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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유 Aug 01. 2020

일상에 지친 너의 깊은 잠을 응원할게.

전화가 걸려왔다. 오랜만에 액정에 그의 이름이 떴다. 그를 누구라 해야 할지, 우리를 무엇이라 불러야 할지, 나는 모른다. 그는 그일 뿐이고, 우리는 우리일 뿐이다. 우리가 만난 처음부터 지금까지, 그가 그가 아닌 적도 없었고, 우리가 우리가 아닌 적도 없었다. 


“그냥 해봤어.”


마지막으로 얼굴을 본 게 언젠지도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그는 마치 우리가 매일 아침 얼굴을 마주 보고 일어나는 사람인 것처럼 산뜻하게 말한다. 그래서 나도 묻는다. 어색하지 않게,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들리도록. 


“이쪽으로 올래?”     


이미 어두웠다. 아파트 계단을 뛰어 내려가니 모자를 눌러쓴 그가 입구 쪽에 등을 향한 채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가로등 불빛 틈으로 먼지처럼 흩날리는 비가 보였다. 우산을 펼쳐들고 그에게 다가갔다. 


“내가 들게.”


키가 큰 그가 우산을 받아들었다. 


“밥은 먹었어?”

“아니.”

“뭐 먹을래?”

“응. 근데 나 좀 체한 것 같아.”


얼굴색이 안 좋아 보이긴 했다. 종일 햄버거 하나로 때웠다고 했다. 제발 제대로 밥 챙겨먹어. 인스턴트, 패스트푸드 그런 거 좀 그만 먹고. 운동도 꾸준히 열심히 좀 하고. 쏟아지는 내 잔소리에 그가 나를 본다. 왜? 내 잔소리가 너무 심해? 머쓱한 내 질문에 그가 씩 웃었다. 아니. 좋아. 챙겨주는 거 같아서. 그렇게 챙겨주는 사람, 없으니까. 쐐기를 박듯, 그가 말했다. 

그렇게 챙겨주는 사람, 나에겐 없으니까.      


손이라도 따줄까 싶어 집에 데리고 들어왔다. 막상 손을 따주려고 했더니 싫단다. 피나는 거 싫어, 무서워. 아이처럼 고개를 가로젓더니 침대에 벌렁 드러눕는다. 

그래, 그럼 잠깐 누워서 쉬어. 내 말을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그는 순식간에 잠들어버렸다. 조금이라도 편하게 잤으면 해서 불을 껐다. 체한 건 사실이었는지, 그는 자는 내내 식은땀을 뻘뻘 흘렸다. 그가 자는 이 잠은 아주 오랜만의 단잠인지도 몰라. 이유는 알 수 없지만 확신처럼 그런 느낌이 들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그의 잠을 보호해 주고 싶었다.   

   

내 바람대로 그는 아주 달게 잤다. 두 시간여 동안 불도 켜지 않고, TV도 틀지 않고 나는 그의 옆에 앉아 있었다.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렸지만 이내 그만두었다. 어두운 방 안, 스마트폰 액정의 푸르스름한 빛이 그의 잠을 방해하길 원치 않았다. 

가만히 그의 자는 얼굴을 들여다보며 생각했다. 지금이 너에게 오랜만에 주어진 짧은 휴식이라면, 나는 너의 그것을 지켜주고 싶다고. 바쁘고 지친 일상 속에서 네가 취하는 깊고 편안한 잠을. 

그의 잠을 지켜보면서, 나는 그런 생각을 했다.      


사실 나는 화가 나 있었다. 

유치해서, 자존심이 상해서, 스스로는 그렇게 믿고 싶지 않았다. 그러니 그가 장난스러운 표정을 들이밀며 ‘에이~ 삐쳤구나?’라고 말한다면, 나는 허를 찔린 기분이 되어 정말로 화를 내버리지 않기 위해 아닌 척 애써 노력했을 것이다. 

그러나 사실 나는 그에게 화가 나 있었다. 그것은 내가 아무리 ‘아니야, 난 괜찮아’라고 믿고 싶어한다 한들, 빼도 박도 못할 진실이었다. 그의 일방적인 연락/연락 없음에 대하여, 우리 사이의 목표 없음에 대하여, 그 모호함이 필연적으로 유발하는 무력감에 대하여, 그리하여 결국 ‘우리 관계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내가 아무 답도 가질 수 없음에 대하여. 


더 나를 화나게 했던 사실은, 우리 사이가 ‘우정’, ‘사랑’, ‘연애’, ‘그렇고 그런 사이’…… 그 어떤 이름도 갖지 못한 이유가 바로 나였다는 점.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내가 너에게 그런 관계를 제안했다는 사실. 그래서 너와 내가 지금 서 있는 이 자리, 서로에게 이도 저도 아닌 사람이 되어버린 이곳이 몹시도 서운했다고.      

그런데 잠든 네 옆에서 나는 알 것도 같았다. 언젠가 네가 독백 같은 나의 불평을 듣고 나서 깜짝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서 했던 말의 의미를. 


“우리? 우린, 오래갈 사이잖아.”


오래갈 사이라니. 그런 이름이 어디 있냐고 그때의 나는 코웃음을 쳤지만, 이제 나는, 짧고 깊은 너의 잠을 지켜보았던 사람. 그래서 나는, 바로 그 순간 네가 필요로 하는 딱 그만큼의 쉼을 지지해 주고픈 사이로서, 우리 관계의 이름은 충분할 것 같았다.      

우리 사이가 너의 말대로 정말 오래갈 수 있을지 나는 알지 못한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만큼은 우리의 의지와 무관하게 흘러간다는 것, 관계의 시작과 끝은 유한한 인간의 영역이 아니라는 것쯤은 알 정도로 나는 나이를 먹었다. 

그러나 잠든 너의 옆, 침대맡에 기대 앉아, 너의 이마 위, 땀에 젖은 머리카락을 조심스럽게 쓸어 올려주면서 나는, 어쩌면 우리 사이를 ‘오래갈 사이’라 명명해도 괜찮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우리 관계의 이름은 우리의 것이고, 그 명명의 의미와 이유를 우리가 이해한다면, 우리만 공감할 수 있다면, 아무려면 어때, 하고. 매번 내가 너를 볼 때마다, 어쩌면 지금이 너를 보는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불안을 품었다는 사실이, 그 이름을 붙일 수 없는 이유가 되지는 못할 거라고.      

왜냐하면, 나는, 너의 깊은 잠을 ‘실제로’ 지켜보았으므로. 너는 아주 ‘구체적으로’ 내 옆에서 쉬었으므로. 너의 잠을 보는 내가 진심이라는 것을 알았으므로. 그 순간의 진실, 어쩌면 그것이 전부라는 것을, 우리 사이에 더 필요한 것은 아무것도 없음을 느꼈으므로.      

그 순간 이후, 나는 조금 다르게 잘 수 있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 이 글은 저의 네번째 책 <저지르고 후회해도 결국엔 다 괜찮은 일들>(예담(위즈덤하우스), 2014)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오래된 글들을 다시 꺼내오는 요즘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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