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인오스틴 소설 <에마>의 매력은 여러가지다. 그 중에서 수다스런 베이츠 부인이 돼지고기와 사과에 대해 장황하게 말하는 장면은 매우 인상적이다. 도대체 사과를 두번 구워야 할까? 아니면 세번 구워야 할까? 그녀의 삶에서 이런 고민은 매우 중요한 것으로 소설 속에 그려진다. 혹자는 이런 논쟁이 그리 중요한 것인가 코웃음치면서 무시하겠지만, 소소한 일상을 재미있게 그린 소설을 좋아하는 이에겐 그 자체로 매력적인 장면이 아닐 수 없다. 나 또한 후자에 속한다. 이 논쟁만으로 그녀와 하루종일 수다를 떨 수 있을 것이다.
베이츠 부인은 <오만과 편견>의 베넷 부인, <이성과 감성>의 제닝스 부인처럼 수다스럽고 엉뚱하고 쾌활하다. 이런 인물들은 다소 수다스럽고 산만해서 제인오스틴 소설 주인공과는 대비되지만, 일상의 사소한 것들을 주제로 장황하게 때로는 익살스럽고도 세밀하게 이야기한다는 점에서 소설을 매우 풍부하고 재미있고 입체적으로 만들어주기도 한다. 사두마차를 모는 재력있는 젊은이가 이웃에 이사온다는 사실에 호들갑을 떨며 어떻게든 자신의 딸들과 엮어보려고 하는 베넷부인과, 자신의 두 딸은 좋은 곳으로 시집을 간터라 삶의 유일한 낙이 세상에 남은 사람들을 결혼시키는 일이라고 하는 부유한 미망인인 제닝스 부인(제닝스 부인의 이런 면모는 <엠마>의 엠마 우드하우스(젊은 남녀를 짝지워주는 일에 흥미를 느끼는 여주인공)라는 주인공과 비슷해 보임)의 수다를 듣다 보면 우리 주변에서 이런 사람들을 한번쯤은 봤을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분명 제인 오스틴이 베이츠 부인의 사과 일화를 소설 속에 상당한 부분을 할애하여 묘사하고 있는 것은 이유가 있다. 그녀가 어떤 성향의 인물인지 알 수 있고 더 나아가 우드하우스 씨(생과일은 건강에 나쁘니 과일은 익혀먹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건강에 대한 관심이 매우 큰 인물)와 나이틀리 씨(이웃에게 아낌없이 사과를 나눠 줌)가 어떤 인물인지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다. 이는 결국 에마가 어떤 집에서 자랐으며 그녀의 친한 이웃인 나이틀리 씨와 어떤 관계를 형성해 나갈지 글의 복선으로 기능하게 된다. 사과를 세번 구워 먹으라고 한 우드하우스 씨의 조언을 지키지 못해서 미안해 하는 베이츠 부인이 자신이 두 번 구웠다는 것을 비밀로 해달라고 부탁하는 장면은 웃음이 나온다. 두 번 구우나, 세 번 구우나 그게 중요할까? 이런 생각마저 든다.
하지만 그런 애(제인)도 정오만 되면 배가 고파지는데 구운 사과만큼 그 애가 좋아하는 것도 없거든요. 구운 사과가 건강에 얼마나 좋은가요. 그래서 일전에 기회가 생겨서 페리 씨에게 여쭤봤지요. 거리에서 우연히 만난 김에요. 그 전까지 구운 사과의 효능을 의심했다는 뜻은 아니에요. 우드하우스 씨께서 구운 사과가 좋다고 말씀하시는 걸 참 자주 들었거든요. 그분은 과일은 구워 먹을 때만 몸에 좋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아요. 하지만 저희는 틈만 나면 사과 경단을 만들어 먹어서요. 패티는 사과 경단 만드는 솜씨가 일품이랍니다. (에마, 353)
제가 찬장에서 구운 사과를 내와서 손님들에게 한번 드셔보시라고 권해 드렸더니 대뜸 이러시는 거에요. '아! 구운 사과를 능가할 과일이 세상에 어디 있을까요? 그런데다 집에서 직접 구운 사과가 이렇게 먹음직스럽게 생긴 건 생전 처음 보는데요.' 그렇게 말씀하시다니, 짐작하시겠지만 정말 어쩌면......, 그리고 말씀하시는 태도로 보건대 그냥 호의로 그러신 게 아니더라고요. 정말로 맛있는 사과니까요. 윌리스 부인이 정말 제대로 구우셨더라고요. 두 번 이상 굽지 못한 게 좀 걸리긴 하지만요, 우드하우스 씨께 세번 굽겠다고 약속드렸거든요. 하지만 우드하우스 양은 배려심이 넘치시니까 우드하우스 씨께는 말씀 안 하시겠죠? 