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놓아주면 오는 사랑

갱년기와 사춘기의 크레쉬

by culturing me

서로의 손을 꼭 잡고 반짝이는 눈을 맞추며 팥빙수를 먹고 있는 아빠와 딸.

그 모습이 너무 예뻐 지나가던 한 사진작가는 사진을 찍어 잡지에 싣기도 했었다. 마흔이 넘어 어렵게 얻은 딸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아빠는 행복했다. 정 많고 다정한 아빠는 주부습진이 생기는 줄도 모르고 딸에게 정성스레 음식도 해주었다. 잘 먹이는 것이 아빠의 사랑에 대한 해석이었다.


따뜻한 맘과 열정으로 키운 딸. 그런데 그 딸이 훌쩍 자라더니 아빠의 마음을 알아주기는커녕 거꾸로 가고 있다. 사랑을 준 만큼 자신에게 더 다가와야 하는데 아빠의 마음으로부터 슬그머니 발 한짝을 빼나 싶더니 언젠가부터는 눈에 띌 정도로 멀어져 버렸다. 온몸을 불사른 아빠에 대한 딸의 반응은 “이 세상에서 아빠가 최고야!" 였어야 했는데 도리어 냉랭함과 무심함으로 돌아왔다. 수박을 좋아하는 딸 생각에 한 겨울에 비싼 수박을 끙끙대며 사다 주어도, 온갖 레시피를 연구해 땀을 뻘뻘 흘리며 새로운 음식을 해줘도 딸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맛 집을 데려가겠다고 해도, "난 가기 싫어. 꼭 가야 돼?" 딸의 홀로서기를 받아들일 준비가 안되었던 아빠는 전혀 예상치 못했던 딸의 반응들이 당황스럽고 슬프게 느껴졌다.


그럴수록 아빠는 딸이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서 더 힘을 냈다. '우리 딸에게 좋은 경험을 시켜 줘야지'. 그래서 몇 해 전에는 경제적 그리고 시간적 무리수를 두면서 아빠의 영혼이 행복했던 젊은 시절의 안식처인 정글 여행을 선물해 줬다. 그곳에서 해파리가 서식하는 금지구역인 줄 모르고 바다에 들어간 엄마가 해파리에 잔뜩 물려왔다. 속상한 나머지 아빠는 금지구역에 들어간 아내를 나무랐다. 그리고 딸의 공감을 얻고 싶었던 아빠가 "ㅇㅇ야, 엄마는 왜 물어보지도 않고 금지구역에 들어갔을까? "하고 말했을 뿐인데 딸의 반응은 예상을 빗나가 아빠의 마음을 후벼 팠다. "들어갈 수도 있지! 왜 아빠한테 물어봐야 하는데?"라고 버럭 하는 것이 아닌가. 분위기는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아! 이 둘의 '거꾸로 가는 겨루기'는 무엇일까? 바로 '사춘기'와 '갱년기'의 만남이다. 사춘기를 맞이한 딸은 부모에게 '제발 나 좀 내버려 둬! 나도 내 삶을 스스로 찾아가고 싶어! 간섭하지 말란 말이야!'라는 무의식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 것이다. 반면 외로움과 상실감이라는 갱년기의 거대한 파도 속에 있는 아빠로서는 딸의 '변화'를 받아들이기 힘들었을 것이다. 항상 아빠품에 기대어 있을 줄만 알았던 딸이 궤도를 이탈해서 멀어져만 가고 있기 때문이다.


사춘기와 갱년기를 겪고 있는 부녀를 바라보며 엄마이자 아내인 나는 외줄 타기 하듯 아슬아슬하게 둘 사이를 왔다 갔다 했다. 도대체 이 두 사람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고민하던 중, "잠깐만.. 나의 이 불편한 감정은 뭐지?? 왜 잘못한 것도 없는데 둘 사이의 불협화음에서 눈치를 봐야 하는 거지? "하는 회의감이 들기 시작했다. 내가 무슨 능력으로 정신생리학적으로 가장 다루기 어렵다는 두 현상인 사춘기와 갱년기 간의 무언의 전쟁을 평화로 이끌 수 있단 말인가? 부모의 행위 (behavior)가 아무리 가족을 위한 희생이라 하더라도 자기의 감정 (emotion)을 살피지 않으면, 부모 자신은 오히려 책임감이라는 강박에 사로잡혀 삶이 무거워 진다.


어느 날 아침, 커피 한 잔의 사색이 가르쳐 줬다. 각자가 겪는 사춘기와 갱년기는 누가 대신해 줄 수도 가르쳐 줄 수도 없는 자신과의 힘겨루기이고 각자의 인생이다. 많은 부모는 자식의 문제를 대신 해결해 주려고 한다. 물론 가족 간에는 무한한 관심과 사랑이 필요하다. 그 사랑이란, 상대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믿어줌과 서로의 경계를 지켜주는 관심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것은 반드시 자기 자리를 찾아갈 것이라는 믿음이기도 하다.


하지만 우리 부모들조차 우리에게 그 정도의 공간을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에 자식의 마음도 내 소유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내 마음만이 내 것일 뿐, 자식의 마음은 그들의 것임을 잊지 말자. 그리고 이제부터라도 네 마음과 내 마음을 구분하지 못한 채, 자식의 마음을 해결해 줄 수 있다는 무지함을 사랑이라고 착각하지 말자. 갱년기의 늪에 빠져있는 남편도 그리고 가시나무 길을 걷고 있는 사춘기 딸도 각자가 필요로 하는 혼자만의 시간을 보낸 후에야 어느 정도의 외적인 간섭도 편히 받아낼 수 있는 평온한 심리상태가 될 것으로 믿는다.


모르던 것을 알게 되는 순간 이미 해결됐다고 착각하기 쉽다. 하지만 진정한 변화는 행동이 바뀔때 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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