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레이시아 한 달 살기 중 추천 여행지
말레이시아는 다양한 인접 국가로의 이동이 가깝고 편리한 동남아시아 교통의 허브이다 보니 '한 달 살기'를 하는 많은 가족들이 주말을 이용해 주변국으로의 여행을 떠난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여행지가 ‘조호르바루 (Johore Bahru)와 붙어있는 도시 국가 ‘싱가포르(Singapore)’이다. 쿠알라룸푸르에선 항공으로 한 시간, 조호르바루에선 차량으로 한 시간이면 도착한다. 쿠알라룸푸르에서도 심야 버스가 잘 되어있고, 짐 없는 여행객과 초등학생 자녀가 있는 경우 조호르바루에선 기차로 국경을 넘어 싱가포르에 가는 방법이 가장 빠르고 저렴하다. 우리가 조호르바루에 머물던 당시엔 아이의 나이가 갓 두 돌이 된 시점이라 유모차와 아이 짐이 너무 많고, 출입국 심사 때의 번거로움을 피하고자 한국에서 샌딩 서비스를 신청하였고, 왕복 7만 원부터 다 인승 고급 차량의 경우 15만 원까지 가격의 폭이 넓어 주로 노약자와 영, 유아를 동반하거나 두 가족 이상의 여행객들이 선호하는 방법이다. 샌딩 서비스는 차량에 탑승한 채 출입국 심사를 받으며, 싱가포르 내 원하는 목적지까지 태워주고 조호르바루로 돌아올 때 역시 원하는 시간과 장소에서 픽업이 가능하다.
업무 상 출장과 싱가포리언 친구가 있어 꽤 여러 차례 방문했던 나와 달리 남편은 싱가포르가 첫 방문이었기에 당일치기 여행의 일정에 고심을 많이 하였다. 아이가 6세 이상 초등학생 연령의 부모들은 명불허전 ‘유니버셜 스튜디오(Universal Studios Singapor)’, ‘워터파크(Adventure Cove Waterpark)’, 그리고 눈썰매와 범퍼카의 재미를 동시에 느끼게 해 주는 ‘루지(Skyline Luge) 등 아이들이 좋아하는 액티비티가 가득한 ‘센토사 섬(Sentosa island)’을 여행 일정에서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우리 가족이 싱가포르를 방문했던 시기에는 액티비티를 즐기기엔 아이의 나이도 어렸지만, 인도네시아에서 날아오는 매캐한 연무, 헤이즈(Haze)가 말레이시아 반도 전체를 뒤덮어 창문을 열고 지내기 어려울 만큼 공기가 탁했고, 야외 활동을 하기엔 날씨는 매우 더웠다.
하여, 싱가포르가 처음인 남편에게 짧은 시간 동안 말레이시아와 더불어 다민족 국가인 싱가포르의 다양성을 보여주기 위해 이국적인 벽화가 가득한 ‘하지레인(Haji Lane)에서 싱가포르 여행을 시작하였다. 평일 이른 아침에 출발해 조호르바루에서 국경을 넘어 모닝커피를 마시기 위해 도착한 ‘응 커피’라 불리는 ‘% ARABICA CAFE’까지 한 시간이 채 안 걸렸다. 출입국 심사 시, 차에서 내리진 않아도 여권과 탑승객의 얼굴을 일일이 대조하며 꼼꼼히 확인했다.
아시아의 ‘블루보틀’이란 찬사와 일본 교토의 '인생 라테'로 불리는 ‘응 커피’는 다행히 평일이라 줄 서지 않고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아랍 스트리트(Arab Street) 코너에 자리 잡은 카페의 내부가 워낙 작기도 하고, 관광객들과 싱가포리언들 모두에게 인기 장소라 주말엔 늘 줄을 선다고 한다. 고소한 ‘카페라테’ 아이스로 잠을 깨우고 더위가 덜 한 오전 시간이라 벽화들이 가득해 포토제닉 한 하지레인의 골목과 이슬람 모스크(Masjid Sultan)에 방문하고 새우 국수를 먹으려 하였으나 아쉽게 국숫집은 쉬는 날이라 원단 시장이 즐비한 ‘리틀 인디아(little india)’를 마저 둘러보고 점심은 쇼핑몰에서 ‘바쿠테(bakuteh)'를 먹기로 했다. 이동은 이곳에서도 ‘그랩(Grab)을 이용했다. 머라이언상과 더불어 싱가포르를 대표하는 랜드마크 '마리나 베이 샌즈 호텔’로 이동해 호텔과 연결된 ‘마리나 베이 샌즈 몰(marina bay sands mall)'로 향했다. 정오가 다가오니 동남아시아의 특유의 찌는 듯한 더위가 시작되어 시원한 에어컨 바람이 간절했다.
