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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ko Nov 25. 2019

날씨만큼 아이에게 따듯한 나라

나는 이 여정을 통해 아이에게 환대를 선물하였다.

말레이시아 한 달 살기 여정 중, 아이에게 무엇이 가장 좋았냐고 묻는다면 바로 말레이시아 사람들의 따듯함과 친절함이다. 현지 유치원을 다니고 있지만 25개월 된 아이에게 어학을 위해 이곳으로 온 것이 아니다. 다들 아이는 기억도 못 할 것이라고 말한다. 맞다 그리고 틀리다. 아이에게 이곳이 '쿠알라룸푸르'인지 '서울'인지, 아니면 아이가 좋아하는 '하와이'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나는 아이가 어디 어디를 다녀왔다는 머릿속 기억보다 아이가 매일 아침 등원 길 경비원 아저씨, 청소원 분들과 나누는 따듯한 인사로 시작하는 하루와 하원 후, 식당, 쇼핑몰, 마트, 서점, 등 어딜 가도 따듯하게 인사를 전하는 말레이시아인의 환대가 고맙고 아이가 굉장히 사랑받고 있다고 느끼는 것이 중요하다. 남편에겐 농담으로 오늘도 DNA에 행복 세포를 추가했다고 전하곤 한다. 환대를 받고 사랑을 받아 본 아이로 키우는 것이 그래서 우리 아이도 똑같이 나눌 수 있는 사람으로 자라는 것이 내 바람이고 내가 이 여정을 시작한 이유이다. 아이는 내 바람대로 어디서나 누구와도 인사를 나누고 늘 '땡큐'를 외친다. 아이에게 피부색은 지구인으로 살아가는데 전혀 중요한 부분이 아이다.

Aquaria KLCC, Kuala Lumpur Convention Centre

지난 주말 '쿠알라룸푸르 한 달 살기'를 오면 한 번은 찾는 '페트로나스 트윈타워 KLCC'에 있는 수족관 '아쿠아리아'에 다녀왔다. 3세 이하는 무료입장이라 아이의 개월 수 확인 후 바로 입장하였다. 규모는 아담해도 아이가 좋아하는 상어와 가오리도 실컷 보고 마지막에 커다란 거북이에게 인사를 끝으로 나오니 어느덧 저녁 식사 시간이었다. 근처 식당을 찾던 중 'K Fry Urban Korean'이라는 식당이 눈에 띄었다. 아이와 동반일 땐 동네 '몽키아라'에서도 한식당은 종종 가는데 굳이 또 한식이겠냐 싶다가 가게 안 테이블 위 떡볶이가 눈에 띄어 나도 모르게 아이 손을 이끌고 들어가게 되었다. 한국에서도 일식당에 가면 '이랏샤이 마세!(いらっしゃいませ)'를 크게 외치듯 가게에 입장하니 직원 모두 '안녕하세요!'를 경쾌하게 외쳤다. 가게 이름 그대로 한국식 치킨을 파는 곳이지만, 치킨 외에도 떡볶이, 빙수, 김치전, 추억의 도시락 등 익숙한 한국의 메뉴들이 다양하게 있었고,  가게 안에선 'BTS'와 'EXO' 등 K-POP 스타들의 음악이 신나게 흐르고 있었다. 몽키아라나 암팡지역에도 어쩌면 흔하게 볼 수 있는 한국식 치킨집이지만, 내가 이곳을 다녀와서 "우리도 좀 이랬으면 좋겠다"는 부러운 생각이 들었다. 한국 사람이 한국도 아닌 말레이시아에서 그것도 온통 말레이시안 직원밖에 없는 치킨집에서 무엇이 부러웠냐고 묻는다면 바로 그들의 아이에 대한 따듯함이다.  

아들과 치킨집 직원 'K Fry Urban Korean', Suria, KLCC

한국은 지금 '82년 생 김지영'의 개봉 이후 영화의 흥행과는 별개로 페미니즘 논쟁이 있다고 이곳에서도 신문 논설과 기사글로 보았다. 내가 좋아하는 두 배우의 출연작인데 아쉽게 쿠알라룸푸르에 오게 되어 영화는 개봉관에서 보지 못 했지만, 책은 읽었기에 이야기는 충분히 알고 있다. 책과 영화를 통해 보이듯 아이를 키우는 엄마가 아이와의 외출이 얼마나 고된 일인지 공감할 것이다. 결혼 후, 오랜 시간 아이가 없던 나 역시 조용한 커피숍에 엄마손을 잡고 오는 아이에게 웃어주던 여유 있는 아줌마가 못 되었다. 그리고 일부 문제시되는 엄마들의 행동엔 거품을 물던 나였다.


