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주말 페낭 여행기 (feat. without 유모차)
여행의 시작은 엉망이었다. 모든 게 내 무지에서 비롯했기에 누굴 원망할 수도 없었다. 서울에서나 쿠알라룸푸르에서나 주말여행은 늘 즉흥적이었지만, 25개월 아이를 데리고 처음으로 남편과 유모차 없이 말레이시아 국내선 비행기를 타고 떠나는 건 여행보단 모험에 가까운 것이거늘 한 치 앞을 모른 채 느긋한 성격대로 토요일 아침에 아이와 아침밥을 먹으며 페낭 여행의 항공권과 호텔을 검색하고 점심 무렵 Grab을 타고 공항으로 떠났다. 한 손에는 여행가방을 밀고 다른 한 손엔 아이 손을 잡고 체크인 카운터에 도착하니 이미 내 비행편의 체크인은 마감이란다.
출장이 많은 직업이었고, 즉흥적이긴 해도 나름 꼼꼼하다 자부했건만 말레이시아는 국내선 역시 국제선처럼 한 시간 전 탑승 수속을 마쳐야 하는 걸 공항에 와서야 알게 된 것이다. 결국 인당 RM100링깃 정도의 추가 비용을 지불하고 다음 항공편으로 재 발급 수속을 밟았다. 나는 식은땀을 흘리며 당황했지만 아이는 공항에서 만난 친구와 까르르 웃으며 정신없이 부산을 떨었다.
그 와중에 호텔 역시 예약번호만 도착했지 확정 메일을 받지 못한 것이 불현듯 떠올랐다. 불길한 예감에 예약을 했던 '이스턴 앤 오리엔탈 호텔(Eastern & Oriental Hotel )'로 전화를 하여 예약 명단을 확인하니 역시나 내 이름은 없었다. 부랴부랴 예약을 했던 '트립 닷컴' 측에 연락을 하니 풀 부킹으로 안 그래도 예약 취소 문자가 발송될 찰나였다고 한다. 페낭행 탑승을 알리는 방송이 공항에 울려 퍼질 때쯤 나는 아이와 페낭 길거리에서 노숙을 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정신없이 '부킹닷컴'을 뒤지기 시작했다. 탑승 일보 직전에 예약한 호텔은 조지 타운(George town)에 위치한 '아레카 호텔 (Areca hotel)'로 한국인 리뷰는 거의 없지만 구글 리뷰가 괜찮은 곳이었다. 결재 후 '아레카 호텔'로 전화를 걸었다. 다행히도 '부킹닷컴'의 예약 내역이 바로 확인이 되었고, 호텔 직원의 차분한 응대에 긴장했던 마음도 한시름 놓여 공항 픽업 서비스도 요청하였다. 페낭행 비행기에 몸을 싣고 나니 피곤이 몰려왔다. 짧은 한숨을 쉬며 이러려고 여행을 떠난 것인가 스스로를 책망하며 아이를 보니 말레이시아 항공의 땅콩 간식이 맛있어선지 아니면 승무원 누나들이 이뻐선지 연신 방긋거리고 있어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났다. 그래 아들... 어차피 정해놓은 일정 하나 없이 떠나온 여행인데 괜한 불안을 떨었구나. 아들은 우리가 어디로 향하는지는 몰라도 엄마와 비행기를 타고 어디론가 떠난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행복해 보였다. 부족하고 못난 사람이어도 아이에게만큼은 엄마가 우주 일터인데 오늘 하루는 블랙홀이 따로 없었다. 50분의 짧은 비행을 마치고 우기(雨期) 답게 비 내리는 페낭(Penang) 섬에 도착했다.
아담한 '페낭 국제공항'에 내리니 'MIKO LEE' 내 영어 이름이 큼지막하게 쓰여있는 스케치북을 든 픽업 기사가 바로 앞에 서 있었다. 비도 세차게 내리고 있어 기사의 존재가 반갑고 동시에 비로소 정상적인 여행이 시작된다는 안도감이 들었다. 그렇게 30분 남짓 차를 타고 호텔에 도착하니 저녁 식사 시간이기도 했고 온종일 긴장이 풀려 허기가 몰려왔다. 우리 숙소인 '아레카 호텔 (Areca hotel)'은 구글 리뷰대로 가성비가 좋은 호텔이었다. 아침에 예약했던 '이스턴 앤 오리엔탈 호텔(Eastern & Oriental Hotel )'의 4분의 1 가격으로 중국 전통 가옥의 느낌과 말레이시아의 문화가 결합하여 그들만의 독특한 또 하나의 문화가 된 '페라나칸(Peranakan)'스타일이 살짝 엿보이는 곳이었다.
