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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ko Dec 12. 2019

아줌마가 악플러를 만났을 때

악플러는 착한 사람이었다.

오늘은 미스터리가 가미된 한 편의 휴먼 드라마 같은 하루였다. 나 같은 보통의 중년 아줌마가 유명 정치인이나 탑 스타들에게 따라붙는 악플을 받게 될 거라곤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했다. 결혼한 지 10년이 되는 해이자 마흔이 된 나이에 만난 아이와 남들보다 조금 늦게 만난 만큼 50세까지 1년에 한 차례씩 여행하듯 살아보겠노라는 인생의 계획을 세웠고 그 첫 번째 실행을 옮긴 쿠알라룸푸르에서 70일간의 여정 중이다. 아이와 이 소중한 시간을 기록하기 위해 '브런치' 작가에 지원했고 한국을 떠난 지 일주일이 되는 시점부터 이곳의 이야기를 쓰고 있다. 주로 아이와 가볼 만한 여행지나 이곳에서 필요한 것들에 관한 이야기들을 아이 엄마의 입장에서 작성해 왔고, 얼마 전 이곳에 살고 있는 한국 엄마들이라면 누구나 다 아는 한인 마트 근처에서 겪은 한국인들의 부끄러운 모습에 놀라고 속상한 마음을 나만의 공간이라고 생각한 내 브런치 계정에 글로 담게 되었다.

브런치에 글쓰기를 시작한 지 한 달 정도 지난 시점이라 내 글엔 구독자도 적고 이곳은 전문 기자나 오피니언 리더 등 공적인 이들의 의견을 피력하는 곳이 아니라 개개인이 겪은 여행, 직장생활, 결혼, 육아 등 지극히 사적인 이야기들이 주를 이루는 곳으로, 그 글들이 책으로 출간되지 않는 한 수익을 내는 곳도 아니기에 키워드를 잡고 클릭률을 높여 상업성 광고로 도배된 곳들과는 달리 글을 읽고 쓰는 공간이라고만 생각했다.

이틀 간, 30만 건이 넘어간 조회수

그러던 중 며칠 전 쓴 글의 조회수가 심상치 않아 알림 목록을 보니 실시간으로 조회수를 갱신하고 있었다. 10만 클릭부터 놀란 나는 유입 경로를 확인하니 다음 포털 사이트의 가독성이 좋은 자리에 노출되고 있었다. 그렇게 오늘 저녁까지 내 글의 클릭수는 30만 건이 넘어갔고 결국 내 의사와는 무관하게 이슈성 글을 쓴 이가 되었다. 포털 사이트에 노출이 처음 있는 일은 아니었지만 이번 건은 브런치 공간 답지 않게 댓글이 달리기 시작했고 드디어 나는 내 인생 첫 번째 악플을 받았다.


악플을 읽고 난 첫 번째 느낌은 두려움이었다. 나의 실명은 아니지만 그간 작성한 글들은 여행기가 주를 이루었기에 나와 아이의 모습도 군데군데 담겼고 누군지 알 수 없는 이의 비난은 공포감이 더욱 커 결국 나는 내가 쓴 글들의 진정성을 위해 작성해 두었던 프로필상의 경력과 개인 SNS까지 모두 삭제 해 버리는 계기가 되었다. 사회생활을 오래 하였고, 살아오며 꽤 다양한 경험을 겪었을 마흔 중반을 향해가는 아줌마인 나이지만 비난을 받는다는 건 정말 아픈 일이었다. 심호흡을 가다듬고 글쓴이의 의도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그는 우연히 포털 사이트 메인에 걸려있는 인종차별을 하는 한국인을 비난하는 글이 같은 한국인을 싸잡는다고 생각해 기분이 나빴고, 그 자리에서 그들에게 잘못됨을 바로 잡는 참 교육을 하지 않았으니 이런 글을 쓸 자격이 없다고 하였고, 내 이야기가 사실인지 증명할 수 없으니 '주작'이라는 표현으로 마쳤다.

문제는 악플을 다는 이들의 알고리즘에 있는데. 첫 번째 악플이 달리고 난 후, 악플 이전에는 없던 비슷한 비난들이 수위를 달리해 달린다는 것이다. 남도 이렇게 달았으니 나도 상관없겠지라는 생각에선지 아니면 다들 슈퍼 히어로급으로 남자 둘 과의 격투기에 능하신 건지 그들의 반말하는 인종차별적인 모습을 보고 그냥 나온 글쓴이도 똑같은 사람이라는 궤변의 답글이 두건이 더 달린 후 나는 생각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16년간의 샐러리맨 생활을 정리한 이유엔 육아와 함께 남편의 회사가 커진 사유도 포함된다. 하여 나는 정기적인 출근은 아니지만, 대외 업무와 인사관리를 담당하고 있다. 우리 회사의 법인 클라이언트들의 문제 해결을 위해선 법무 법인, 회계 법인, 노무 법인이 하나의 팀으로 모여 업무를 진행하기에 매 월 정기 미팅을 갖고 있다. 이곳에 오기 전 환송회를 해 주었던 변호사들이 농담처럼 요즘은 정보통신법 위반 관련 소송이 줄을 잇는다며 예전처럼 반성문으로 선처를 해 주는 사례는 없어 이 파트가 점차 커지고 있다는 이야기를 했었던 것이 생각났고 나는 두렵고 씁쓸함을 뒤로한 채 착잡하지만 정공법을 택했다.  


