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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드리쌤의 spots of time

15. 아그리빠와 줄리앙

by 제이오름
빌헬름_함메르쇠__햇빛_속에_춤추는_먼지_1900`.png 햇살 속에 춤추는 먼지들

하루종일, 몇날 몇일을 봐도 지루하지 않은 그림이 있다. 빌헬름 함메르쇠이의 <햇살 속에 춤추는 먼지들> 그림이다. 이 그림은 <명화읽는 영어수업>준비를 하다가 알게 됐다. 그 이후 내 맘속의 넘버 원 그림으로 자리잡았다. 창을 통해 스며드는 햇살을 가만히 응시해 본다. 그 속에 떠 다니는 작은 먼지들은 나를 어린시절의 시골 집으로 데려 간다. 부모님이 밭에 일하러 갔을 때, 툇마루 비슷한 현관에서 가만히 앉아서 빛을 바라본 적이 있었다. 이 그림처럼 먼지들이 그 빛을 따라 춤추는 광경이 펼쳐진다. 집에 아무도 없고, 할일이 없어도 결코 지루하다고 느껴지지 않았다. 이 그림을 보면 왜 그렇게 마음이 편안해질까. 빛과 작은 먼지 입자에 몰입이 시작된다. 흥미진진한 일에만 몰입이 가능한 것이 아니다. 먼지처럼 아주 단순한 것에도 몰입이 생긴다. 몰입은 정신을 맑게 해주니 마음까지 편안해지는 것이다.


그림은 잠시 잊고 있던 기억들을 들추어내어 경험세계를 확장시키는 역할을 한다. 적어도 내게는 그렇다. 그림을 좋아하는 이유, 명화를 이용해 영어 수업을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격자 무늬 창가 저 너머의 풍경도 살아난다. 어릴 적 우리 집에는 햇살 비치는 저 문을 열고 나가면 귤창고로 이어지는 길이 있었다. 그 귤창고 앞에는 큰 행사때마다 사용하는 야외 아궁이와 그 옆에 석고상 두 개가 있었다.


아그리빠 석고상과 줄리앙 석고상이 우리집에 온것은 내가 중학교 2학년 때였다. 오빠의 미대 입시가 끝나고 화실에서 그리던 데생 석고들을 가져 온 것인데, 이 석고상들은 잠시 창고 옆 마당에 덩그러니 놓여져서 한동안 방치됐었다. 첫번의 대학 입시에 실패하자 오빠는 그 석고상들에 대해 정이 떨어졌는지, 집에 가져다놓고 한동안 쳐다보지도 않았다. 비통한 마음은 가족 구성원 전부에게 전해졌다. 온가족이 쓰라린 마음을 갖고 있어서인지 아무도 그 석고상들을 관리하려 하지 않았다. 시간이 흘러 석고상 한 모서리가 깨졌다. 비가 오면 빗물이 두 석고상 얼굴에 흘러내려, 그게 빗물인지, 오빠의 눈물인지 혼동이 되기도 했다. 흐르는 빗물에 두 석고상들은 비장하게 보였고 때로는 세상사에 무심한 듯 보였다. 당시에 나는 석고상의 이름만 알뿐, 그 인물이 어떤 역사적 배경을 가진 인물이었는지는 자세히 몰랐다. 미대 가려면 데생 시험을 봐야하니 반드시 잘 그려야 하는 석고 인물로만 생각했다.


오빠의 입시 실패로 가족 모두가 상심해 있는 동안, 우리들의 슬픔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당당히 서있는 아그리빠와 미소년의 미소를 짓는 줄리앙은 낯선 세계의 이방인과도 같았다. 만약 내가 당시에, 아그리빠와 줄리앙이 어떤 인물이고 어떤 역사적 배경을 가진 사람인지 잘 알았다면, 그 석고상들을 그렇게 방치하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도 가끔씩 후회의 감정이 떠오른다. 아그리빠의 용기와 지적인 외모, 미소년같은 줄리앙의 예술감각과 교양을 미리 알아보지 못했던 것이 아쉽다.


나도 성장하여 대학에 들어가고 역사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로마역사, 세계역사 관련 책들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아그리빠(마르쿠스 비프사니우스 아그리파)라는 인물이 참 대단한 사람이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아그리빠는 로마제국의 장군이자 정치가였고 카이사르가 죽은 뒤에 아우구스투스의 정계진출을 도우면서 그의 군사적, 외교적 성공에 크게 기여한 사람이었다. 특히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에 대항한 악티움해전의 공은 매우 컸으며, 로마시를 위해 수도, 목욕탕, 판테온이라는 원형 신전을 신설하기도 했다. 로마제국을 측량하고 지리서를 저작하여 세계지도 작성의 기초를 닦기도 했다.


줄리앙은 피렌체의 엄친아였던 줄리아노 데 메디치라는 인물이다. 외모도 훌륭하고 집안도 매우 좋은, 이름만 들어도 전세계적으로 이름을 떨친, 귀족상업과 금융으로 시작하여 피렌체를 발전시킨 메디치 가문의 후손이었다. 와 그 유명한 메디치 가문의 후손이었다니! 13세기부터 17세기까지 피렌체에서 메디치 가문은 세명의 교황(레오 10세, 클레멘스 7세, 레오 11세)과 피렌체의 통치자이자 르네상스 예술의 후원자 로렌조를 배출하였으니 왕족보다 막강한 재산과 권력을 지닌 가문이었다.


왜 미술 입시에서 두 석고상을 그리게 했는지 대충 짐작이 갔다. 나에게 아그리빠와 줄리앙은 예술 작품, 그리고 미술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을 갖게 해준 매개체였다. 나는 문득문득 두 석고상을 기억하고 있었다. 석고상은 색이 없는 하얀색이어서 명암대비를 어떻게 표현하는지 잘 보여줄 수 있다. 인체니 해부학적 이해에도 도움이 된다. 나는 내가 기억하는 아그리빠와 줄리앙 이야기를 가끔 아이들에게 한다. 예술에 대한 관심은 언제 어디서 시작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들이 자라서 어떤 일을 하건, 어떤 위치에 있건 간에 예술 작품을 통해 미적 감각을 키우고, 삶을 풍부하고 세련되게 하고, 또한 그들의 삶을 더 품위있고 가치 있게 만들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이다. '나'를 아름답게 만드는 길, 경험 세계를 넓히는 방법은 언어와 예술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에서 시작될 것이다.


곰브리치가 <서양미술사>의 서문에서 밝힌 구절이 떠오른다. "우리가 미술에 대해서 배우는 것은 끝이 없는 길이다. 미술에는 언제나 발견해야 할 새로운 것들이 있다. 위대한 미술 작품들은 우리가 그 작품을 대할 때마다 다르게 보이는 것 같기도 하고, 인간 본연의 모습처럼 다함이 없고 또 예측할 수 없는 것 같기도 하다. 미술은 그 자체의 불가사의한 법칙과 모험을 가지고 있는 가슴을 설레게 하는 자극적인 세계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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