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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ko Nov 19. 2019

아이가 아프면 엄마는 죄인이 된다.

말레이시아 한 달 살기 애증의 수영장과 에어컨

처음엔 무조건 잘한 것 만 갔았다. 파란 하늘, 비교적 맑은 공기, 언제고 아이와 물놀이를 할 수 있는 숙소, 아이에게 친절한 사람들 덕에 이곳에 온 걸 스스로에게 매일 칭찬할 만큼이나 좋았다. 엘리베이터나 카페에서 누구에게나 밝게 인사를 주고받고, 히잡을 쓴 아이들과도 잘 어울리는 아들을 보며 3세 전 후로 아이가 평생 지니고 갈 인성과 자존감이 결정된다는데, 나는 이 특별한 시간이 선물 같기만 했다.  이 모든 건 아이와 내가 건강하다는 게 전제할 때 가능한 일이다. 말레이시아 한 달 살기에서 시작된 70일이라는 긴 여정이 무탈하기만을 바랬다. 인생이라는 게 어디 생각하고 계획한 대로만 되는 게 아니지 않은가?

Damansara IKEA 맞은 편 커브몰에서 만난 친구

아이의 유치원에서 만난 친구네 집에 주말 동안 초대를 받았다. 이 동네에서 수영장이 크고 좋기로 유명한 콘도로  미니 워터파크 시설도 있어 우리 아들은 두 시간이 지나도록 나올 생각을 안 했다. 결국엔 끌고 나오다시피 데리고 나왔는데 물놀이를 오래 한 데다 이곳은 기본적으로 상시 에어컨을 가동하는 나라이다 보니 결국 일요일 밤부터 아이 몸이 뜨끈했다. 한국에서 비상약으로 챙겨 온 해열제를 우선 먹이고 밤새 열이 오르락내리락하는 아이를 보며 나 자신을 얼마나 자책했는지 모른다. 앞서 언급한 아이와 나눈 이곳에서의 기쁨은 깡그리 사라지고 왜 이 먼 곳까지 아이를 데려와 고생을 시키나... 내 욕심만 앞선 게 아니었을까? 아이 상태가 더 나빠지면 어쩌나... 나이가 들어 만난 아들이기에 젊은 엄마들에 비해 체력은 부족해도 세월이 주는 경험이 있으니 작은 일에 부화뇌동하지 않고 의연하게 대처할 줄 알았다. 적어도 한국에서는 그랬다. 24시간 응급실도 10분 거리에 있고, 아이의  예방접종과 내원 기록이 남아있는 소아과도 있으니 아이가 열이 오르거나 감기가 와도 크게 걱정하지 않았고, 아이는 밥도 잘 먹고 감기를 자주 앓은 적이 없어 늘 건강하다고만 생각해 왔다. 새벽까지 아이의 열이 39도를 오르내리는 모습에 눈물은 절로 쏟아졌고 스스로에게 얼마나 화를 내었는지 모른다.

HIBARI CLINIC MONT KIARA | ひばりクリニック モントキアラ
병원 안 어린이 대기실

아침이 밝자마자 숙소에서 가장 가까운 병원으로 예약을 하였다. 몽키아라에는 한국 의사가 운영하는 '다솜 클리닉'과 일본 의사가 있는 (HIBARI CLINIC MONT KIARA | ひばり クリニックモントキアラ) '히바리 클리닉'이 있다. '히바리 클리닉'이 걸어서 5분 거리의 '원 몽키아라'에 있고 한국인 간호사가 상주하고 있어 예약도 카톡으로 가능하다. 예약 시간에 방문한 병원은 규모도 크고 환자도 많았다. 진료 시간이 되어 의사 선생님을 만났고 굉장히 오랫동안 세심히 진료하였다. 의사소통은 영어로 하는데 필요하면 한국인 간호사가 통역을 도와준다. 전 날 먹은 음식과 집에서 먹은 해열제 시간을 확인하고 편도, 배와 등, 손바닥 등을 확인하였고 아이가 미열이 남아있지만 컨디션도 좋으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하였다. 원하면 해열제 처방은 할 수 있으나 집에 있다면 그걸 먹이라고 했고, 수분 섭취를 권하고 유제품은 당분간 줄이라고 하였다. 진료 내내 아이에게 장난감을 권하며 따듯하게 대했고 밤새 퉁퉁 부은 눈만큼 커졌던 심란한 마음도 진료 후, 누그러들었다. 집에 돌아와 먹은 해열제로 열은 내려갔고 그 이후, 이삼일 간 기침과 가래가 있어 약사에게 상담받고 약국에서 아이용 코프 시럽을 구매했는데 이곳 역시 대부분의 의약품은 글로벌 기업의 제품들이라 한국에서 익숙했던 제품도 있다.  