쏟아지는 빗줄기를 뚫고 깜깜한 저녁이 다 되어 어린아이와 단 둘이 온 한국 엄마는 이 호텔에 처음이었는지 호텔 직원은 정말 친절하였고 그 느낌은 고급 호텔의 프로페셔널함과는 다른 애잔함이 느껴졌다. 일요일 쿠알라룸푸르로 돌아가는 항공편이 저녁 6시 반이라 레이트 체크아웃 비용을 문의하니 아이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직원은 이내 환하게 웃으며 오후 3시까지 추가 비용 없이 머물다 갈 수 있게 배려해 주었다.
아직 기저귀를 떼지 않은 아이가 있는 엄마들은 모두 알 것이다. 이게 얼마나 고맙고 필요한 일인지 말이다. 엉망진창으로 시작했던 페낭 여행은 점점 산뜻해져 갔다. 짐을 풀고 나니 어느새 비가 그쳤다. 지난 한 달간 몽키아라에서 그랩을 매일같이 이용하며 그랩 기사들에게 페낭에 꼭 다녀오라는 이야기를 자주 들었다. 그들은 한결같이 페낭의 음식을 극찬했고 지난주 어학원 클래스메이트 영미 씨가 해준 대답이 결정적으로 페낭행 비행기에 오른 이유였다.
'페낭은 말레이시아의 전라도에요'
방사르 빌리지의 고급 쇼핑센터 내 'Champ's Bistro'에서 처음 먹어 본 새우탕 '호키엔 미(Hokkien Me)' 덕에 나는 락사로 갖은 말레이시아 음식의 편견을 단박에 날려 보냈었다. 메뉴판 귀퉁이에 적힌 'based in penang'. '한국의 '전주'처럼 페낭은 '맛의 도시'였다. 달큰하고 진한 새우탕 국물이 꼭 우리네 꽃게탕 국물처럼 맛있었던 나는 아이와 페낭에 가면 꼭 가보고 싶던 '888 Hokkien Me'집으로 향했다. 그랩을 타니 5링깃 정도로 숙소와 가까운 거리였다. 추후에 안 것이지만 우리 호텔은 여행자들에게 로케이션이 정말 좋은 곳이었다. 페낭의 밤거리는 쿠알라룸푸르의 휘향찰란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오래된 전통 가옥을 보존하여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UNESCO Historic Site' 이기에 낮은 건축물에서 풍기는 고풍스러움과 편안함이 우리네 시골마을 시가지 같으면서 각기 다른 건축물 디자인에서 주는 유니크함이 어두운 밤에도 보였다. 그랩 기사가 내려 준 곳에는 차이니즈 말레이시안들이 운영하는 노천 가게가 여럿 붙어있는 구조였다. 가게 안 쪽에도 자리가 있었지만 노천이나 다름없이 에어컨은 보이지 않았다. 다행히 한차례 비가 내린 후라 그렇게 덥지 않았지만 문제는 주문부터였다. 늦은 저녁 시간임에도 사람들이 끊이지 않고 밀려들었고 테이블을 잡고 보니 주문은 국수를 말아주는 곳에서 직접 하고 들고 오는 방식이었다. 나는 이제 막 두 돌이 지난 어린아이와 함께 였고 아이와 함께 줄을 서는 것도, 테이블에 혼자 두는 것도 모두 걱정이 되어 순간 다시 호텔로 되돌아 가야 하나 갈등하는 찰나에 양 옆 테이블의 차이니즈 말레이시안 할머니들이 중국어로 계속 나에게 말을 하였다. 무슨 말인지는 정확히 모르겠으나 ‘커이커이(可以可以)’라는 말만 알아들었는데 대충 아이를 자리에 두고 국수 주문하고 오라는 것으로 들렸다. 잠시 고민하다 아이가 시야에서 보이는 정도의 거리라 아이에게 절반 정도 알라 들으리라 믿으며 얌전히 앉아있으라 말하고 양옆 테이블을 향해 어색한 웃음을 날린 후 주문 줄에 섰다. 다행히 아이는 옆 테이블 할머니와 손바닥 치기를 하며 앉아 있었고 나는 앞사람들 주문하는 모습 보랴 애 쳐다보랴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게다가 주문을 받는 국수 마는 아줌마는 중국어로만 의사소통이 가능했다. 18년 전, 첫 직장 LG에서 배운 사내 중국어 수업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칭게이 워 미엔티아오(请给我一碗面条) 내가 할 줄 아는 중국어는 업무용으로 암기한 자기소개와 '미 엔티 아오', '피지요우' 그리고 당시 모시던 임원분이 애연가 셔서 '앤 깡' 이게 다 였다. 그중 하나를 페낭에서 쓸 줄이야. 마지막에 고명을 추가하는 건 대충 손짓으로 주문하고 서둘러 아이에게 돌아오니 바로 옆에서 고소한 전 붙이는 냄새가 진동하였다.