일부 맞춤법 조차 엉망인 초등학생 수준의 몇몇 글은 삭제하고 나의 첫 번째 악플러에게 답글을 달았다. 그리고 그에게 가장 쉬운 방법이지만,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도록 스스로 삭제하기와 진정성 있는 사과문을 요구했다. 내가 삭제하면 그만일 악플에 왜 이런 결정을 내렸냐고 묻는다면 삭제한들 그들이 나에게 준 비참함과 공포스러움이 사라지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가 내 답글을 읽을지가 몹시 궁금했다.  

한 시간 여가 흐르고 악플은 삭제되었다. 사실 나는 이것만으로도 악플러가 미안함이든 아니면 내 정공법에 대한 두려움이 든 간에 스스로 와서 삭제를 해 주었다는 그의 행동에 저녁 시간 내내 괴로웠던 마음이 홀가분해졌다. 그런데 그 악플러가 정말 사과문을 작성한 것이다. 그의 글을 찬찬히 읽어 보았다. 그리고 나 역시 그가 왜 그렇게 댓글을 달았는지에 대한 이유를 조금 알게 되었고, 또 한편으로는 이해도 되었다. 클릭률을 높이기 위한 어그로성 쓰레기 기삿글이나 게시판 글들로 뒤덮인 포털 사이트에 올라온 나의 글의 주제는 보는 이의 시각에 따라 의도와 달리 논란이 될 수 있다는 점도 수긍됐다.

내 인생 처음 만난 착한 악플러의 악플과 사과문

악플러의 사과문을 다 읽고 나니 든 생각은 악플러 역시 선한 면이 보이는 '착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물론, 말 그대로 사과문이었기에 또는 내 법적인 책임을 묻는 답글에 대한 우려가 고려되었다고 해도 그냥 삭제만 해도 될 사항이었다. 그리고 그의 글 속에서 나는 진심 어린 미안함을 느꼈고 아이와 단 둘이 먼 이국땅에서 잠시나마 느꼈던 두려움에서 해방되었다. 나는 진심으로 악플러의 사과를 받았고 고마웠다. 스릴러 공포물로 시작되었던 나의 드라마는 인간 다움을 느끼게 한 휴먼 드라마로 끝이 난 것이다.


세상을 조금은 겪고 살아온 40대의 아줌마도 악플 한 줄에 이리 큰 고통을 느끼는데 대중의 시선을 한 몸에 받는 이들과 그중 어린 나이에 감당해야 하는 이들이 얼마나 많이 아프고 또 아팠을까? 악플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항상 다른 글에서도 언급했든 나는 소심한 사람이다. 젊은 날의 나는 이 소심함에 어려움을 겪으면 늘 주저앉아 곱씹으며 스스로를 더 힘들게 했던 과거를 갖고 있다. 그 시간 속에 나이를 먹고 차츰 성장하며 담대한 마음을 갖도록 노력했고 세상의 모든 일은 정공법으로 가야 아쉬움이 없다는 결론을 갖게 되었다.

무엇보다 오늘의 드라마가 가슴 뭉클했던 건 브런치에 글을 써 왔지만 나 스스로가 작가라고 생각하거나 그러한 호칭을 받아본 적이 없고 기대 또한 하지 않았다. 그런데 내 인생 첫 번째 악플러의 사과문에 나를 지칭한 호칭이 '작가님'이었다. 나는 오늘 만난 착한 악플러 덕에 적어도 그에겐 '작가'가 되었다. 영광스러운 호칭을 부여해 준 나의 착한 악플러에게 고마움과 늘 좋은 일만 가득하라는 인사를 전한다. 그리고 나는 이번 일을 계기로 나이가 들수록 타인의 생각에 좀 더 유연한 사고를 갖도록 노력하기로 스스로와 약속했다. 마지막으로 브런치에서 혹은 개인 SNS상에 어쩌면 당신도 마주칠 수 있는 악플러를 만났을 때 도움이 될 수 있는 내용을 덧붙인다. 법은 사람을 사람답게 지켜주는 최소한의 가이드라인이다.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70조(벌칙) 사람을 비방할 목적으로 정보통신망을 통하여 공공연하게 사실을 드러내어 다른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개정 2014.5.28>

사람을 비방할 목적으로 정보통신망을 통하여 공공연하게 거짓의 사실을 드러내어 다른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자는 7년 이하의 징역, 10년 이하의 자격정지 또는 5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제1항과 제2항의 죄는 피해자가 구체적으로 밝힌 의사에 반하여 공소를 제기할 수 없다. [전문개정 2008.6.13]


<악플 고소 기준 성립요건>

1. 비방할 목적

실질적인 명예에 해가 되지 않았어도 적용되며 그 수단은 언어,  문서, 동작, 특정 행위 등 모두 포함된다.

2. 특정 피해자

형사사건 처리 과정에서 모욕을 한 가해자와 피해자의 명확한 존재 유무, 실명을 거론하지 않거나 특정 인물을 지목하지 않더라도 제삼자가 보았을 때 누군가로 특정이 될 수 있는 경우 , 당사자가 없는 자리에서의 侮辱 또한 혐의를 받을 수 있다.


3. 공연성

불특정 또는 다수에게 알려지는 것으로 단톡 방과 게시판 모두 해당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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