보약 같은 ‘바쿠테(bakuteh)'
쿠알라룸푸르에서 지내며 실내 에어컨으로 인한 냉방병에 걸렸을 때, 말레이시안 친구 제이미가 중국식 닭죽 ‘치킨 콘지’와 ‘바쿠테’를 권했었다. 바쿠테는 한자어 ‘肉骨茶’에서도 볼 수 있듯 돼지갈비를 우리네 갈비탕처럼 푹 고아 만든 음식으로, 마늘, 허브, 향신료 등을 함께 넣고 끓여 한약재 향이 난다. 대표적인 말레이반도에 거주하는 화교들의 음식으로 싱가포르뿐만 아니라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 이슬람이 국민의 절대 다수인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에서도 중국계 식당에선 쉽게 접할 수 있다.
바쿠테는 맨밥에도 향신료와 간이 들어가는 동남아 음식 중, 한식을 제외하고 아이에게 마음 놓고 먹일 수 있던 음식이었다. 물론, 매콤하고 짭짤해 우리네 불족발 같은 스타일의 ‘드라이 바쿠테’가 아닌 국물 바쿠테의 경우에 한해서이다. 말레이시아와 싱가포르에서 맛본 바쿠테의 차이점은 없다고 볼 수 있다. 우리나라도 토속촌과 호수 삼계탕의 맛이 다르듯 가게마다의 레시피의 차이는 있지만 기본 재료와 스타일은 같고, 차이점을 꼽으라면 가격이다. 싱가포르는 국토의 규모가 서울 면적과 비슷한 작은 도시 국가이지만, 싱가포르의 1인당 국민소득은 ’GDP per capita (출처: IMF)’6만 불을 상회하는 선진국으로 대한민국의 곱절이다. 동남아시아 기준으로 자원이 많은 말레이시아는 싱가포르에 이어 두 번째로 소득이 높은 국가지만 1만 불을 갓 넘긴 수준이니 물가가 인접한 싱가포르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아 같은 메뉴의 음식도 말레이시아가 훨씬 저렴하다. 싱가포르의 대중적인 체인 식당 ‘송파 바쿠테’의 2019년 기준 대표 메뉴의 가격은 S$ 9로 한국 돈 7천 원 정도이다. 여기에 5% SVC와 7% GST, 총 12%의 세금이 추가된다. 갈비탕을 주문하면 공깃밥이 당연히 따라오는 한국과 달리 공깃밥과 물은 모두 별도 주문이다. 해외에 나가보면 우리나라 식당의 인심이 넉넉하다는 걸 실감한다. 그러니 아이와 함께 식당을 찾았다고 따로 ‘아이 먹일 거’라는 등의 메뉴에도 없는 계란 프라이 같은 무리한 부탁을 하는 엄마는 더는 없길 바란다. 이유식을 뗀 이후 다녔던 하와이를 비롯한 여행지에서 아이와 외출 시, 만일을 대비해 항상 작은 용량의 김을 들고 다녔다. 식당에서 매너를 지키는 모습도 아이에게 교육이기 때문이다.
식사를 마치고 SNS에 인생 샷 명소로 알려진 '아트사이언스 뮤지엄(ArtScience Museum)'을 찾았다. 우리 아이는 정작 뮤지엄에서 본 인터랙티브 전시보다 쇼핑몰 지하 식당가에 위치한 입장료 S$ 5를 내면 또래 친구들과 신나게 뛰어놀 수 있는 '디지털 라이트 캔버스(Digital Light Canvas)를 더 좋아했다. 아무래도 전시장에선 뛰는걸 못 하게 하니 아이는 제한 없이 놀 수 있던 곳이 더 좋았던 것 같다. 싱가포르 역시 더운 날씨로 인해 쇼핑몰 문화가 발달되어 있다. 곳곳에 쇼핑과 함께 아이와 체험할 수 있는 공간도 많고, 식당들도 다양하게 입점되어 있어 어린아이와 여행 시, 기저귀도 갈아야 하고, 더위에 지치지 않게 동선을 줄여야 하는 입장에선 쇼핑몰에서 한 끼 정도 해결하는 것도 괜찮다.
명품들이 즐비한 상점 구경 후, 배를 타고 쇼핑몰 수로를 따라 한 바퀴 둘러보는 '보트 체험(Sampan Rides)'을 하였다. 가벼운 놀이 기구를 타는 정도지만, 아이가 굉장히 좋아했다. 딱 미취학 아동들이 좋아할 체험이었다. 전시도 보고 쇼핑도 조금 하고 나니 다시 허기가 몰려와 싱가포르에 와서 안 먹고 가면 서운한 ‘야쿤 카야 토스트(Yakun Kaya Toast)’를 찾았다.