무엇인지는 모르겠는데 계란말이 같기도 해서 아이용으로 하나 주문하였다. 이건 자리에서 다른 테이블 사람들처럼 큰 목소리로 '스몰 원'을 외쳤다. 곧이어 스크램블처럼 생긴 계란 요리가 테이블에 도착했고 요금은 RM10링깃이었다. 초장같이 생긴 빨간 소스가 같이 나왔는데 맛도 역시 초장과 비슷했다. 계란 요리는 먹어보니 '굴전'이었다. 후에 숙소로 돌아와 검색해 보니 대만 야시장에서 먹어 본 '오아 젠(OH CHIEN)'과 같은 요리였다. 사실 가게의 위생 상태는 심히 우려되었지만, 머릿속에선 여행 가방에 정로환과 스멕타를 챙겨 왔는지 생각하며 입으론 연신 굴전을 먹고 있는 나였다. 아이도 맛있는지 조용히 굴전을 먹었는데 혹시나 하는 걱정에 계란 부위만 먹게 했다. 곧이어 가게 직원으로 보이는 아주머니가 음료와 디저트 주문을 받으러 오셨다.
알고 보니 새우탕면 '호키엔 미(Hokkien Me)'만 면과 고명을 각자가 선택하기에 직접 주문을 받는 것이고 나머지 메뉴들은 자리에서 주문이 가능했다. 나는 페낭 하면 꼭 먹고 오라던 빙수와 비슷한 디저트 '첸돌(Cendol)'을 주문했다. 전주에 가면 한 번쯤은 전주비빔밥을 먹고 오듯 주문한 새우탕 '호키엔 미'는 정말 맛있었다. 에어컨도 없는 노천에 앉아 아이와 땀을 뻘뻘 흘리며 저녁을 먹고 나오니 왠지 모르게 개운했다. 그리고 무엇이든 잘 먹는 아이가 고마웠다. 숙소로 돌아와 예약이 취소되어 아쉬웠던 '이스턴 앤 오리엔탈 호텔이(Eastern & Oriental Hotel )' 못내 아쉬워 조식 뷔페를 예약하였다.
내가 꼭 그곳에 가고 싶었던 이유는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헤르만 헤세 (Hermann Hesse)'가 머물렀던 곳이기 때문이었다. 작가의 대표작 '데미안 Demian(1919)'은 올해로 출간 10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중학생 필독서이자 성장기 소설이라고들 하지만 내면의 나를 찾고자 하는 심리학적인 부분도 상당히 커 책의 의미를 온전히 이해 한 건 대학생이 된 이후였다. 작가는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라는데 우리는 여전히 남의 이목에 집중하고 살고 있다. 시대적인 상황이 바뀌어도 고전이 주는 특별함이 있기에 말레이시아 한 달 살기 떠나오기 직전에 다시 읽은 책 역시 '데미안'이었다. 페낭 여행을 검색하다 우연히 알게 된 이 호텔의 어떤 점이 작가를 고향인 독일과 스위스를 떠나 머무르게 한 것인지가 궁금했다.
전 날 페낭의 로컬 푸드를 먹고 잠든 우리는 아침 일찍 일어나 조식 퓌페를 예약한 호텔로 이동했다. Since 1885, '이스턴 앤 오리엔탈 호텔 (Eastern & Oriental Hotel Penang)' 호텔의 역사가 말해주듯 바닥, 손잡이, 계단, 화장실 타일 등 곳곳에 보이는 호텔의 디자인과 구조에서 오랜 영국 식민지의 역사를 엿볼 수 있었다. 호텔 바로 앞은 바다가 있었고 갈매기 대신 까마귀가 있었다. 아이와 호텔 곳곳을 둘러보다 예약 시간에 맞춰 레스토랑에 입장했다.
