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니까 40대다
학창 시절을 돌이켜보면 특별히 하고 싶은 일이 없었습니다. 그저 학생이라는 신분에 충실해 의무적으로 책상 앞에 앉아 있었을 뿐이죠. 주위 친구들이 명문대를 목표로 달리니 나도 덩달아 펜을 굴렸지만, 어떤 삶을 꾸리겠다는 구체적인 청사진은 없었습니다. 대학 진학 역시 내가 무엇을 잘하고 좋아하는지에 대한 탐구보다는, 성적에 맞춰 갈 수 있는 가장 '이름값' 높은 학교와 학과를 택하는 과정이었습니다.
대학 졸업 후의 삶도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꿈을 찾아 대학원에 진학하거나 가슴 뛰는 일을 쫓아 떠나던 친구들과 달리, 나는 가장 안정적인 '회사의 울타리'를 선택했습니다. 직장 생활의 고비마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상황에 떠밀려 열심을 내기도 했죠. 스스로 위험을 감수하며 주체적인 선택을 내리는 삶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어찌 보면 순탄했지만, 달리 보면 나만의 고유한 서사(Story)가 없는 무색무취한 삶이었습니다.
10대와 20대가 배우는 시기라면, 30대와 40대는 그 배움을 현장에서 증명하는 시절입니다. 그렇다면 다가올 50대는 비로소 진짜 어른이 되어야 하는 시간이 아닐까요?
이런 갈증 때문인지 요즘은 십 대 시절에도 겪지 않았던 인생에 대한 치열한 성찰에 빠지곤 합니다. 과거의 내가 '안정'이라는 목표를 향해 달리는 경주마였다면, 지금의 나는 자꾸만 멈춰 서서 뒤를 돌아봅니
"나는 누구인가, 지금 내가 하는 일이 진정 원했던 것인가."
어느 날은 현실에 순응하자고 다짐했다가도, 어느 순간에는 모든 것을 내던지고 꿈을 찾아 떠나고 싶은 소년 같은 마음이 치밀어 오릅니다. 인생의 전반부가 사회가 정해준 '정답'을 채우는 시간이었다면, 후반부만큼은 내가 만든 나만의 길을 걷고 싶기 때문입니다.
회사를 떠나면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될지 모른다는 위기감은 10대 사춘기의 자괴감과 닮아 있습니다. 부모의 품을 벗어나면 스스로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의 그 막막함 말이죠.
10~20대 시절에는 수능 점수나 자격증처럼 나를 증명할 지표가 명확했습니다. 당시에는 그것이 절대적이라 믿었기에 해결 방법을 찾는 길도 오히려 명료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다릅니다. 회사라는 견고한 성벽을 벗어나는 순간, 나는 명함 한 장 스스로 파지 못하는 사회 초년생과 다를 바 없습니다.
중년의 나이는 더 이상 동일한 점수로 평가받을 수 없습니다. 이제는 나만의 서사를 들려줄 수 있는 사람만이 사회에서 진정한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나는 사춘기 소년보다 더 지독하고 치열하게 '40대의 사춘기'를 앓고 있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