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잠 대신, 낙서처럼 자유로운 색을 보다
4주 동안 힘들게 노동을 한 후, 주말 아침, 따뜻한 햇볕에 이불을 덮고 누워 있으면 아주 쉽게 잠으로 흘러가 버릴 수 있다. 그럴 땐 늘 고민한다. 그냥 이대로 눈을 감고 낮잠으로 흘러가도 좋겠지만, 조금만 움직이면 ‘의미 있는 시간’을 만들어볼 수도 있지 않을까?
사실은 딸내미가 집에 친구들을 불러서 생일파티를 한다고 집을 비워달랜다. 좋은 시간 보내겠다는데… 순순히 나가줘야지.
결국 이불을 걷어내고, 아내가 구한 전시회 표가 있어서, 그걸 보기로 했다. 캐더린 번하트 Katherine Bernhardt. 이름도 익숙하지 않았고, 어떤 작품을 하는지도 잘 몰랐지만, 그저 시간 때우기 위해 전시장으로 향했다.
그리고 전시장에 들어서는 순간, 나는 마치 거대한 색연필 상자 속으로 들어온 느낌을 받았다. 핑크팬더가 샤워를 하고, 엘모는 덧칠된 입으로 활짝 웃고 있었다.
쿠키몬스터는 쿠키를 움켜쥔 채 푸른 물감을 흠뻑 뒤집어쓴 것 같았고, 피카츄는 어딘가 어설프게, 그러면서도 완벽하게 재해석된 모습으로 캔버스를 채우고 있었다.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건 그림들의 형태였다.
“아이가 장난친 것 같은 형태의 그림체가 흥미롭고 재미있었다.” 이걸 왜 그렸지? 처음엔 그렇게 느꼈다. 하지만 볼수록 그 낙서 같은 선 안에 있는 에너지와 자유로움이 내 안의 ‘이성적인 눈’을 조금씩 흔들었다.
정교함도, 메시지도, 심지어 완성도조차 중요하지 않아 보였다. 오히려 중요한 건 그 ‘그리는 행위 자체’에서 오는 해방감이었다.
누군가는 무심코 그려낸 듯한 선과 색을 보며 ‘유치하다’고 말할지도 모르지만, 나는 그 낙서 같은 그림들 속에서 묘한 해방감을 느꼈다. 마치 내가 잊고 살았던 어린 시절의 ‘아무렇게나’의 기쁨, 혹은 그리기라는 순수한 행위의 본질 말이다. 예술가 코스프레 없이 예술을 해냈다고나 할까? 의도된 유치함을 전략적으로 그렸다는 말이 어울릴까?
이 여유로운 휴일에 낮잠 대신 찾은 전시가
나에게는 훨씬 더 ‘의미 있는 휴식’이 되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