그러던 나도 엄마가 되었다.


그것도 체력이 수직으로 급 하강 중 인 마흔에 임신과 출산을 하였고 아이가 걷고 뛰기 시작하니 가뿐 숨을 몰아쉬며 따라다니기 바쁜 엄마가 되었다. 아이와 SNS 나오는 우아한 여자들처럼 브런치라도 먹을라 치면 키즈 유튜브 시청을 위한 여분의 스마트폰 배터리와 소리 지르는 아이의 입을 틀어막기 위한 그놈에 곰돌이 젤리, 과자, 물, 기저귀, 여벌의 옷, 등등 아이 용품만 한 짐이었다. 그러나 나를 그리고 또 우리 엄마들을 힘들게 하는 건 물리적인 무거움과 힘듬이 아니다. 매일 아침 출근하는 남편에게 직원들에게 말을 조심하라는 잔소리로 시작한다. 주로 하는 레퍼토리가 '사람은 기분이 전부'라고 늘 떠드는데, 우리가 회사에서 기분을 망치는 건 업무의 과중함이 보단 상사의 인신공격성 언행이 더 크듯 아이의 무거운 짐가방 보다 아이와 함께 하는 그 공간 속 타인의 차가운 시선이 엄마를 힘들게 한다. 인내심 없는 아이와 커피 한 잔, 밥 한 술 뜨기가 가시방석이다. 때로는 아무도 눈치를 주지 않았는데 지례 겁먹고 커피를 들고 서둘러 나오기도 한다. 나 또한 타인에게 폐를 끼 끼치는 걸 싫어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늘 아이와의 방문지가 한정적이었다.  

그런데 이곳은 참 따듯하다. 더운 날씨만큼 말레이시아 사람들은 적어도 아이에게만큼은 더없이 따듯하다. 우리 아이가 특출 나게 이뻐서도 귀여워서도 아니다. 이 나라 국민들은 누구에게나, 어린아이들에게 먼저 손을 내밀고 인사를 건네는 여유로움이 있다. 식당을 가도 내가 먼저 묻지 않아도 아기 의자를 준비해 주고, 주문을 받거나 서빙을 하면서도 아이에게 눈인사를 건넨다. 에어컨 없고, 사람 많아 정신도 없는 한 끼 7 링깃 짜리 백반집 'Mamak'에서 조차 서빙을 하며 아이에게 인사를 건넨다. 아이도 안다. 자신이 환영받고 있다는 걸 그래서 아이도 그들에게 똑같이 인사를 하고 손을 잡는다. 물론 버릇없는 아이에게 친절한 국가는 지구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어쩌면 아이의 존재 그 자체만으로도 인상이 찌푸려진 적이 있지 않을까? 부끄럽지만 나는 그랬다. 아이가 태어나고 이 부족한 엄마가 세상의 전부일 아이와 함께 살아가며 하루하루 반성하고 배운다.


엄마가 되고 동선은 좁아졌는데 시야는 넓어져간다.


지난 주말 식사 내내 쿠알라룸푸르 한국식 치킨집 직원들이 아이에게 보여주는 따듯함에 그날의 치킨이 내 인생 제일 맛있게 먹은 치킨이었다. 아이는 집에 가기 싫다고 할 만큼 좋아했다. 그리고 그 감사함을 90도 배꼽인사로 화답했다.


'쿠알라룸푸르 한 달 살기' 동안 아이에게 돈으로도 살 수 없는 환대를 선물한 것이 내가 이곳에 와서 느끼는 가장 큰 행복이다. 지난 한 달간 아이가 아프기도 했고, 나는 택시 아저씨와 실랑이도 했으며, 칠칠치 못하게 카메라 렌즈도 잃어버렸지만, 이곳 사람들이 주는 따듯함으로 앞으로의 여정도 아이와 즐겁게 지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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