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iko Jan 06. 2020

고양이 '스키피'가 머물던 그곳

랑카위의 특별한 레스토랑

온전히 게으른 시간을 보냈던 랑카위를 떠나기 전 날 리조트 생활을 벗어나 조금 특별한 곳에 다녀왔다.  나는 27개월 된 아이의 엄마이자 13살 된 노견의 엄마이기도 하다. 반려동물과 살다 보니 강아지뿐만 아니라 길거리 고양이들도 허투루 보이지 않게 되었다. 마치 아이를 낳아보니 남의 아이도 다 이뻐 보이는 것처럼 말이다. 이런 나의 성향을 고스란히 닮은 아들은 태어날 때부터 노견과 함께 자라 서울에선 매일 아침 눈을 뜨면 내뱉는 첫마디가 노견의 이름이고 기저귀를 찬 채 뒤뚱거리며 노견의 밥그릇 앞에서 어서 먹으라 참견을 한다. 쿠알라룸푸르에서도 숙소 앞 화단에서 살고 있는 길냥이에게 매일 인사를 건네고 밥을 먹으라 한다. 아들이 27개월 간 배운 세상에선 잘 자고, 밥을 챙겨주는 것이 애정의 최대치 표현인가 보다.

아들이 매일 저녁 잘자라 인사를 건네는 길냥이

지난달, 아들과 둘이서 페낭 여행을 떠났을 때, 조지타운 벽화 거리에서 아들이 가장 좋아했던 벽화가 'Skippy' 혹은 'Giant Cat Mural, '로 불리는 고양이 그림이다. 벽화의 주인공 고양이가 실제 살았던 리조트가 랑카위에 있다는 이야기를 알게 되었다. 학대를 받아 앞다리가 불편했던 고양이 '스키피'의 아픈 다리를 고쳐주고 거두어 준 곳이 바로 랑카위의 '본톤 리조트(Bonton Restaurant and Resort)이다. 세월이 흘러 '스키피'는 그곳에 없지만, 랑카위  여행을 온 길에 페낭 벽화 속 주인공 '스키피'가 살았던 곳으로 향했다.

"Skippy Comes to Penang"

'본톤 리조트'의 주인장 'Narelle McMurtie'씨는 호주 출신으로 Langkawi 동물 보호단체 'LASSie'와 랑카위 유기동물 보호소(Langkawi Animal Shelter & Sanctuary )의 설립자이다. 랑카위는 말레이시아에서도 강성 무슬림 지역이다. 개를 불경한 동물로 여기는 무슬림이 80%에 육박하는 랑카위에서 이곳은 버림받고 다친 개와 고양이들을 보호해주는 셸터 역할을 하고 리조트와 레스토랑을 운영해 그 수익금으로 운영된다고 한다.


'본톤 리조트'는 우리네 정서에선 어쩌면 불편할 수도 있는 곳이다. 먼저 해변과 가까운 거리도 아니고 말레이시안 전통 우든 가옥으로 주변엔 정글과 나무밖에 없는 숲 속에 있다. 이곳에 찾아오는 이들은 사각거리는 호텔 침구의 쾌적함과 안락함 대신 발을 디디면 삐걱거리는 숲 속 나무집에서 각 빌라별로 거주하고 있는 고양이의 집사를 자청하고 리조트 앞 유기견과 산책 봉사활동을 하는 색다른 휴가를 선택한 이들이다. 그런데도 이곳 8동의 빌라엔 유럽과 캐나다에서 온 가족단위의 투숙객들로 빈 곳이 없었다. 남편과 나는 투숙객들이 선택한 휴가는 어떤 가치 일지, 전통 가옥의 체험은 어떤 느낌일지에 대화를 주고받으며 리조트를 지나 레스토랑으로 향하였다.

'본톤 리조트(Bonton Restaurant and Resort)

본톤 리조트에서 운영하는 '남 레스토랑(Nam Restaurant)'에선 중국과 말레이의 혼합문화 '페라나칸(Peranakan)'의 논 야음식(Nyon-ya Food)을 맛볼 수 있는 논야 플래터와 락사를 주문했다. 쿠알라룸푸르에서 지내며 말레이 전통 음식이 나에겐 간이 쎄 입맛에 썩 맞진 않았는데 이곳의 음식들은 상대적으로 담백해서 맛있게 먹었다.

논야 플래터와 락사

나른한 음악과 함께 바나나 잎사귀에 플레이팅 된 음식이 나오고 모히토 한 잔에 느긋한 레스토랑의 분위기가 평화롭게 느껴졌다. 레스토랑 곳곳에 고양이들이 조용히 지나다녔고, 우리 테이블 앞엔 나이가 꽤 들어 보이는 하얀 고양이가 물그릇 앞에서 졸고 있었다. 아들은 요즘 유치원에서 배운 노래를 때와 장소를 안 가리고 불러대는 통에 입막음용 곰돌이 젤리를 늘 가방에 들고 다녀야 하는데 고양이가 잠든 걸 보더니 자발적으로 나와 남편에게 쉿! 조용히 하란다.

태어나서부터 늘 곁에 다리가 불편한 노견과 지내온 아들은 이곳 보호소에 나이 들어 털이 빠지고 다쳐 조금 흉한 모습의 고양이에게도 빙긋이 웃으며 맘마를 먹었냐고 물어본다. 한쪽 눈이 없는 고양이를 보고 놀라지 않고 고양이에게 "야옹이야. 아야야 호~ "하고 불어주는 아들의 모습을 보니 조금 다른 모습도, 그래서 어쩌면 어른들은 외면했을지 모를 그 모습 그대로 예쁘게 보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아들이 공부를 잘할지, 어떤 재능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동물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으로 자랄 것 같아 다행이다. 아이와 긴 여행을 하며 일상에선 놓치고 지나쳤을 순간을 함께 하고 있다는 게 감사하다.

이전 22화 랑카위 해변에서 만난 등번호 7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