예약은 구글에서 찾은 'Tableapp.com'이라는 사이트에서 이름과 전화번호만으로 쉽게 할 수 있었다. 50만 원에 가까운 높은 숙박비에 비해 저렴한 조식 뷔페는 RM69링깃으로 2만 원 이내의 가격에 맛 또한 훌륭했고 아이는 무료였다. 특히, 즉석에서 반죽해 구워주는 인도 난(naan)은 일품이었다. 아침 식사 후 호텔 앞 바닷가 방파제 위를 거닐다 호텔 기념품 샵에서 에코백을 사고 그랩을 불렀다. 아이에게 따듯한 것은 페낭 역시 쿠알라룸푸르 못지않았다. 푸근한 인상의 호텔 주차 서비스 직원들은 아이가 그랩에 탈 때까지 번갈아 안아주며 살가움을 표하였고 아이는 더없이 즐거워했다. 평범한 이방인 아이를 특별한 듯 예뻐해 주는 그들에게 '땡큐 소 머치'로만 간단히 표현하기엔 부족할 만큼 고마웠다.
페낭의 포토 스폿인 조지타운(George Town) 벽화 골목은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만큼 오래된 건축 물 벽 곳곳에 그려진 멋진 그림들을 숨바꼭질하듯 찾는 묘미가 있었다. 특히나 페낭에서 그랩은 주소지를 'Kids on Bicycle '이라고 검색할 수 있게 'Penang Street Art' 거리의 그림들이 모두 주소가 그랩에 등록되어 있었다.
페낭의 더운 날씨가 고려된 것일까?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었을까? 새삼 그랩이 동남아시아 여행자에게 정말 유용하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우기(雨期)라 구름 낀 페낭의 아침엔 아이와 골목을 걷는데 무리가 없었다. 페낭 여행을 오며 유모차 없이 여행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다. 일단 아이가 이제 안고 다니가 버거운 15kg를 넘긴 데다 혹여 더운 날씨에 지쳐 걷지 않겠다고 떼를 쓰면 어쩌나 걱정을 했지만, 엄마 혼자 한 손에 캐리어를 다른 한 손엔 아이를 붙잡고 가야 하기에 유모차를 포기하고 일정을 느슨하게 짜는 것으로 타협했다.
아이는 여행이 무엇인지 아는 듯 잘 따라주었고 페낭의 골목 곳곳의 포토 존 그림들을 신기 해 하며 다른 여행자들의 사진 속 피사체가 되기도 했다. 낡고 오래된 골목길도 이처럼 충분히 문화적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는데 도시개발로 대부분 사라져 버린 서울의 옛 골목길들이 아쉬웠다. 25개월 아이와 긴 시간의 도보 여행은 쉽지 않아 호텔 근처 식당에서 아이도 먹을 수 있는 맑은 육수의 '완탕 미 (Wantan Mee)'를 포장 해 돌아왔다. 아침부터 골목길을 뛰어다닌 아이는 우리네 만둣국 같은 '완탕 미'를 맛있게 먹고 이내 잠들었다. 아직 낮잠이 필요한 나이라 오후 3시 체크아웃 시간까지 충분히 재웠다. 1박 2일의 짧은 여정에도 숙제하듯 관광지를 다니지 않았고 호텔의 배려로 편안했다. 쿠알라룸푸르로 돌아오는 항공편은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 'KL International Airport (KUL)'이 아닌 '술탄 압둘 아지즈 샤 공항 (Sultan Abdul Aziz Shah Airport)'이었다. 우리가 살고 있는 '몽키아라'에서 그랩 카로 30분이 안 걸리는 수방에 위치한 공항으로 금세 집으로 돌아왔다. 말레이시아항공과 코드셰어로 '파이어플라이(FlyFirefly )'란 LCC 비행기를 이용했다. 프로펠러가 달린 작은 비행기로 활주로를 걸어 나와야 했는데 아이가 가까이에서 비행기를 볼 수 있어 무척 좋아했다. 아이에겐 어쩌면 어른들의 불만사항일 수 있는 일들도 즐거움이었다.
그렇게 우리의 엉망진창으로 시작했던 페낭 여행은 또 하나의 새로운 경험과 추억을 만들며 즐겁게 끝났다. 말레이시아 한 달 살기에서 아이와 70일간의 여행으로 변경된 후, 한 달이 지나고 나서부터 익숙함 속에 나는 조금 더 용감해졌고 중년이라 불리는 40대에도 성장하고 있었다. 아이와 세상 밖으로 나가는데 필요한 것은 유모차보다 엄마의 실행력과 무엇이든 해 보자는 담대한 마음가짐이었다. 쿠알라룸푸르 거주의 큰 장점 중 하나는 발리, 끄라비, 브루나이, 베트남 등 한국에서 보다 경제적이고 편히 갈 수 있는 여행지가 많다는 것이다. 한 번쯤은 아이와 훌쩍 모험처럼 주말여행을 떠나보는 것도 말레이시아 한 달 살기의 즐거움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