두말하면 잔소리지만 사과 자체가 구워 먹기 제일 좋은 품종이고요. 돈웰에서 온 건대 나이틀리 씨가 넘치도록 보내주신답니다. 매해 한 자루씩 보내주시죠. 그리고 보관했다가 먹는 사과로는 나이틀리 씨 댁 사과만큼 좋은 게 없을 거에요. 그 댁 사과나무 중에서 한 그루......아니, 두 그루가 틀림없어요. 제 어머니 말씀으론 당신 젊으셨을 때 그 댁 과수원은 늘 유명했다더군요. 그렇지만 일전에 제가 얼마나 놀랐는지 몰라요. 어느 날 아침 나이틀리 씨가 찾아오셨을 때, 마침 제인이 그분이 보내주신 사과를 먹고 있었거든요. 그런 김에 사과 이야기를 하면서 그 아이가 참 맛있게 먹고 있다고 말씀드렸더니, 그분이 혹시 사과가 다 떨어진건 아니냐고 물으시더라고요. '틀림없이 다 떨어졌을 겁니다'라고 말씀하시더니 '한 자루 더 보내드리지요. 저 혼자서는 다 먹을 수 없을 만큼 많이 있으니까요. (에마, 354-355)
하지가 다가오는 어느날, 일행은 돈웰의 언덕으로 산책을 나간다. "아름다운, 눈과 마음이 모두 호강하는 경치였다"고 돈웰을 묘사하고 있는데, "꽃이 만발한 과수원"의 꽃은 사과꽃이라고 한다. 그런데 보통 사과꽃은 5월에 핀다고 하는데, 소설 <에마> 에서 6월 하지에 사과꽃이 피었다고 하니, 두가지 설이 가능할 것이다. 하나는 그 해에 기후 이변이 일어났기 때문일 것이고, 아니면 늦게 꽃이 피는 품종(사과 구이로 적당한 품종?)을 심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돈웰의 영지가 머리 속에 그려진다. 사과꽃이 만발한 과수원에 드넓은 목장과 풀을 뜯는 가축들의 풍경 말이다. 이 묘사를 통해 돈웰에 살고 있는 나이틀리는 상당한 영지를 소유하고 있고, 사과 경작을 하고 있으며, 자신이 직접 재배한 사과를 이웃에게 아낌없이 나눠주는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라는 것을 유추하게 된다.
에마는 돈웰에 온 지 까마득하게 오래됐기 때문에 아버지가 편히 있는 걸 확인하자마자 아버지를 놔두고 밖으로 나와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녀와 그녀 가족에겐 언제나 큰 관심사임에 틀림없는 저택과 영지를 좀 더 상세히 살펴보고 더 정확하게 파악하여 기억을 새롭게 하고 또 정정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에마 역시 해리엇이 애비밀 농장과 어울리는 곳에 서 있는 걸 보면 불만스러워 할 때가 있었지만, 지금은 아무것도 걱정하지 않았다. 농장의 번영을 보여주는 화려한 부대시설들과 비옥한 방목장, 널리 흩어져 있는 가축들, 꽃이 만발한 과수원과 더불어 엷게 피어오르는 연기 기둥을 본다 해도 탈이 날 것 같진 않아서였다. (에마, 534-539)
비옥한 토지의 돈웰에서, 그것도 나이틀리씨의 토지에서 최선을 다해 기른 사과, 그것도 구우면 더 맛있다고 하는 품종의 사과를 맛보았으니 사과에 대한 베이츠 부인의 안목은 상당하다. 그러니 사과를 재료로 만든 음식에는 상당한 일가견이 있을 것이다.
자, 이쯤하면 다른 과일이 나왔을때, 베이츠 부인은 어떤 이야기를 할지 너무 궁금해진다. 영국은 딸기도 유명하다던데, 딸기는 어떻게 해서 먹나요? 어떤 품종의 딸기를 주로 먹나요? 물어보고 싶다.
커다란 보닛과 바구니까지, 행복의 도구를 빈틈없이 갖춘 엘턴 부인은 냉큼 선두에 나서서 딸기를 따고 받는 일이나 딸기 이야기를 나누는 일을 지휘했다. 지금은 딸기, 오직 딸기만 생각했고 또 딸기 이야기만 했다. "영국 최고의 과일, 누구나 좋아하는 사시사철의 건강 과일이죠. 이 딸기들은 가장 비옥한 밭에서 난 최상품이에요. 직접 딸기를 따니 즐겁죠? 딸기를 진정으로 즐기는 유일한 길이니까요. (에마, 535)
상상해 보았다. 사과 파이를 구우면서 나는 베이츠 부인과 어떤 대화를 나누게 될까. "베이츠 부인, 사과 파이 구워주세요. 이번에는 사과를 꼭 세번 구워주세요." 이렇게 부탁해 보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