' 짐작하는 재미


어지러움에 눈을 꾹꾹 감아가며 걷는 승강장

고맙게도 때마침 도착한 지하철

두 아저씨들 사이의 좁은 자리에 낑겨 앉아서

시인 듯 시 아닌 글을 끄적이는 나


한강을 보려고 졸린 눈을 애써 떠보지만

찬란하게 빛나던 강물은 보이지 않고

온통 깜깜한 세상에 도시의 불빛만 반짝반짝


그치, 아직은 해가 뜰 때가 아니지

나도, 아직은 눈을 뜰 때가 아니지

서울역에 도착하려면 5분이 남았다

잠깐 눈을 붙여보자


이렇게 시작되는 새로운 하루

시가 탄생되는 시간

새벽 여섯 시 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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