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뎌지고 있는 줄 알았는데 무너지고 있는 거였을 때
요즘 최대 고민이 '50대를 어떻게 살 것인가'인 내가 늘어놓는 불만과 번뇌에 찬, 동시에 의욕에 충만한 말들을 묵묵히 들어주던 그가 말했다.
"지금 50대를 어떻게 살지 고민하는 너는 좀 지나면 60대를 어떻게 살아야 하지? 그럴 거 같아."
조금 내려놓아도 되지 않느냐고,
삶이라는 게 꼭 드러나는 어떤 성취가 있어야만 하는 건 아니지 않느냐고.
"좀 못하면 어때? 좀 못 이루면 어때? 이미 충분하잖아."
비난하는 게 아니고 달래는 말투다. 내가 좋아하는, 울림이 좋은 그의 목소리.
대체로 나는 늘 전력질주하니까. 달릴지 말지 고민할 때는 있지만, 일단 달리기 시작하면 전력질주. 생각해보니 평생 그렇게 살아왔다. 그리고 그것은 또한 대체로, 입밖에 내어 말하지는 못해도, 나의 알량한 자랑이곤 했다.
열심히 사는 사람, 뭐든 잘하는 사람, 이루고 마는 사람. 그런 것들. 그런 이미지들.
... 사실은 불안해서 그래.
입밖에 내서 말하진 못했다. 사실 불안해서 그래. 그렇게 말하면 그가 물어올 게 뻔했기 때문이다. 뭐가 불안한데? 도대체 뭐가?
그의 단순한 질문 앞에서 나는 대답할 말이 없다.
50대도, 60대도, 그 이후의 삶도 전력질주하는 것 말고는 다른 삶의 방식을 모르겠다고, 말해도 될까.
무뎌지고 있는 줄 알았는데 무너지고 있는 거였을 때,
무뎌지고 있는 줄 알았는데 무너지고 있는 거였을 때.
어디선가 본 이 말이 가슴에 오랫동안 박혔더랬다.
날카롭게 벼렸던 날이 가라앉고, 세웠던 경계가 희미해지고, 경멸하는 사람 앞에서도 웃을 수 있게 되는 거, 나이들면 당연하게 찾아오는 거 아닌가, 세월의 축복 아닌가, 게다가 나처럼 포커페이스가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그런 종류의 사람에게는, 무뎌짐은 성장과 내공의 증거라고 느껴지기까지 했었다. 일종의 '사회화'였을 수도 있고. 수많은 자극에 하나하나 반응하는 게 너무 괴로웠던 그때마다 나는 간절히 둔해지고 싶었으니까.
그러다 어느날 (아마도 SNS에서) 저 문장을, 아니, 완전한 문장도 아닌 저 구문을 읽어버린 것이다.
앞뒤 맥락도 다 잘린 채, 딱 저 부분만 눈에 들어왔다.
나는, 무너지고 있는 걸까? 내가 지켜야 하는 진짜 나는 무뎌짐의 가면 뒤에서 무너지고 있는 걸까.
그 생각은 묘하게 슬펐다. 막 애끓게 슬펐다기보다는, 슬픔 비슷한, 슬픔을 닮은 그런 감정이었다.
한편 생각해보면, 바쁠 때 무뎌지는 것도 같다. 집중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가만히 지켜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제대로 반응할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꼭 몸이 바쁘지 않아도 생각이 바쁠 때. 생각은 언제나 정신없이 내 머릿속을 질주하니까. 우리에겐 쉬지 않고 지껄이는 내면의 목소리들이 있다. (그 목소리들은 내가 아니다. '나'는 그 목소리들을 '지켜보는 자'이다. 가만히 그 내면의 목소리들이 흘러가도록 지켜보는 것, 그것이 명상이다.)
나는 지금,
생각이 너무 바빠서, 마음에게 곁을 내어주지 않아서,
그래서 불안한 걸까?
무너짐을 무뎌지고 있는 거라고 착각하면서 말이다.
사랑하는 자는 무릎을 꿇는 자가 아니라 무릎이 꺾이는 자,
오랜만에 음악을 틀고 오래된 노트를 펼쳤다.
사랑하는 자는 무릎을 꿇는 자가 아니라 무릎이 꺾이는 자다.
이 또한 어디에서 본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오래전 나는 적어두었다. 무릎을 꿇는 것은 의지로 할 수 있지만 무릎이 꺾이는 것은 불가항력의 일이므로, 인생과 사랑 앞에서 우리는 겸허해야 한다,라고. 굳게 결심을 하면 무릎을 꿇지 않고 살 수도 있겠지만, 그렇더라도 우리의 무릎은 불시에 꺾일 수 있는 것이다. 그저 모퉁이를 돌다가, 그저 작은 돌부리에 걸려서, 그저 주변의 풍경을 바라보다가, 그저 시원한 바람을 음미하다가, 그저 어떻게라도.
잘 되고 있진 않지만, 항상 너무너무 어렵지만, 인생이 내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받아들이려고 노력하고 있다. 사실, 올해 여러 변수가 너무 많을 것 같다. 살다보면 별일 없이 무난하게 흘러가는 때도 있고, 중요한 결정들이 한꺼번에 이루어지는 때도 있는데, 올해는 좀 복잡하다. 상황이 어떻게 흘러가느냐에 따라 매우 다른 선택지가 생길것 같고,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이후 내 삶이 크게 달라질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한껏 분주했다. 몸보다도 마음이 분주했다. 아직 상황은 펼쳐지지도 않았는데. 머릿속에서 수도 없이 시뮬레이션을 돌리면서, 이러면 어떡하지, 저러면 어떡하지 하면서. 아마도 나는 불시에 -대비할 수 없게- 무릎이 꺾이는 일을 당할까 두려웠는지도.
그렇지만, 오래된 노트에 적혀있듯, 진정으로 사랑하는 자는 무릎을 꿇는 자가 아니라 무릎이 꺾이는 자. 인생을, 사랑을 대비할 수는 없다. 우리는 그저 걸어가는 것밖에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그러니 즐기며 걸어갈 수 있으면 더욱 좋겠지. 모퉁이를 돌면 무엇이 나타날까, 불안해 말고 기대하면서.
그렇게 올 한해도 담담히 걸어갈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