고소하면서 달콤한 카야잼을 뜨거운 토스트에 버터와 같이 발라 따끈한 커피와 먹으니 여행의 피곤이 잠시 가시는 듯했다. 예전, 도미노 피자가 한국에 들여와 강남역 1호점이 운영되었을 당시엔, 한 번씩 들리던 곳인데 지금은 국내에선 철수했다. 싱가포르를 대표하는 TWG매장에 가니 싱가포르 마리나 베이 샌즈 점에서만 단독으로 판매하는 홍차가 있었다. 맛과 향은 기존 제품들과 큰 차이는 없고 TWG가 한국 안다즈 호텔에 들어왔지만, Exclusive 상품이라는 말에 여행 기념품으로 구매했다.
8시에 있을 슈퍼트리(Supertree)'를 쇼를 기다리며 쇼핑몰에서 슬슬 걸어 ‘가든스 바이 더 베이(Gardens by the bay)’에 도착했다. 흡사 식물원과 같은 장소에 거대한 인조 폭포로 유명한 ‘포레스트 돔(forest dome)과 아름다운 꽃이 가득한 ‘플라워 돔(flower dome)’을 차례로 보고 하이라이트인 음악에 맞춰 라이트 쇼(Garden Rhapsody)를 선보이는 거대한 인조 나무 '슈퍼트리(Supertree)'를 관람했다. 인공미가 넘치는 곳이지만, 인공으로 만든 골조 속을 가득 채운 식물들이 조화로워 여행자가 한 번쯤 들르기에 충분했다. 관람을 마치고 픽업 차량과 만나기 위해 호텔 로비로 돌아오는 길에 아이는 유모차에서 잠이 들었다. 조호르바루에 도착하니 밤 11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그렇게 우리 가족은 아이와 짧지만 알찼던 싱가포르 당일 치기 여행을 마쳤다.
사실, 아이가 없고 결혼을 하지 않았던 싱글 시절에 꽤 자주 찾았던 싱가포르는 나에겐 지루한 도시였다. 도심의 모습은 좀 더 깨끗할 뿐 서울과 비슷한 모습이었고, 중심가엔 한국은행들도 즐비해 테헤란로와 구분이 안 갈 정도로 매력적이지 않았다. 그런데 아이와 같이 온 이곳은 더없이 좋은 여행지였다. 유흥문화가 발달하지 않아 답답하게 느껴졌던 밤거리는 어디를 가든 안전했고, 아직 기저귀를 떼지 못한 아이와 들른 공공 화장실은 청결했다. 특별한 관광자원이 없다고 생각했던 이 도시에 국가가 주도하고 계획한 센토사 섬의 다양한 액티비티와 ‘가든스 바이 더 베이(Gardens by the bay)’는 이 도시를 꼭 한 번쯤은 가보고 싶게 만든 특별함이 있었다. 사회 초년생 시절,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적적해하는 엄마를 위해 처음으로 모녀가 함께 떠났던 싱가포르 여행에서 우연히 만난 싱가포리언 친구는 K팝 1세대 그룹 ‘신화’의 열성 팬에서 지금은 아들 교육에 매서운 ‘타이거 맘’이 되었다. 한국엔 대치동이 있다면 싱가포르는 전 지역이 대치동이라고 할 만큼 치열한 교육열로 성장을 이뤄낸 강대국이다. 세계 대학 평가에서 (출처: QS 세계 대학 평가 리포트) 싱가포르 국립대학교인 NUS, NUT가 나란히 지난해에 이어 2020년 발표 자료에도 부동의 아시아 1위, 전 세계 랭킹 11,12위를 점하고 있으니 싱가포르가 얼마나 교육 수준이 높고 교육열이 강한 나라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이 작은 국가의 저력은 영어 외 중국어와 말레이어, 타밀어 등 3개 국어 이상의 언어 습득 능력과 다민족 국가답게 문화의 다양성을 교육에서 녹이고 있으며, 무엇보다 공교육의 질은 세계 최고 수준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장점 덕에 싱가포르 한 달 살기가 한 때 이슈가 되었으나, 싱가포르 국민의 다수가 거주하는 우리 내 주공 아파트 개념의 HBD에서의 에어비앤비는 불법이라 대부분의 한 달 살기 엄마들은 고가의 외국인들이 주로 거주하는 콘도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데 주거비와 더불어 기본적으로 높은 생활 물가 등의 이유로 유사한 영어 생활권의 다문화 환경, 그리고 상대적으로 저렴한 물가의 이웃 나라 말레이시아가 ‘아이와 한 달 살기 도시’로 대두된 것이다.
한국에서 싱가포르나 인도네시아까지 비행시간만 6시간이 넘는 꽤 긴 노선이다. 별도로 떠나기엔 꽤 높은 예산을 세워야 하는 여행지이다. LCC 저가 항공이 발달한 말레이시아에 머물며 주말을 이용해 한, 두 시간이면 도착하는 인접 국가로의 여행 경험은 아이에게도 다른 듯 닮은 국가 별 차이점을 찾고, 추억도 나누는 유익한 시간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