한국에서 준비한 비상약
말레이시아 현지에사 산 기침&가래 시럽과 해열제

같은 콘도에 남편의 주재원 발령으로 2년 간 종합병원을 휴직하고 온 간호사 영미 씨가 있어 아이 상태에 대해 내 대처가 충분 한 건지 한번 더 상의했다. 6세 아이의 엄마이기도 한 영미 씨는 아이가 3세 전후로 온도 차나 음식, 어린이집의 단체 생활 등으로 열이 오르거나 감기가 쉽게 올 수 있다며 나를 안심시켰고 가까운 곳에 영미 씨 같은 한국인 간호사가 있다는 사실이 고마웠다. 간혹 한 달 살기나 말레이시아 여행 카페에 아이의 아픈 상태에 대한 문의글들이 올라오곤 하는데 이건 정말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이다. 병원의 위치를 묻는 건 괜찮지만, 아이의 상태를 묻는 건 이 분야를 공부한 전문가들에게 해야 할 행동이지 카페에서 논 할 사항이 아니다. 답답한 마음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엄마는 아이의 상태를 확인하고 병원에 데려가는 게 가장 우선시되어야 한다.

아이가 아프면 엄마는 죄인이 된다. 이유 여하를 불문하고 엄마는 한없이 미안하다. 아이가 좋아한다고 어린 아기를 두 시간이 넘도록 수영장에서 오래 놀게 한 나도 그 순간만은 빵점짜리 엄마다. 엄마들은 알 것이다. 건강하게 꿀잠을 자고 난 아침에 엄마에게 잘 잤다고 인사하는 아이 모습이 얼마나 예쁜지. 일부러 아프게 하려고 할 부모가 지구 상에 어디 있겠는가마는 좀 더 현명해야 한다. 말레이시아는 사시사철 더운 나라고 실내에선 대부분 에어컨을 켜 두고 지낸다. 대형 쇼핑몰과 실내 놀이터, 박물관등은 더 냉방을 강하게 하기에 이곳 사람들도 실내에선 긴팔 옷을 착용한다. 말레이시아 한 달 살기를 앞두고 있는 엄마들은 이곳에 오기 전 아이가 다니던 소아과에서 여행용 비상약을 처방받고, 여벌의 긴팔 상, 하의를 꼭 챙겨 와야 한다. 아이마다 체력이나 면역력, 취약 부위가 다를 터이니 각자의 상활에 맞게 긴 여정을 대비해야 한다.


아이가 아프던 3일이 30년처럼 길게 느껴졌다. 지난주 '리틀 인디아'에선 마주 오던 사람이 넘어지는 걸 안타까워하며 쳐다보다 나도 넘어져 이틀간 근육통 연고를 발라야 했다. 어제 아침엔 grab를 타고 가다 앞 차의 급 정거로 빗길에 내가 탄 차량과 접촉 사고가 있었다. 이곳이 난폭 운전 문화가 난무한 곳도 아니고 절대다수의 무슬림들이 살고 있는 국가다 보니 음주 사고도 없는 편인데 어제의 사고에 굉장히 놀랬고 아이의 하원을 기다리며 "만약 큰 사고로 이어졌다면 우리 아이는 어떡하나?"라는 생각부터 들었다. 그 이후 타는 grab에선 안전벨트부터 찾게 되었다.

이곳도 글로벌 병원들이 곳곳에 있고 국립 병원도 괜찮은 편이다. 약국의 약들도 한국 못지않지만, 가장 중요한 건 아무도 아프지 않은 것이다. 여행자 보험은 어느 보험사 건 적절한 곳을 찾아 반드시 가입하고 현지에서 병원을 다녀 올 일이 있다면 증빙서류를 챙겨 제출하면 된다. 보험은 공항에서 가입이 가장 비싸니 사전에 모바일이나 PC로 가입을 권한다. 항생제가 필요할 경우 이곳 역시 의사의 처방이 필요하다.

아이가 아픈 3일간 아이 아빠는 괜찮다고 하지만 괜스레 미안하고, 시부모님들과 매일 하는 영상 통화 엔 아이가 기침이라도 할까 조마조마했었다. 아이는 다시 건강 해 졌고 여전히 수영장에 가면 나올 생각을 안 하는 게 문제이다. 우리가 이곳에 온 지 3주 차가 지나가고 곧 한 달이 다 되어간다. 앞으로 남은 한 달 반의 시간 동안 나도 우리 아이도 그리고 앞으로 이곳에 올 엄마와 아이 모두 아프지 않고 잘 지내다 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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