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 그리고 실루엣은 참 매력이 있다. 빛에 투영된 모습이기에 신비스럽고, 그 주인은 어떤 사람인지, 어떤 물건이지 상상을 하게 만든다. 가끔은 반전 매력을 주기도 한다. 어반스케치 강사님께서 저녁 무렵 찍은 영흥대교 사진을 그려보았다. 실루엣으로 보이는 사람들, 저녁놀에 붉게 물든 바다가 매력적인 사진이었다. 검은색으로 사람들의 실루엣을 그리다보니, 자연스레 과거의 기억들이 떠오른다. 마르셀 푸르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주인공이 홍차와 마들린을 보자 어린시절의 기억 속으로 빠져든 것처럼 말이다.
핸드폰도 없고 컴퓨터도 없던 아날로그 시절에는 화려한 놀 거리가 많지 않았다. 그래도 사람은 도구의 인간, 유희의 인간인지라, 나 또한 도구나 놀잇감을 만들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곤 했다. 그 중의 하나가 그림자 놀이였다. 이 놀이는 특별한 장비가 필요없고 빛이 있는 곳이면 된다. 달빛으로 때로는 촛불로, 그리고 전등 빛으로 그림자 놀이를 하곤 했다. 우리가 만든 동물은 독수리, 여우, 고양이, 개, 오리, 말 등 무수히 많다. 누가 누가 동물들 더 잘 재현하는지 내기를 해곤 했고, 이게 싫증이 나면 그림자에 다시 생명을 불어 넣어 그림자 연극을 하기도 했다.
시간의 지점들(spots of time)을 떠올리니, 이웃집에 떠 심부름 가던 길에 어느 집 창가에 비친 실루엣을 본 날을 잊지 못한다. 실루엣은 뭔가를 열심히 들여다보는 한 젊은 남자의 모습이었다. 실루엣 만으로 나는 그 사람이 젊은 대학생이라고 생각했다. 왜 그랬을까? 아마도 이렇게 멋있는 실루엣이라면 멋진 대학생 오빠여야 한다고 스스로 단정을 내렸던 것이다. '이 집에 이렇게 멋있는 오빠가 있었나?' 궁금한 마음에 그 자리를 뜨지 못했었다. 나는 나의 환상과 상상을 깨고 싶지 않아서 그 실체를 밝히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지금도 그 모습은 아름다운 그리움의 기억으로만 남아 있다.
실루엣과 그림자에 대한 끌림은 교사가 된 뒤 방과후 수업을 개설하는데 영향을 주기도 했다. 몇 년 전 나는 영어그림자 연극반을 만들어 운영한 적이 있다. 그림자 연극을 할 수 있는 스탠드 등도 사고, 가림막도 사서 직접 연극 무대를 꾸며보았다. 그림자 연극반을 신청한 학생들은 8명 정도였다. 학생들은 이솝 우화나 간단한 스토리의 그림자 소품을 직접 만들고 영어 대본을 만들었고, 교사인 나는 가이들 역할을 했다. 손재주가 좋았던 한 남학생은 한번도 빠지지 않고 수업에 참여했다. 그 학생이 만든 나무 총은 그림자 연극에서 괴물을 무찌르는 무기로 사용되기도 했다. 이렇듯 아이들은 즐겁게 그림자 연극 수업에 참여했고, 수업이 끝난 뒤 나는 그림자연극 방과후 수업에 관심을 보이는 다른 선생님들에게 대략 다음과 같이 소감을 전했다.
다른 학생들 앞에서 직접 나서기를 부끄러워 하거나 내성적인 학생들이 주로 그림자 연극 수업에 참여했고, 소품만들기에 흥미를 가진 학생들, 목소리로 매력을 뽐낸 학생들, 영어 연극 대사를 새롭게 구성하는데 소질이 있는 학생들이 어우러져서 매우 재미있고 인상적인 수업을 했습니다. 자신의 얼굴을 드러낼 필요가 없으니, 소품을 통해 만드는 그림자로, 자신의 목소리로 연극을 하면서 잃었던 자신감을 찾은 학생도 있어요.
수업 후기를 작성했던 한 여학생은 그림자 연극의 매력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됐고, 자신이 실루엣이라도 예쁜 사람이면 좋겠다는 말을 적기도 했다. 교사가 보기에는 너무도 예쁘고 매력적인데, 자신은 평범한 외모를 지녔다는 것이다. 학생의 그 말은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실루엣이라도 예쁜 사람이 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을까, 지금도 궁금해진다. 분명히 몸과 맘이 예쁜 사람이 되기 위해 성실한 삶을 살고 있을거라 생각한다.
그림자 연극반 운영의 경험은 교사로서의 내 삶에도 중요한 영향을 주었다. 학생들 각자의 소질과 적성은 다채롭다는 것을, 영어를 잘하지 않더라도 공부를 잘하지 않더라도 얼마든지 각자만의 매력을 지녔으니 학생들 각자의 매력을 발견해 주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지금도 나는 아이들의 매력이 무엇인지 분단히 찾으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공부는 잘 못하지만, 제인오스틴 소설을 읽고 그 매력에 빠졌다는 우리반 한 여학생은 얼마나 예쁜가. 제인오스틴의 『오만과 편견』만 읽었다고 고백하는 그 여학생에게 나는 『노생거 사원』을 추천해 주었다. 문학을 통해 친구와의 우정을 만들어 가기를 바라면서, 그리고 다음 장면을 기억해 주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주인공 캐서린은 소설을 좋아하는 여주인공으로서, 고딕소설을 읽으면서 이사벨라와 내용을 공유할 때 가장 행복한 모습을 보여준다. (물론 나중에는 이사벨라가 자신이 생각했던 그런 친구가 아니었음을 깨닫게 되기는 하지만 말이다.)
서로 알게 된지 팔구 일쯤 지난 어느 날 아침 펌프 룸에서 두 친구 사이에 있었던 다음 대화는 그들의 돈독한 애정을 보여 주는 표본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는 세심한 배려, 사고의 독창성, 문학적 취향이 드러나서 그 애정이 그냥 생긴 것이 아님을 말해 준다. (45)
"『우돌포』는 좀 읽었어?"
"응 일어나서부터 계속 읽었어, 검은 베일까지 갔단다."
"정말? 멋져! 오! 검은 베일 뒤에 뭐가 있는지 세상없어도 얘기하지 않을거야! 너무 너무 알고 싶지 않아?" (46)
"아이 참, 정말 고맙다, 얘. 그리고 『우돌포』를 끝내고 나면 우리 『이탤리언』을 같이 읽자. 너 주려고 같은 종류의 소설 목록을 열두 개쯤 뽑아 놓았어."(46)
이렇게 책으로 우정을 나누는 친구 사이는 참 멋지다고 생각한다. 이 장면을 읽을 때 나는 항상 이런 상상을 한다. 이사벨라가 캐서린이 생각하는 문학을 좋아하는 진실한 친구였다면 그들은 자신들이 읽은 고딕소설을 그림자연극으로도 만들 사람이라고 말이다. 이런 사이라면 그들은 실루엣 마저도 예쁜 사람들일 것이다. 한번 상상해 보라. 책을 들고 서로 대화를 나누는 친구들의 실루엣 말이다.
사랑하는 사람의 그림자가 너무 아름다워서 그림자를 그리는 여인의 모습을 그린 조셉 베노이트의 <드로잉의 탄생>이라는 그림을 소개하고 싶다. 그림자를 그려서라도 그의 흔적을 남기고 싶은 여인의 마음은 어떤 것이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